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머금은 봄꽃… 방울방울 봄이 맺혔다
봄비 따라 간 제주 서귀포 여정
동백꽃은 이제 낙화를 하고 있지만 품종에 따라 3월까지 피고 지고를 계속한다. 비를 머금은 동백꽃이 운치 있다. |
제주 여행에 비라도 내리면 야속하겠지만 비를 머금은 봄꽃들을 만나면 화창한 날보다 더 운치 있고 낭만적이다. 비에 젖은 매화(위 왼쪽부터), 복수초, 제주 한란, 동백꽃. 큰사진은 휴애리농원의 매화정원 |
곶자왈 삼나무숲이 비에 촉촉하게 젖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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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체왓소롱콧길 |
머체왓소롱콧길 |
성산일출봉이 바라다보이는 광치기 해변 |
봄바람이 일렁입니다.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솟구친 바람이 돌담과 들녘을 내달리며 삼나무숲을 흔듭니다. 오름을 감싸고 지나간 바람은 어느새 봄비를 불러왔습니다. 화르르 온몸을 불사르듯 피웠던 붉은 동백은 처연하게 낙화를 시작했습니다. 바닥은 떨어진 동백 꽃잎으로 흥건합니다. 하지만 제주는 지금 봄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양지바른 돌담위에는 봄비를 머금은 매화꽃이 절정이고, 성산일출봉앞 유채꽃은 흐드러지게 노란 자태를 뽐내며 여행객을 맞고 있습니다. 그 뿐인가요. 곶자왈 숲길에 들면 천년기념물인 제주 한란을 만나고, 노루귀와 복수초가 무더기로 꽃을 피운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숲은 싱그러운 초록 물결로 가득합니다. 이처럼 봄비를 잔뜩 머금은 제주는 봄의 기운이 충만합니다. 모처럼 제주까지 떠난 여행에서 비라도 만나면 야속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비를 머금은 봄꽃들의 속삭임을 듣다 보면 맑고 화창한 날보다 오히려 더 운치 있고 낭만적입니다. 봄비를 맞으며 제주의 봄을 만끽하고 왔습니다.
제주의 속살 머체왓소롱콧길…봄비에 젖은 초록 곶자왈
봄비가 종일 제주의 숲을 두드렸다. 왈츠곡의 피아노 선율처럼 경쾌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곶자왈로 간다. 서귀포 한남리에 위치한 '머체왓소롱콧' 길이다. '머체왓'은 머체(돌)로 이뤄진 왓(밭)이라는 뜻이다. '소롱콧'은 한남리 서중천에 편백나무, 삼나무, 소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그 지형지세가 마치 작은 용을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 사려니길이나 비자림처럼 알려진 곳이 아니라 여유롭게 숲을 오롯히 느껴볼 수 있다.
숲길의 들머리는 머체왓방문객센터다. 용암이 흘러간 거대한 역사의 흔적 옆으로 펼쳐진 미지의 숲으로 든다. 봄비를 잔뜩 빨아들인 세상은 촉촉이 젖어들고 여행자는 스펀지처럼 비에 젖은 숲길을 빨아들인다. 낯선 식물들과 색다른 흙내음이 만나는 이곳에 서면 길을 잠시 잃어도 좋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길의 백미는 편백나무와 삼나무숲이다.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여유롭게 숲을 산책한다. 편백나무 잎들이 쌓인 푹신한 바닥은 동화 같은 풍경을 더한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을 따라 싱그러운 바람이 지나간다. 숲에 서서 비가 걸어오는 소리와 바람이 지나는 소리를 듣는다. 봄비로 엷게 코팅된 숲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몽환적이다.
돌담쉼터, 느쟁이왓다리, 방애혹, 머체왓 전망대, 산림욕치유쉼터, 머체왓집터, 목장길, 서중천숲터널, 참꽃나무숲길을 한 바퀴 도는데 약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크게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누구나 충분히 걸을 수 있다.
내려오면서 서중천을 만난다. 물이 흐르지 않는데도 고인물들이 맑다. 숲의 모습을 거울처럼 담아내던 서중천의 바위들이 울퉁불퉁 근육질을 뽐내고 있다. 서서히 머쳇왓소롱콧길이 끝나고 있다.
서귀포 서귀다원과 선덕사 인근에 위치한 고살리숲길(2.1km)도 좋다. 효돈천을 따라 난 숲길을 걷는 데 왕복 2시간여 걸린다. 길을 걷다 보면 이끼로 덮인 돌, 뿌리를 땅 위로 드러낸 나무들로 원시자연 같은 느낌이다. 고살리숲에는 희귀종인 제주한란을 비롯해 다양한 식물군이 자생한다. 삼나무숲이 우거진 사려니길은 비가 오면 더 운치있다. 삼나무가 우거진 숲에 들어 맑은 공기 한 모금 마시면 절로 힐링이 된다.
봄비 머금은 봄꽃들의 속사임…휴애리공원 매화와 위미리 동백숲
남원읍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은 매화 명소다. 휴애리는 '쉴 휴(休), 사랑 애(愛), 마을 리(里)'를 조합한 '휴식과 사랑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봄꽃도 매화만 있는 게 아니다. 복수초도 있고, 수선화도 있다. 한쪽은 제법 규모가 큰 동백 정원이다. 동백축제는 끝났지만 아직 물러나지 않은 동백꽃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매화농원에 들어서면 봄비를 가득 머금은 매화꽃이 솜사탕마냥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윽한 매화꽃 향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7000여 그루 매화나무 꽃터널 아래에는 사진을 찍으며 봄을 즐기는 나들이객들로 붐빈다.
나무 밑둥을 뒤덮은 초록의 기운이 봄비에 젖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초록빛과 어우러진 매화꽃의 느낌은 훨씬 더 황홀하다. 비가 와서 아쉽지만 날씨가 좋으면 휴애리공원에 만발한 매화 너머로 눈 덮인 한라산을 바라볼 수 있다.
해마다 봄이면 매화축제를 열지만 여름에는 수국, 가을에는 핑크뮬리, 겨울에는 동백까지 4계절 제주도를 대표하는 꽃을 테마로 축제를 연다. 여기다가 토끼, 제주마, 송아지, 염소 등 다양한 동물에게 직접 먹이를 주며 가까이서 관찰하는 체험도 있고, 흑돼지 공연도 한다.
휴애리공원 입구에는 주차장을 끼고 제법 너른 매화밭이 있다.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밭 안으로 발을 들일 수는 없지만, 매화밭을 끼고 있는 도로를 따라 꽃향기를 맡으며 산책할 수 있다. 매화밭이 공원 안의 매화 군락보다 훨씬 더 크다. 공원의 매화보다 개화가 늦어 매화밭에는 이제 막 꽃이 구름처럼 만개했다. 매화축제는 10일까지 이어진다.
서귀포시 성산일출봉 일대는 노란 유채꽃 물결이다. 일출봉이 바라보이는 광치기해변은 썰물 때 드러나는 암반에 이끼가 붙어 초록융단을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
한겨울에 꽃을 피었다가 봄날까지 지고 피고를 거듭하는 동백은 겨울꽃이지만 사실 가장 아름다울때는 봄날이다. 봄의 춘기가 짙어지면 동백들이 화르르 불붙듯이 타올랐다가 일제히 고개를 떨군다.
제주에서라면 구태여 찾아갈 필요 없이 어디서나 돌담을 두른 마을 어귀에서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도로변에 가로수처럼 심어진 동백나무도 흔하다. 이중 제주의 남쪽의 동백은 서귀포시 상예동, 남원읍 위미리가 대표적이다. 마을 한복판의 토종 동백 군락지에서는 아직 붉은 동백꽃이 피고 또 진다. 활짝 꽃을 피운 것도 있고, 이제 막 꽃망울을 맺은 것도 있다. 위미리 동백나무 군락은 100여 년 전쯤 열일곱 나이로 이 마을로 시집온 현병춘 할머니가 씨를 뿌려 길러낸 것이다. 그러니 동백숲은 100살을 훌쩍 넘긴 늙은 나무부터 어린 나무까지 빼곡하다.
아무리 동백꽃이 끝물이라고는 해도 끝이 난 건 아니다. 종류에 따라 3월 말까지 꽃을 피워내는 것들도 있다. 동백과 매화, 복수초 등 봄을 맞이한 꽃들이 지면 곧 제주는 눈부신 벚꽃으로 봄의 절정을 맞이 할 것이다.
여행메모
- 볼거리 : 서귀포 성산읍에 위치한 휘닉스제주섭지코지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휘닉스아일랜드 글라스하우스와 휘닉스제주섭지코지유민미술관이 있다. 글라스하우스 2층 민트레스토랑에서는 '눈으로 맛보는 요리'라고 말할 정도로 제주 봄 바다의 풍경이 일품이다. 제주민속촌, 김용갑 갤러리, 이중섭 갤러리 등도 비내리는날 찾기 좋은곳이다.
- 잠자리 : 서귀포시 표선면에 지난해 4월 문을 연 '대명 샤인빌 리조트'는 지중해풍 리조트다. 제주의 랜드마크인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게 특징.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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