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폰(Vodafone)이 애플리케이션으로 가정폭력 피해를 줄이는 방법

15세 이상 여성 모두가 성적 혹은 물리적 폭력의 피해자인 나라가 있다면?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다. 바로 우리에겐 형제의 나라로 익숙한 터키다. 지난해 터키 경찰청의 가정폭력 교육용 자료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답한 모든 여성이 15세 이후 성적 또는 물리적 폭력에 노출됐다고 답했다고 한다.

Photo CC via Helen Harrop / flickr.com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배우자와 연인을 비롯해 자신의 가족과 친척, 남편의 가족, 학교 또는 직장 동료 등 가까운 관계에 있는 남성이 대부분이다. 가족이 최우선으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실제로 피해 여성의 절반은 경찰이나 비정부기구 등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밝혀졌다.

유럽의 대표 이동통신 업체인 보다폰(Vodafone)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터키 여성들을 위해 특별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기술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Red Light'이라고 알려진 이 애플리케이션은 언뜻 손전등 앱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비밀처럼 숨겨진 기능을 실행한 뒤, 위험에 처한 여성이 핸드폰을 흔들기만 하면 그녀의 정확한 위치와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미리 등록해 놓은 3명의 지인에게 자동으로 보내진다.

보다폰이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 앱의 존재를 최대한 남자들이 알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속옷 태그, 제모용 왁스 스트립 등 주로 여성들이 구매하는 물품 안쪽에 앱의 홍보 문구를 새겼다. 또 메이크업이나 헤어스타일링 방법을 알려주는 블로거로 위장해 동영상 안에서 앱 사용법을 알리기도 했다. 이때 남자들이 영상에 접근할 경우를 대비해 그들의 시선을 끄는 배너 광고를 배치한 다음 다른 곳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세심함을 보인 것은 특히 영리한 방법이다.

속옷 태그에 숨겨진 Red light 앱 홍보문구

보다폰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에이전시 Y&R은 이 비밀의 지속기간이 약 10개월 정도라고 판단했다. 10개월이 지난 후, 이들은 기존 손전등 앱에서 거울 앱으로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이와 관련한 소식 역시 비밀스럽게 퍼져나갔다. 보다폰은 모든 여성 고객들에게 전화로 앱에 대한 안내를 진행했고, 실수로 남자가 전화를 받았을 경우에는 보다폰과 관련한 일반적인 상품 안내로 내용을 변경했다.

 

Red light이 비밀리에 입소문을 타며 무려 25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이 앱을 다운받았다. 이는 터키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여성의 24%를 차지하는 숫자다. 이 앱은 2015년 기준으로 103,122회가 넘게 활성화되어 터키 여성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이 프로젝트를 담은 영상은 2015 칸 광고제 미디어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터키 최초 그랑프리 수상이라는 영광까지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정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지난해 경찰에 신고된 가정폭력 건수는 총 22만 7,727건으로 하루 평균 624건에 달한다. 놀라기엔 이르다. 전체 가정폭력 피해자 중 경찰에 신고한 경험이 있는 여성은 전체 피해자의 2.1%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 평균 624건이라는 충격적인 가정폭력 수치 역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소리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신고하지 못하는 데는 물론 경찰의 솜방망이 처벌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본인의 신고 사실이 알려져 더 큰 보복을 당할 위험성 역시 존재해서다. Red light이 특별한 이유도 바로 신고자가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한다는 점에 있다. 보다폰은 지금도 계속해서 비밀리에 앱을 업데이트하며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현대사회에서 이를 활용한 사회문제 해결 시도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특히 보다폰이 이전에 아프리카에서 선보인 모바일 금융서비스는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성장에도 큰 도움을 준 바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도 기술이 멋지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가정폭력 신고 전화 112 또는 1366)

 

Images courtesy of Vodafone

 

에디터 성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