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겨울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그 어느 겨울보다 추웠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던 겨울은 비로소 끝이 났다. 두 번의 유치 실패,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올 겨울 우리 모두를, 그리고 전 세계인 모두를 꿈 같은 순간 속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 ‘한겨울 밤의 꿈’ 속에는 치열한 경쟁, 눈과 얼음을 녹이는 열정과 노력, 우정과 화합 등 스포츠 그 자체를 넘어선 ‘가치’있는 매 순간 순간이 가득 차 있었다.
아쉽지만 이제는 곧 꿈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 이 겨울 평창이 올림픽을 통해 우리에게 준 선물과 숙제를 하나씩 되짚어 봐야 할 때다.
1. 어쩌면 상실의 시대 속, 하지만 ‘희망’
국민들에게 있어서, 요즈음의 나날들은 그야말로 ‘혹독한 겨울’ 이었다.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들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왔고 대부분의 삶에서 늘어나는 것은 한숨뿐이었을 것이다. 안보, 경제, 정치, 생활 모든 면에서 우환은 깊어져 왔다. 그 덕에 이번 올림픽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으며 준비되었다. 일각에서는 성공적인 개최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터져 나왔고, 매스컴에서는 올림픽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을 호소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그런 우려는 금세 불식되었다. 오히려 우려가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는 스포츠를 통한 희망과 기쁨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쩌면 가장, ‘상실의 시대’ 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는 요즈음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선수들이 주는 감동은 위로이자 희망이 분명했다. 특히 이전 대회들과는 달리 스켈레톤, 알파인 스키, 컬링, 봅슬레이 등 여러 종목에서 메달리스트들이 등장했고, 다음 올림픽, 그리고 다다음 올림픽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자신의 첫번째 올림픽을 멋지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그리고 그 모습에 국민들은 메달 여부에 관계 없이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고, 그렇게 모두의 희망이 모여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결국 그 어느 대회보다도 평화롭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에 우리에게 온 평창의 겨울은 말 그대로, 신이 주신 선물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2. ‘우리’, ‘함께’의 아름다움
이번 올림픽은 ‘평화’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웠던 대회였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남북한이 함께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을 했고,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에서는 남북한 단일팀이 결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스하키 종목의 남북한 선수들이 하나된 ‘팀 코리아’로 결성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특히 불과 올림픽을 한 달여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단일팀 결성이 추진됨에 따라 팀의 역량이나 팀워크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줄곧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우리 팀의 예비 후보 선수들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 박탈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 청원 게시물이 올라올 정도로 반대여론은 극심했지만, 예정대로 남북 단일팀 결성은 성사되었다.
결국 단일팀은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채 무승으로 대회를 마감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링크 안팎에서 서로 가까워지고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 그리고 결국 이별의 순간에서 모두가 눈물짓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다시금 ‘우리’라는 단어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해 주었다.
한편 패럴림픽 스키 종목의 시각 장애인 선수들과 가이드러너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동행’도 빼놓을 수 없다. 서로 간의 음성 시그널을 통해 교감하며 급경사 코스를 극복해야 하는 스키 종목에서 선수들 대신 눈이 되어주는 가이드러너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길에 대한 안내 뿐만 아니라 장거리 경기의 경우는 옆에서 계속 힘을 불어넣기도 하기 때문이다. 패럴림픽 기간 내내 이들이 보여준 ‘함께’의 가치는 대회가 끝나고 나서도 내내 우리의 마음 속에 빛나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숙제들
축제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몇 가지 남겨졌다. 먼저,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 경기에서의 논란을 통해 드러난 빙상연맹의 파벌 문제와 올림픽 후 해임 논란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컬링 협회의 월권 등 스포츠 비리에 대한 문제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스포츠계의 잘못된 관행과 비리는 꾸준히 문제가 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드러난 스포츠 협회들의 그릇된 모습들은 이러한 문제들이 오늘날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 되었는가를 단번에 보여주었다. 부디 이번에는, 평창을 계기로 스포츠와 관련된 낡은 관행들과 비리가 척결되어 보다 투명한 환경에서 대한민국 스포츠가 발전하기를 바란다.
한편 또 다른 숙제로 패럴림픽의 중계 시간에 대한 문제도 심각했다. 패럴림픽의 개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지상파 3사의 이번 패럴림픽 편성 시간은 주요 해외 방송사와 비교해 적게는 두 배 반에서 많게는 네 배 이상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분명히, ‘또 하나의 차별’이 분명했다. 비장애인 선수들과 똑같이, 아니 어쩌면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더 치열하게 훈련해왔을 장애인 선수들의 노력과 꿈에 비수를 꽂는 방송사의 ‘갑질’이자 차별인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질책이 이어진 후에야 방송 3사는 뒤늦게 패럴림픽 중계 시간을 늘려 편성했지만, 그것도 앞선 올림픽 중계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패럴림픽을 보고 싶었으나 볼 수 없어 매우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 방송사들이 부디 이번 패럴림픽을 교훈 삼아 다음 베이징, 그리고 다다음 패럴림픽 대회에서는 시청률에 급급하지 않고 패럴림픽에 또 다른 ‘차별’을 가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사진 출처: 노컷뉴스, 연합뉴스, 스포츠조선, 조선일보)
김현지 에디터 hyunzi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