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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호수와 함께 한 캐나다 와이너리 여행

채지형의 여행살롱 55화

가을만 되면 생각나는 나라가 캐나다입니다.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가을이 되면 형형색색 황홀한 그림을 그려내거든요. 국기에 단풍나무가 그려져 있는 것을 봐도 짐작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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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움이 가득한 작은 도시_ 켈로나

단풍나무만큼이나 유명한 캐나다의 아이콘은 호수랍니다. 에메랄드 레이크에서 만난 60대 부산 할머니가 제 옆에 슬그머니 다가오시더니 이렇게 물으시더군요. “아가씨도 호수 여행 왔수?”라고요. 할머니 예상대로 대부분 여행자의 목적은 비슷합니다. 캐나다 여행에서 호수는 찐빵의 앙꼬나 마찬가지거든요. 레이크 루이스를 비롯해 모레인, 오카나간, 칼말카, 카우카와 등 수많은 호수가 캐나다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빛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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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페이토호수

호수 중 스타는 레이크 루이스지만, 페이토 호수도 레이크 루이스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합니다. 1890년대 로키의 전설적인 가이드 빌 페이토의 이름을 딴 호수인데요. 초록빛 물빛이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습니다. 페이토 호수를 보려면, 산을 타고 10분 정도 올라야 합니다. 눈 숲을 헤치다 갑자기 나타나는 호수를 보면 입이 떡 하니 벌어진답니다. 장엄한 설산과 초록빛 호수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거든요. 페이토 호수만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답니다. 

 

페이토 호수 근처에 레벨스톡과 켈로나라는 자그마한 도시가 있습니다. 레벨스톡은 헬리콥터를 타고 올라가 스키를 즐기는 ‘헬리스킹’이 유명해서 겨울만 되면 헬리스킹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해다. 영화에서만 보던 헬리스킹을 이곳에서도 즐길 수 있다니, 스키를 타고 시원하게 내려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쿵쾅거리더군요.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를 칼말카 호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뽑은 세계 10대 호수 중 하나였습니다. 고목들이 가득한 공원에 오리들이 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 일품입니다. 칼말카 호수가 10대 호수 중 하나로 뽑힌 이유도 햇살 아래 빛나는 평화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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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낙엽 속에서 즐거운 한때 (오른쪽) 칼말카 호수에서 단풍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

점심때는 상큼한 과일과 치즈 토마토를 빵 사이에 끼워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피크닉 테이블에 샌드위치를 펼쳐놓고 가을 햇살의 따사로움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한쪽에서 꼬맹이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가 낙엽과 호수를 배경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느라 바쁘게 셔터를 누르고 있더군요. 

 

두 시간이 찰나처럼 지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와이너리인 ‘오카나간 밸리(Okanagan Valley)’로 향했습니다. 달리기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니 길 왼편으로 포도밭이 나타나더군요. 오카나간 밸리로 접어든 것이었어요. 웅장한 산 아래 파란 호수가 그림처럼 앉아있고, 호수 옆으로 새파란 색의 포도밭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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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몽크 와이너리

와인을 맛보기 위해 도착한 곳은 아이스와인이 맛있는 ‘그레이 몽크’(Gray Monk)라는 전통 있는 와이너리였습니다. 그곳에서 와인 잔을 물로 씻어가며 피노누아(Pinot noir)와 샤도네이(Chadonney) 그리고 래티튜드(Latitude) 50을 차례로 음미했습니다. 행복감이 서서히 구석구석 퍼지더군요. 진한 오크 향이 코를 찌르더니 입안을 한 바퀴 감싸고, 각각 개성 강한 와인들이 다른 향과 맛으로 혀와 코를 자극했습니다. 

 

와인을 따라 주던 그레이 몽크 직원은 오카나간 밸리 지역이 일조량이 많고 습기가 적어 맛있는 포도를 만들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을 안에 양조장이 수십 곳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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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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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몽크 와이너리에서 와인 한잔

캐나다의 명물 아이스와인을 시음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비용을 내라고 하더군요. 순간 ‘에잇!’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아이스와인을 맛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아이스와인을 한 모금 입에 담으니, 세상 달콤함이 그 안에 다 들어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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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어우러진 와이너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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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을 감도는 와인 향에 취해 야외 레스토랑으로 나갔습니다. 혀에 이어 이번에는 눈이 취하더군요. 오카나간 호수를 배경으로 포도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거든요. 세계의 유명 포도밭을 여러 곳 돌아다녔지만 호수, 산과 어우러진 오카나간 포도밭에 버금가는 풍광을 가진 포도밭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날 저녁 와인투어를 같이 한 일행들은 그레이 몽크에서 사온 와인으로 와인 파티를 벌였습니다. 제 옆에 앉아서 얼굴이 발그레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마가렛과 앤 할머니는 한 달째 함께 캐나다 배낭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환갑이 훌쩍 넘었지만, 젊은이들보다 열정적으로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두 분 할머니는 매 순간 서로를 배려하고 다른 여행자들과 쉽게 마음을 나누더군요.

 

저도 나이가 들어 저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러움 섞인 마음으로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와인 잔을 기울이다 보니, 우리는 나이를 초월해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세월이 더 흘러도 그들의 여행에 대한 열정과 우정이 변하지 않기를, 그들은 여행에 대한 제 열정이 더욱 견고해지기를 기원했습니다. 지구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자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눈빛을 나누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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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
소개글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