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를 여행한다면, ‘도이퉁’ 놓치지 마세요
채지형의 여행살롱 58화
태국 북부 치앙마이는 인기 있는 겨울 여행지입니다. 치앙마이의 겨울은 우리 가을 날씨처럼 선선합니다. 란나 왕국의 수도였던 치앙마이는 도시 자체가 고즈넉한 멋을 풍긴답니다. 또 태국 북부의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마을들로 가는 관문이기도 합니다.
평화로운 도이퉁 매파루앙 정원의 모습 |
오늘은 치앙마이를 통해 갈 수 있는 도이퉁 마을(Doi Tung) 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려고요. 태국 북부에 있는 도이퉁 마을에 가면 ‘매파루앙(Mae FahLuang)’이라는 이름의 정원이 있습니다.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평화로운 정원입니다. 푸르름 가득한 정원에 들어서면, 형형색색의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한 겨울에 만나는 싱싱한 꽃들. 생명이 주는 에너지와 색감이 주는 화려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정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알게 됩니다. 정원에 활짝 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말이죠.
(왼쪽) 매파루앙 가든을 비롯해 인스퍼레이션 홀 등을 둘러볼 수 있는 입장권 (오른쪽) 매파루앙 가든으로 가는 표시판 |
매파루앙 정원은 삼십 년 전만해도 주민들이 키우는 아편이 자라던 곳입니다. 태국 북부는 미얀마, 라오스와 함께 골든 트라이앵글의 한 축으로, 대표적인 마약 재배지였죠. 그때만 해도 산에 사는 소수 민족인 고산족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들에게 아편을 키우는 것은 쌀을 기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주민들은 하나 둘 아편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 보듯 뻔합니다만, 아편은 고산족을 나락에 빠트렸습니다. 한번 아편의 올가미에 들어간 이들은 날이 갈수록 깊은 늪으로 들어갔지요. 마약으로 인해 범죄는 창궐하고 병은 늘어갔습니다. 누구도 아편이 가져온 엄청난 재앙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산족들의 삶을 바꾼 스리나가린드라 왕비 |
그런데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재앙을 온몸으로 막은 이가 나타났습니다. 태국 푸미폰 국왕의 어머니인 스리나가린드라(Srinagarindra) 왕비였는데요. 그녀는 마약으로 삶이 피폐해진 고산족을 보며,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녀 나이 일흔이 훌쩍 넘은 때였는데요. 왕비는 1986년 태국 왕실 산하 산림청 지원을 받아 도이퉁 재단을 만들고 실질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일이었습니다. 아편 대신 그들에게 생계수단을 마련해 줘야 했던 것이죠. 그때 그녀가 생각해낸 것이 꽃과 식물을 재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주민들의 생활이 단번에 바뀌진 않았습니다. 왕실에서 독려한다고 생활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우리는 모두가 꽃. 아편 대신 꽃으로 피어난 태국 북부 사람들 |
(왼쪽) 생생한 에너지를 내뿜는 꽃들 (오른쪽) 치앙라이 꽃 축제에 피어있는 튤립 |
왕비는 왕궁이 있는 방콕에서 북쪽 시골 마을 도이퉁까지 날아와, 고산족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무엇이 힘들고 어떤 것이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헌신적이었습니다. 포기하지도 않았고요. 도이퉁에 여름 별장까지 마련해 머무르며 변화를 지휘했습니다. 소수민족 사람들의 인생에 꽃을 안겨주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무엇보다 강했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왕비의 노력은 그 어떤 꽃보다 크고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수많은 고산족이 마약의 늪에서 벗어나 꽃과 식물을 키우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것이죠. 이 일은 고산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쌀을 마련해 줬을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아름답게 키워 열매를 맺는 경험도 안겨줬습니다.
태국 조각가 미시엠 입인트소이의 작품 '지속성(Continuity)' |
평화로운 도이퉁 매파루앙 정원의 모습 |
매파루앙정원의 꽃은 그래서 더 아름답습니다. 매파루앙정원 가운데에는 ‘지속성(Continuity)'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우뚝 서 있는데요. 태국의 조각가 미시엠 입인트소이의 작품으로, 지속성이야말로 모든 성공의 열쇠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산족들에게 꾸준히 다가간 왕비의 노력을 기리고 아편을 끊고 자립에 도전한 고산족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매파루앙 정원에서 유독 자주 눈에 띄는 꽃 중 하나가 사루비아입니다. 사루비아는 왕비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습니다. 다른 꽃도 열심히 키우지만, 사루비아 꽃은 더 정성 들여 키운다고 해요.
스리나가린드라 왕비가 좋아했던 사루비아꽃 |
정원 한쪽에는 씨앗으로 식물을 배양하는 공간도 있었습니다. 더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가슴 뭉클하게 만들더군요. 정원 한쪽에는 고산족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과 변화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도 열리고 있었습니다.
도이퉁 사람들은 꽃과 함께 커피나무도 키웠습니다. 태국 북부는 커피를 키우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이퉁 커피는 현재 태국을 대표하는 커피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유명합니다. 방콕이나 치앙마이와 같은 도시에서도 도이퉁 커피를 전문적으로 파는 카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답니다. 해외 여행자들에게도 도이퉁 커피는 여행 기념품으로 높은 인기를 자랑합니다. 방콕 수안나품 공항에 있는 태국 전통 기념품 가게 ‘도이퉁’은 제가 태국 갈 때마다 잊지 않고 들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커피 한 잔 하며 생각에 잠기기 매파루앙 가든 |
아편으로 고통받던 이들이 매파루앙 정원에 활짝 핀 꽃을 보며 미소 지었을 때 왕비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왕비의 용감한 도전이 놀랍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하며, 매파루앙 정원에서 도이퉁 커피를 한 잔 마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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