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이마트, '배당주' 변신 이유는
이마트·신세계 "적자나도 배당할 것" 증여세 마련·국민연금 달래기 '일석이조'
짠물배당으로 기관투자자들의 원성을 들어온 신세계그룹 관련주들이 배당주로 거듭날 분위기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회사가 적자를 보더라도 배당에 나서겠다고 나섰다. 최근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지분을 두 남매에게 나눠준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증여세를 내기 위해 배당수익을 확보하겠다는 얘기다.
특히 유통업계의 '숨은 큰 손'으로 통하는 국민연금이 반가워하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은 이마트와 롯데쇼핑, 현대백화점 등 주요 유통회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주요 주주다. 국민연금은 매년 업계의 저배당을 지적하며 이사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져왔다. 배당을 확대해 증여세 재원을 마련하면서 국민연금도 확실한 우군으로 삼을 수 있는 묘수라는 평가다.
이마트·신세계 배당 '대폭 확대'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는 앞으로 3년간 연간 영업이익의 15%를 배당한다고 밝혔다. 적자가 나도 주당 2000원을 배당할 예정이다. 정유경 총괄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신세계도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주주에게 환원하는 배당정책을 발표했다. 적자가 나더라도 최저 배당금 1500원을 보장한다.
㈜이마트의 총 발행주식수는 2696만 4179주다. 주당 2000원을 적용하면 매년 539억 원이 필요하다. 이마트의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은 1522억 원이다. 영업이익의 15%를 배당하겠다는 기준으로는 다소 모자랄 수 있는 수치지만 이미 쌓여있는 이익잉여금이 3조 2002억 원에 달해 배당에는 문제가 없다. 배당정책이 적용되면 이마트 지분 18.56%(517만 2911주)를 가진 정 부회장 입장에서는 매년 최소 103억 원의 배당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신세계는 이마트보다는 배당금 마련이 다소 버겁다. 신세계의 총 발행주식수는 983만 6407주다. 주당 1500원을 적용하면 147억 원이 필요하다. 문제는 신세계가 3분기 기준 146억 원의 영업손실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4분기 극적인 실적회복이 없다면 배당은 그동안 누적된 2조 7812억 원에서 전액 지출될 예정이다. 신세계 지분 18.56%(182만 7521주)를 가진 정 총괄사장은 27억 원의 배당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배당 확대, 증여세 재원 마련 포석
신세계그룹의 배당확대를 두고 유통업계와 금융투자업계는 두 남매의 증여세 재원 마련 목적이 크다고 보고 있다. 최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 중 각각 8.22%를 이마트 지분은 정 부회장에게, 신세계 지분은 정 총괄사장에게 증여했다. 공시일 기준 주가와 증여세법 등을 적용하면 정 부회장은 1941억 원, 정 총괄사장은 1007억 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증여세 규모가 상당하다 보니 일시불이 아니라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연부연납을 적용하면 5년간 정 부회장은 매년 390억 원, 정 총괄사장은 200억 원씩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남매가 현재 보유한 자산규모는 아직 증여세 납부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부회장은 최근 5년동안 이마트와 광주신세계로부터 약 327억 원의 배당을 받았으며 정 총괄사장은 같은 기간 신세계에서 100억 원의 배당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각 대표회사의 미등기임원으로 근무하며 매년 30억~35억 원 수준의 연봉도 받았다. 현금자산 규모는 적지않지만 증여세 납부를 위해서는 추가재원마련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번 배당확대에도 증여세 마련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정 부회장은 광주신세계,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지분 매각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광주신세계의 경우 이마트의 수장인 정 부회장이 대주주(52.08%)지만 백화점이 주사업이다. 그러다보니 이미 수년 전부터 백화점을 담당하고 있는 정 총괄사장의 신세계 자회사로 편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현재 정 총괄사장이 지분 15.14%를 보유하고 있다. 정 총괄사장은 지난 2018년 기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지분을 21.44%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증여세 납부 등 현금이 필요해질 때면 지분을 조금씩 매각해 현재 지분율에 이르렀다. 이미 지분 45.7%를 신세계가 가지고 있어 경영권 확보도 안정적이다. 개인지분 매각은 큰 부담이 없다. 업계에서는 이번에도 정 부회장이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배당확대" 외치던 국민연금 달래기
이번 배당확대는 두 남매의 증여세 납부라는 개인적인 목적이 선명하지만 국민연금도 주목하는 이슈다. 국민연금은 이마트(12.78%)와 신세계(13.31%)는 물론 롯데쇼핑과 현대그린푸드, 남양유업, 현대백화점, 사조산업 등 주요 식품·유통업계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주요주주다. 보유 목적은 대부분 '일반투자'다. 일반투자는 '단순투자'와 달리 지분에 대한 시세차익뿐만 아니라 배당과 임원의 보수 등 경영 전반에 걸쳐 적극적인 주주 활동도 겸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유통업계의 배당이 다른 업권과 비교해 낮은 편이라며 꾸준히 배당확대를 요구해왔다. 압박 수위는 상당하다. 광주신세계의 경우 배당확대를 요구한 국민연금이 재무제표 승인을 거절하기도 했다. 신세계도 지난해 열린 제62기 정기주총에서 원정희 고문의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의 반대표를 받은 바 있다. 표면적인 반대 명목은 원 고문이 신세계의 법률 자문을 맡는 등 이해관계에 있는 법무법인 소속이라는 이유 때문이지만, 업계에서는 신세계의 짠물배당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증여세 이슈 해소와 국민연금 달래기라는 목적도 있겠지만 실적개선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함부로 펼치기 어려운 정책"이라며 "올해 이명희 회장이 지분을 남매에게 나눠줄때부터 향후 수년간의 실적개선과 대주주의 현금마련 플랜이 가동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워치] 강현창 기자 khc@biz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