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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대가리'라고?…지식 전하고, 단어도 외우는데?

과학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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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매사이트에서 무려 140억 달러에 낙찰된 전서구의 대표 주자 '아만도'.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우둔한 사람을 놀릴 때 '새대가리'라는 표현을 씁니다. 영어에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birdpain'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과 달리 전해지는 옛말이나 우화에 등장하는 새들은 모두 똑똑한 새들뿐 입니다. 한국의 설화에도 생명을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몸을 날려 종을 친 까치가 있고, 이솝 우화에는 목마른 까마귀가 주둥이가 들어가지 않는 호리병 속의 물을 마시기 위해 돌을 넣어 수위를 높여 물을 마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도 가지를 가려 앉는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친구를 신중하게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주위 환경을 잘 살펴서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로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어라', '앉을 자리를 봐 가며 앉아라' 등의 경구들이 있습니다.


새와 관련된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새는 절대 멍청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아무래도 새대가리란 말 자체가 잘못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의 머리가 작고 목이 길어서 뇌가 작아 보이기 때문에 '새는 머리가 나쁠 것'이라는 편견을, 요즘 말로는 '가짜 뉴스'를 검증 없이 받아들여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의 지능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연구결과들이 적지 않습니다. 요즘은 균을 옮기고 동네를 더럽히는 존재로 박대받는 신세가 됐지만 과거에는 평화의 상징이자 '전서구'로 이름 날렸던 비둘기는 대표적으로 지능이 높은 새입니다.


전서구는 멀리 날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도록 훈련된 비둘기로 편지 등을 배달하는 데 활용합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이 전서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전서구들은 시간이 흐르면 윗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지식을 전수해 세대가 달라질 때마다 비행경로가 짧아지고, 배달 성과도 우수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인간과 몇몇 영장류를 제외하면 다른 생명체에서 이렇게 세대를 걸쳐 지혜를 누적하는 문화를 가졌다는 증거가 보고된 것은 비둘기가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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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는 '새대가리'라는 비하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입니다. 까마귀를 비롯해 새들은 지능이 아주 높은 동물인데 왜 새대가리가 우둔한 사람을 비하하는 단어가 됐을까요?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연구팀은 전서구 한 쌍에게 특정한 경로를 비행하는 임무를 반복적으로 주고, 다음 임무 때마다 동료를 바꾸면서 해당 경로를 날아본 경험이 있는 비둘기와 경험이 없는 비둘기가 함께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총 10차례에 걸쳐 비둘기를 계속 바꿔주면서 세대가 달라질 때마다 지식이 전수되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연구결과 비둘기의 세대가 내려갈수록 비행경로가 짧아지고 성과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둘기 짝의 비행경로는 보다 유선형이 되고 출발점과 목표점을 빠르게 잇는 쪽으로 개선된 것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중국의 부호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탁월한 방향감각과 명석한 두뇌로 전서구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을 차지한 비들기 '아만도'가 전서구 경매에서 무려 140만 달러(한화 16억7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연구팀 관계자는 "전서구의 이런 지식 전수는 한 마리의 비둘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닌 듯하"면서 "각 세대 단독이 아니라 전세대와 후세대의 비둘기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비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혁신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비둘기가 후손에게 지식을 전수한다면, 박새는 성격에 맞는 이웃을 고른다고 합니다. 마치 새로운 가르침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던 맹자의 어머니처럼 박새는 자신과 성격이 맞는 이웃이 거주하는 근처에 둥지를 튼다고 합니다.


옥스퍼드대 다른 연구팀은 최근 숲에서 박새들이 어떤 곳에 둥지를 트는지 관찰한 결과, 번식기의 수컷은 대담한 박새는 대담한 박새 주변에, 수줍은 박새는 수줍은 박새 주변에 둥지를 틀어 자신과 맞는 짝을 찾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번식기의 수컷은 공격성이 높아지는데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 자신과 스타일이 다른 수컷의 주변을 피해 짝을 찾을 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반면, 암컷은 매력적인 수컷이 주변에 둥지를 틀뿐 이웃의 성격은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컷의 이런 선택은 생존 확률을 높이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들어 대담한 박새끼리 근처에 모여 있으면 서로 싸움이 늘고 평소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발생하지만, 동시에 천적이나 침입자가 해당 지역에 나타났을 때 보다 효과적으로 쫓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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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병 속의 물을 먹기 위해 병 속에 돌을 채우는 것처럼 목표를 위해 까마귀는 도구를 활용할 줄 압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연구팀 관계자는 "마치 학생들이 룸메이트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동물의 성격은 그들의 사회적 관계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이 성격을 비롯한 특징에 따라 사회 관계망을 구성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까마귀는 우화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확실하게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없으면 가방을 뒤져 봉지를 까 음식물을 꺼내 먹기도 하고, 호두처럼 껍질이 단단한 먹이는 도로에 떨어뜨려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면 내용물을 빼먹기도 합니다. 이 때 횡단보도를 이용하거나 신호등에 따라 움직여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앵무새는 인간이 가르쳐 주는 단어를 외우기까지 합니다. 굳이 연구 주제로 다루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래도 '새대가리'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을까요? 새 얕보다 큰 코 다칠 수 있습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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