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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천산갑? 뱀?… 우한 코로나, 어떻게 인간에게 왔을까

바이러스 감염 경로의 미스터리


환자 처음 발생한 우한수산시장, 박쥐 판매 없었는데 발생 의문

인간과 바이러스 핵심 돌기 달라 중간숙주 통한 전파 가능성 높아

멸종 위기 '천산갑' 숙주로 거론 "인간·동물 사이 회복이 근본 대책"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박쥐에서 비롯됐다고 과학자들은 분석했다. 하지만 처음 환자가 발생한 곳으로 지목된 우한수산시장은 박쥐를 판매하지 않았다. 당시는 박쥐의 동면 시기여서 인간과 직접 접촉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과연 바이러스는 어떻게 인간으로 넘어온 것일까. 정용석 경희대 교수는 "바이러스 감염병은 한번 억제돼도 언젠가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온 과정을 알아야 바이러스의 근본적 차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비늘 달린 바이러스 전파자 천산갑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 과학자들은 지난달 3일 우한 코로나가 윈난성(雲南省)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박쥐에서 유래했다고 발표했다. 박쥐와 인간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전자 염기서열이 96% 같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쥐와 인간 사이에도 벽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표면에 나 있는 돌기(스파이크) 단백질로 숙주세포에 달라붙는다. 이 돌기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부위가 '수용체 결합 도메인(RBD)'이다. 박쥐와 인간의 바이러스는 이 RBD에서 핵심적인 차이를 보였다. 두 바이러스가 각각 다른 동물을 숙주로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박쥐와 인간 사이에 다른 매개 동물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창궐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도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각각 사향고양이와 낙타를 거쳐 인간에게 감염됐다.

조선비즈

그래픽=백형선

중국 화난(華南)농업대 연구진은 지난달 7일 "개미를 잡아먹는 비늘 동물 천산갑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잠재적 중간 숙주"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중국에 밀수된 천산갑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추출해 우한 코로나 환자의 바이러스와 비교했다. 두 바이러스는 RBD 유전자가 99% 일치했다. 천산갑은 멸종 위기 동물이지만 밀수로 중국에 들어와 많이 유통됐다. 천산갑 요리를 진미(珍味)로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중국 전통 의학에서도 천산갑의 비늘을 약재로 쓰기 때문이다.


아직 천산갑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중간 숙주로 확증된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 듀크 의대의 린파 왕 교수는 네이처에 "돌기 단백질의 핵심 부분이 99% 일치한다고 두 바이러스가 반드시 같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천산갑과 인간의 전체 유전자를 비교하면 일치도가 90.3%에 그쳤다. 다른 중국 연구진의 분석에서도 천산갑과 인간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 일치도가 85.5~ 92.4%에 그쳤다. 사스 중간 숙주인 사향고양이와 인간의 바이러스 유전자 유사도가 99.8%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이다.

다른 숙주, 박쥐 직접 감염 가능성도

다른 숙주 동물을 주장한 과학자도 있다. 중국 베이징대의 웨이 지 박사 연구진은 1월 22일 국제학술지 '의료 바이러스학 저널'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볼 때 박쥐에서 시작해 뱀을 거쳐 사람에게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뱀도 우한수산시장에서 판매되는 동물이었다.


과학자들은 뱀이 중간 숙주일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했다. 인간에게 질병을 유발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두 포유동물을 거쳤기 때문이다. 또 베이징대 연구진이 바이러스의 유전자 전체를 비교하지 않았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생명체는 유전정보대로 아미노산을 이어 붙여 단백질을 합성한다. 베이징대 연구진은 뱀과 인간 코로나 바이러스 유전자가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형태만 비교했다.


일부에서는 박쥐 코로나 바이러스 중에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간에게 직접 감염되는 형태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최근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사람으로 바로 옮겨간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2009년 유행한 신종 인플루엔자도 지금껏 새의 바이러스가 돼지 몸에서 인간에게 감염되는 형태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발생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돼지를 거치지 않고 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직접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박쥐의 직접 감염이든, 중간 숙주가 있든 우한 코로나의 원인은 인간이 야생동물과 자연스럽지 못한 접촉을 했다는 데 있다. 중국 우한 장한대의 사라 플라토 교수도 "문제는 동물이 아니라 동물과 접촉한 우리 인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스 창궐 후 중국에서 중간 숙주인 사향고양이를 대량 학살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천산갑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정용석 교수는 "생태계 파괴와 야생동물 밀거래를 막아 인간과 동물 사이의 거리를 회복하는 것이 전염병을 막는 근본적 대책"이라며 "박쥐나 중간 숙주 동물을 공격하는 일은 본말이 바뀐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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