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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탱고를? 부에노스아이레스 산텔모 시장

채지형의 ‘요리조리 시장구경’ No.3

시장은 보물창고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그 안에 오롯하다. 이슬람 시장은 그들의 종교가, 아프리카 시장은 그들의 자연이, 중남미 시장은 그들의 문화가 빛난다. 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단순히 무엇인가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다. 시장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시장에서 탱고를? 부에노스아이레스 산
‘남미의 파리’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좋은 공기’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에는 유럽의 향기가 배어 있다. 매주 일요일 여행자들을 집합시키는 산텔모 벼룩시장, 페리아 데 산텔모(Feria de San Telmo)는 유럽을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유럽에서 넘어온 이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소중히 안고 왔던 보물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1536년 스페인 귀족출신 페드로 데 멘도사와 스페인 원정대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만든 이래 산텔모는 도시의 중심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전염병이 도는 위기가 닥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19세기 말 새로운 기회의 땅을 찾아 날아든 유럽인들이 이곳에 정착, 산텔모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예술가와 여행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곳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표 벼룩시장

페리아 데 산텔모의 주 무대는 디펜사(Defensa) 거리와 도레고 광장((Dorrego)이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물물교환을 하던 시장이, 이제는 아르헨티나의 간판 골동품 벼룩시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제대로 작동할까 의심스러운 구식 카메라부터 용도를 알 수 없는 병, 100년 전에서 썼을법한 수술기구, 그리고 도장, 펜과 같은 잡동사니, 아르헨티나의 유명 가죽으로 만든 가방까지 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다양하다. 수많은 골동품이 눈 밝고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시장에서 탱고를? 부에노스아이레스 산

(좌) 세월을 품은 골동품들 (우) 아르헨티나는 가죽제품이 유명하다. 가죽공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다

시장에서 탱고를? 부에노스아이레스 산

(좌)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즐기는 마테차를 마실 수 있는 도구들 (우) 묘한 빛을 내는 유리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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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텔모 시장에는 다른 벼룩시장에서 찾을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바로 탱고를 주제로 한 상품들이다. 탱고 그림을 비롯해 탱고에 필요한 각종 장신구와 소품이 줄지어 펼쳐져 있다. 어떤 것은 크리스티 경매에 올려도 톡톡히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처럼 고급스럽고, 또 어떤 것은 당장 쓰레기통에 던져도 아깝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서 산텔모 시장은 일반 여행자뿐만 아니라 ‘흙 속의 진주’를 찾는 유럽의 골동품 수집가로 늘 북적인다.

시장에서 탱고를? 부에노스아이레스 산

(1) 마그네틱 안에도 탱고가 들어있다 (2) 예스러운 색감과 글씨체로 만들어진 기념품들 (3) 탱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카를로스 가르델 얼굴이 그려져 있다

여행자들이 산텔모 벼룩시장에서 기대하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시장에서 탱고 공연을 보는 것이다. `몸으로 쓰는 시', `춤추는 슬픈 감정'으로 표현되는 탱고는 아르헨티나 사람에게 삶이자 역사요, 문화이자 위안이다. 탱고를 보는 것은 예술을 보는 것인 동시에 아르헨티나를 보는 것이다. 19세기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아르헨티나로 흘러온 이방인들의 설움과 아픔, 절망과 외로움이 탱고의 애절한 가락과 현란한 몸짓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탱고와 함께 하는 특별한 시장구경

시장에서 탱고를? 부에노스아이레스 산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탱고 무대

산텔모에 도착하니 시장 입구에서부터 탱고 가락이 들려온다. 음악을 쫓아가니 제각각 다른 공연이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로 펼쳐지고 있다. 프로 팀도 있고 아마추어 팀도 있는데, 유독 한 노부부 커플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자는 한 템포 느리고 스텝은 어색하지만 애절한 표정 연기만큼은 프로급이다. 관광객들은 환한 미소와 함께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시장에서 탱고를? 부에노스아이레스 산

(좌)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탱고 무대 (우) 영화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연상시키는 남자 댄서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탱고공연

도레고 광장 쪽으로 더 들어가자 카리스마 넘치는 탱고 댄서와 예쁜 여자 무용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엄청난 스피드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품어낸다. 절제된 동작 하나하나에서 자못 비장함까지 묻어난다.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는 관객들의 열기와 어우러져 시장은 용광로처럼 달아오른다. 이때쯤 되면 `아,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 있구나'라는 행복감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간다.

 

이들은 탱고 아카데미를 홍보하기 위해 나온 프로들이다. 탱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원하는 이들에게 즉석 레슨까지 해준다. 아무렴 어떤가, 이렇게 생생한 탱고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만족스럽다.

사르르 녹는 아사도와 시원한 맥주는 덤

시장이 열리는 시간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이 되면 길거리에 커다란 파라솔이 등장한다. 여행자들을 다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레스토랑이 충분하지 않아, 일요일 낮에만 등장하는 길거리 간이 음식점들이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아르헨티나가 자랑하는 쇠고기 숯불구이 ‘아사도’를 맛본다. 숯불로 굽는 데다 살짝 소금 간을 해, 더 없이 담백하고 맛깔스럽다. 음식점들은 오후 5시가 넘어가면 시원한 맥주가 나오는 노천 바로 변신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간다면, 일요일 하루는 산텔모에 내주는 것이 어떨까. 아침에는 골동품을 보며 이민자들의 역사를, 점심에는 사르르 녹는 아사도의 맛을, 오후엔 탱고의 열정을, 그리고 저녁에는 시원한 맥주와 함께하는 여유로움을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시장에서 탱고를? 부에노스아이레스 산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벽화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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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
소개글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