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나무의 거름이 되는 '캡슐매장'
과학을읽다
전시관에 전시된 '캡슐라문디'를 살펴보는 사람들. 묘목 아래에 타원형의 캡슐이 달려있고, 그 속에 시신이 태아 상태의 모습으로 안치됩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
지구 환경 파괴의 주범은 인간입니다. 살아서는 생존을 위한 활동 자체가 환경을 파괴하는 행동이었다면, 죽어서 땅에 묻히는 것도 결국 환경파괴로 이어집니다.
죽어서도 환경을 파괴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요? 그러나 이는 현실입니다. 인간의 대표적인 장례방식에는 매장과 화장이 있습니다.
매장은 묫자리 확보를 위해 자연을 훼손해야 합니다. 공설묘지는 자리가 모자라고, 매장을 한다고 해도 시신 부패과정에서 생기는 침출수가 토양을 오염시킨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80% 이상은 화장됩니다. 그렇지만 시신을 태울 때 배출되는 일산화탄소와 중금속, 수은, 이산화황 등은 대기오염을 유발합니다.
화장 이후 남은 재에는 아무런 양분이 없습니다. 땅에 뿌려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화장한 유골은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아무 곳에서나 뿌릴 수 없습니다. 바다에 유골을 뿌리는 바다장의 경우 해안선에서 5㎞ 이상 떨어진 해역에 배를 타고 나가 뿌려야 합니다.
요즘은 화장을 해도 뼛가루를 안치할 장소가 부족합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바나나(BANANA) 현상으로 장례시설을 세울 곳은 없고, 봉안시설은 모자랍니다. 그러다보니 어렵사리 마련된 장소에는 대규모 장례시설을 설치해야 하고, 결국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요.
1명의 장례식을 위한 관을 만드는데 30년이나 자란 수그루의 나무가 소모된다고 합니다. 미국 1개주에서 관을 짜기 위해 매년 소모되는 널빤지의 면적이 9000㎢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축구장 1260개 정도의 크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환경에 비교적 영향을 덜 미치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자연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최근 통계청에서 조사한 장례문화 선호도에 따르면, 화장 후 자연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45%, 봉안시설을 원하는 사람이 40%로 자연장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자연장에는 잔디장, 화초장, 수목장 등이 있는데 잔디장은 뼛가루를 잔디 밑에, 화초장은 화초 밑에, 수목장은 나무 밑에 묻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지면에서 30㎝ 아래에 묻는데 용기를 사용할 경우에는 생화학적으로 분해되는 재질을 택해야 하고 용기를 쓰지 않을 경우에는 흙과 섞어 바로 묻습니다. 문제는 이런 자연장지가 많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안나 시텔리와 라울 브레즐 부부는 '캡슐라 문디'를 정착시켜 이탈리아에 '메모리얼 숲'(그림 아래)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매장 후 근처에 어떤 표식도 남기지 않아 묘지는 숲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
최근에 제기된 자연장의 한 방식이 '캡슐라 문디(Capsula Mundi)'입니다. 이탈리아의 부부 디자이너인 안나 시텔라와 라울 브레즐이 만든 이 방식은 캡슐 안에 시신을 넣어 나무와 함께 매장하는 친환경 매장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목장과 비슷하지만 다른 이 방식은 감자와 옥수수 녹말 성분의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커다란 씨앗 모양의 타원형 캡슐에 시신을 태아 상태의 모습으로 담습니다. 캡슐을 땅에 묻고 그 위에 원하는 묘목을 심어줍니다. 시간이 흐르면 땅속에서 캡슐과 시신은 자연스럽게 100% 분해되고, 묘목은 시신을 자양분으로 점점 성장하게 됩니다.
캡슐라 문디로 장례를 치를 경우 묘목 근처나 어디에도 십자가나 비석 같은 표시물을 설치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장례가 치러지면 나중에 묘지는 숲이 됩니다. 장례로 조성된 숲은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지요. 안나 시텔리와 라울 브레즐 부부는 이렇게 자란 나무들로 이탈리아에 메모리 숲을 조성하는 것이 캡슐라 문디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라고 합니다.
그러나 '캡슐라 문디' 방식의 장례가 자리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들 부부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도 이런 방식의 매장법은 불법이고, 각 나라마다 장례에 대한 규제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웰다잉'을 생각하지만 사망 이후 자신의 육체에 대한 처리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죽음도 좋지만 자신이 죽은 이후 환경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장례방식을 미리 선택해 후손에게 알려두는 것도 죽음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