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은 '가짜 뉴스'일까
복지부 "담뱃값 인상 계획"…
여론 악화에 "사실 무근" 5년 전 담뱃값 인상…
민간 차원 논의는 '솔솔'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어제 정부가 담뱃값을 8000원 수준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정세균 국무총리
지난 27일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수많은 보도가 이어졌고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러자 국무총리가 직접 SNS를 통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이 소식은 순식간에 '가짜뉴스'가 됐습니다. 사실이 아닌 걸 잘못 보도했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정부가 담뱃값을 올리려 한다는 소식은 보건복지부가 27일 발표한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서 나왔습니다. 이 자료에는 정확히 담배 가격을 세계보건기구(WHO) 평균에 근접하도록 건강증진부담금 등을 인상하겠다고 적혀 있습니다. WHO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담배 가격을 발표합니다. OECD 평균은 7.36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8100원가량입니다. 8000원이라는 숫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발표 이후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질의응답을 통해 이런 계획에 대한 설명도 내놨습니다. OECD 평균은 7달러인데, 우리나라는 4달러이니 담뱃값을 올리겠다는 정책적 목표를 제시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언제 얼마만큼 올릴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담뱃값을 올리겠다는 큰 틀의 목표를 정해놓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Health Plan 2030, 2021~2030) 중. |
잘못 알려진 게 있었다면 정부가 당장 1~2년 안에 담뱃값을 인상하려는 듯한 분위기의 보도일 겁니다. 사실 보건복지부가 이번에 내놓은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은 향후 10년간의 건강정책 추진 방향이 담긴 계획입니다. 담뱃값 인상 역시 당장 하겠다는 게 아니라 10년 안에 하겠다는 목표를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 총리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이를 지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정 총리가 "담배 가격 인상에 대해 현재 정부는 전혀 고려한 바가 없으며 추진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담뱃값 인상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명확하게 못 박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로써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 담뱃값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아무리 10년 계획이라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나가야 할 텐데, 관련 논의의 장 자체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습니다.
담뱃값 인상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입니다. 워낙 반대 여론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4년 말 당시 박근혜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추진했을 때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담뱃값을 인상한 정권은 다음 선거에서 꼭 졌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이후 총선에서 패배했으니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는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담뱃값 인상이 얼마나 민감한 주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10년 계획'이라 하더라도 강하게 부인해야 했을 겁니다.
지난 2014년 한 담배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국회 앞에서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하지만 담뱃값을 지금 수준으로 언제까지나 유지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담뱃값을 올린 지 벌써 5년이 지나기도 했고요. 그래서 지난해 담배 업계에서는 조만간 담뱃값 인상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 민간 학회 학술대회에서 관련 논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8월 한국지방세학회라는 곳에서 '2020 하계학술대회'를 열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담뱃값을 한꺼번에 올리기보다는 물가에 연동해 매년 꾸준히 올리는 방안 등이 제시됐습니다. 물론 정부가 관여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민간 차원에서 이런 논의가 시작된다면 점차 사회적인 논의로 확산하리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보건복지부도 아마 이런 논의를 유심히 지켜봤으리라 짐작됩니다. 관련 기사 ☞ [인사이드 스토리]담뱃세 인상? 아니 땐 굴뚝일까
담뱃값 인상은 보건복지부가 밝혔듯 국민 건강 증진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WHO도 이런 이유로 때마다 담뱃값이 낮은 국가들에 인상을 권고하고 있고요. 적어도 담뱃값이 매우 싸게 느껴져 담배를 더 피우게 되는 분위기는 미리 방지해야 하겠습니다. 이게 보건당국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정 총리의 발언으로 담뱃값 인상 추진이 마치 '가짜 뉴스'가 돼버린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계획이 아예 없던 일이 된 것은 아닐 겁니다. 정 총리는 당장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강하게 부인했겠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논의는 점차 수면 위로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그간 담뱃값 인상은 미루고 미루다가 갑작스럽게 이뤄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갈등도 많았고요. 이번에는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앞으로 꾸준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비즈니스워치] 나원식 기자 setisoul@biz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