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것들의 천국, 이스탄불 그랜드바자르
채지형의 ‘요리조리 시장구경’ No.11
시장은 보물창고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그 안에 오롯하다. 이슬람 시장은 그들의 종교가, 아프리카 시장은 그들의 자연이, 중남미 시장은 그들의 문화가 빛난다. 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단순히 무엇인가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다. 시장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자, 여러분은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셨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안내자의 한 마디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스탄불이나 콘스탄티노플이나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고 하니 느낌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쑥 빨려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비잔틴제국의 1000년의 영화로움을 만날 생각에, 세상의 중심이었던 흔적들을 만질 기대에, 차분하던 심장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인류 문명의 박물관, 이스탄불
인류문명의 박물관이라 불리는 이스탄불의 밤거리 |
비잔틴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제국에 의해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슬람을 믿던 오스만제국은 다행스럽게도 종교에 관대했다. 그래서 이스탄불에는 비잔틴 제국의 귀한 유적들이 수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스탄불은 여러 종교와 문화가 어우러져 있었다. 어디를 가든 히타이트부터 페르시아,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제국에 이르기까지 고색창연한 문화를 볼 수 있었다. ‘인류 문명의 박물관’이라는 표현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5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랜드바자르
돔 형식의 그랜드 바자르 내부 |
굽이굽이 흘러온 역사만큼이나 이스탄불에는 여러 시장이 숨 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시장은 터키의 대표시장, 그랜드바자르다. 그랜드바자르가 생긴 것은 560년 전. 1455년 술탄 모하메드 2세 때 처음 지어졌다. 이후 여러 번 다시 지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전 시장들은 대부분 지붕이 없었는데, 그랜드바자르는 지붕을 덮었다. 그래서 터키사람들은 그랜드바자르를 ‘지붕 있는 시장’이라는 뜻의 ‘카팔르 차르쉬’라고 불렀다.
그랜드바자르에서 볼 수 있는 장신구들 |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부셨다. 각각의 색을 내뿜는 보석들이 줄지어 있었다. 금과 은이 넘쳐났고, 다양한 문양으로 세공된 귀금속이 발길을 잡았다. 시장의 높은 천장과 어두운 벽때문인지, 보석들은 더욱 빛이 나 보였다. 힘 있는 사람치고 보석 좋아하지 않은 이가 없듯이, 오스만제국 때 술탄도 그랬다. 온갖 곳을 보석으로 장식했다. 당시 보석과 귀금속은 힘을 나타냈고, 귀족들은 금으로 치장했다. 그런 역사를 보면, 그랜드바자르에 보석을 파는 집이 가장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살만한 보석이 없을까 하고 쇼윈도를 한참동안 들여다봤다. 다행히 귀금속에는 반응하지 않는 나의 촉수덕분에 다행히 지갑 안 리라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형형색색으로 수놓은 부츠들 |
댄서들을 위한 화려한 의상 |
반짝이는 보석들로 눈요기를 하고, 미로같은 길에 들어섰다. 여기저기에서 ‘프리 애플티’를 외치며,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잡았다. 바쁠 것도 없겠다, 차를 받아 들었다. 카페트 가게 직원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KTX 속도로 카페트에 대한 설명을 풀어놓았다. 이 카페트가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든 것인지, 그랜드바자르에서도 자기 집 카페트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원하는 패턴은 없는지 묻는 것으로 설명은 끝이 났다. 카페트에 관심이 없진 않았지만, 내 예산과 카페트 가격에는 간격이 너무 넓었다. 미안한 표정과 함께 ‘고맙다’는 터키어인 ‘테쉐퀴르 에데림(Teşekkür ederim)’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떴다.
오묘한 빛을 내는 등
오묘한 빛이 매력적인 터키의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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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금속 가게와 카페트 가게를 지나니, 드디어 지갑을 열게 만드는 곳이 나타났다. 형형색색의 등이었다. 가게 자체만으로 아라비안나이트에 들어온 것 같았다. 화려한 등이 우아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패턴도 다양했다. 조각 난 유리조각들이 색색별로 이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나오는 빛은 오묘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야 했다. 깨지기 쉬운 등을 집까지 안전하게 가져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크기도 작아야했다. 심사숙고 끝에 초록빛과 푸른빛이 나오는 등을 골랐다. 잠자고 있던 리라가 마구 흘러나갔지만,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뿌듯했다(지금도 거실 테이블에 터를 잡고 신비로운 빛을 내뿜고 있다).
터키시골아낙을 본뜬 인형들 |
등을 시작으로, 가방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각종 향신료를 비롯해서 고소한 견과류, 다디단 과자, 터키 민속 악기와 옷, 그릇과 인형들까지 수많은 것들이 눈을 잡아끌었다. 그렇다고 5000여개나 된다는 그랜드바자르에 있는 모든 상점을 돌아볼 수는 없는 법. 그랜드바자르에서 눈여겨 볼 다섯 가지 기념품으로 시장구경을 정리해보자.
1. 달달한 터키쉬 딜라이트 2. 나자르본쥬를 모티브로 한 장식품 3. 커피도구 제즈베 4. 수피댄스를 추는 인형 5. 고소한 견과류가 가득 |
첫 번째, 터키쉬 딜라이트 로쿰
영화 ‘나니야연대기’를 본 이라면 로쿰을 기억할 것이다. 에드먼드가 허겁지겁 로쿰(Lokum)을 먹는 장면. 로쿰은 견과류나 과일즙을 넣어 만든 젤리과자로, 터키 사람들이 사랑하는 디저트다. 심하게 달아, 한 입 먹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도 터키에 왔으면, 터키식 디저트를 먹어보는 것이 정석. 로쿰이 입맛에 맞다면, 바끌라바나 헬바와 같은 다른 터키식 과자에도 도전해보자.
두 번째, 나자르본쥬
나자르본쥬를 모르는 터키 여행자는 없을 것이다. 재앙을 막아준다는 터키의 부적, 나자르본쥬. 파랑색 바탕에 눈 모양이 그려져 있어, ‘악마의 눈’이라고도 부른다. 터키 어디에 가나 볼 수 있다. 그랜드바자르에 가면 목걸이나 팔찌를 비롯한 각종 장신구나 마그네틱이나 브롯치 등 수십 가지 아이템으로 만들어진 나자르본쥬를 만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선물 아이템이다.
세 번째, 멋스러운 제즈베
우리나라 사람들은 드립커피나 에스프레소 기계를 이용해 추출한 커피에 익숙하지만, 터키는 터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커피를 마신다. 이슬람국가에서 커피와 차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술이 하는 역할을 커피와 차가 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될 정도로 터키의 커피 문화와 전통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터키식 커피는 커피콩을 가루로 만든 후, 표면에 거품이 생길 때까지 천천히 끓여서 만드는데, 이때 사용되는 것이 제즈베다. 제즈베로 커피를 끓이지 않더라도, 터키의 커피 문화를 떠올려볼 수 있는 멋스러운 기념품이다.
네 번째, 수피 춤을 추는 수도승 인형
인형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기념품. 터키에 가면 수피즘을 믿는 수도승들의 수피댄스를 볼 수 있는데, 수피댄스를 추는 수도승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든 것이다. 수피댄스는 춤이라기보다는 수도승들이 도를 닦는 방법 중 하나. 한 자리에서 1시간 이상 빙글빙글 도는데, 한 번 보면 묘한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다섯 번째, 고소한 견과류
터키 호텔을 생각하면 기억에 남는 것이 아침식사다. 뷔페로 즐길 수 있는 아침식사였는데, 견과류 종류만 수십 가지에 달했던 것. 맛은? 물론 고소했다. 여러 견과류들이 각각 미묘한 차이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신선하고 맛있었다. 지중해성 기후로 견과류가 발달한 터키에서 꼭 먹어야할 것이 바로 견과류. 그랜드바자르에 가면 산처럼 쌓여있는 견과류들을 발견할 수 있다. 건강을 위해 한 줌!
(왼쪽) 모양도 예쁜 터키쉬 딜라이트 (오른쪽) 말린과일도 인기아이템 |
정신을 잃고 시장구경을 하다 나오니, 들어간 곳이 어디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랜드바자르의 출입구는 22개. 시장 안은 50개가 넘는 좁은 길로 이어져 있으니, 어느 출입구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무리도 아니었다.
세계시장구경을 다니면서, 이렇게나 물욕이 오른 곳도 없었던 것 같다. 묵직해진 가방을 메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스탄불에서의 아름다운 시간들과 선물을 받고 좋아할 친구들의 미소가 겹쳐져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하루에도 여러 잔 맛보게 되는 애플티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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