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언어의 온도
저자 : 이기주
저자 이기주(李起周)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며 살아간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주로 쓴다. 활자 중독자를 자처하며 서점을 배회하기 좋아한다. 퇴근길에 종종 꽃을 사서 어머니 화장대에 은밀하게 올려놓는다. 뤽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블루’를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는 『여전히 글쓰기가 두려운 당신에게』 『언품(言品)』등이 있다.
책소개
말과 글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
언어에는 따뜻함과 차가움, 적당한 온기 등 나름의 온도가 있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기도 하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으로 위안을 얻는다. 이렇듯 ‘언어’는 한순간 나의 마음을 꽁꽁 얼리기도, 그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여주기도 한다.
『언어의 온도』의 저자 이기주는 엿듣고 기록하는 일을 즐겨 하는 사람이다. 그는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몹쓸 버릇이 발동한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저자가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런 언어가 지닌 소중함과 절실함을 농밀하게 담아낸 것이다.
Opinion
우리는 늘 말을 하며 살아간다.
언어의 온도에서는 '말'에 대해 '사람의 입에서 태어나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그러나 때로 어떤 말은 사람의 가슴에 들어가 살아남는다.' 라고 표현한다. 가장 인상 깊은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늘 말을 하며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어떤 말은 타인에게 큰 의미가 없는 말이기도 하고, 어떤 말은 가슴에 남는 말일 수 있다. 그 말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가 하는 말 중에는 누군가로 하여금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아프게 하는 말일 수도 있으며 상처를 주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한 말들이 그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살아남아 계속 그를 아프게 한다면 '말'이라는 것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진다. 반대로 내가 듣는 말 또한 그렇다. 좋은 말들이 마음 속에 살아남는다면 가슴 깊은 곳에서 밝고 따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모진 말들이 마음 속에서 살아남는다면 언제나 나를 괴롭게 한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서는 이러한 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큰 감동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큰 아픔이 되기도 한다. 이기주 작가님은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셨다.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걸을 때 지나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엿듣고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신다. 그래서 언어의 온도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말들을 온전히 주워 담아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에피소드는 내게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어떤 에피소드는 내가 한 말들과 비슷해 부끄럽기까지 했다. 언어의 온도 책 앞부분에 쓰여진 언총이라는 에피소드에서는 '말의 무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의 무덤이라니? 처음들어보는 단어에 조금 생소했고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언총이라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뱉어 문자 그대로 말들의 무덤이 되는 것이다. 말이 많은 사람은 실수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말을 많이 내뱉다 보면 실수인 줄도 모르고 무심결에 말을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총이란, 말을 많이 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언총, 즉 말의 무덤에 말들을 묻고, 꼭 해야 하는 말만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 했다. 에피소드를 모두 읽었을 때 나는 내가 이미 뱉어 누군가의 귀에서 죽었을 수도,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 살아남았을 수도 있는 말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한 말들에 상처받았을 사람들과 실제로 상처받아 나와 관계가 소원해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글은 여백 위에만 남겨지는 게 아니다. 머리와 가슴에도 새겨진다. 마음 깊숙이 꽂힌 글귀는 지지 않는 꽃이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다. 때론 단출한 문장 한 줄이 상처를 보듬고 삶의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 115p
말과 글에는 온도가 있다. 따뜻한 말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너무 뜨거운 말이라면 오히려 데일 수 있다. 차가운 말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니다. 속 시원하다는 표현이 있듯이 어떤 말들은 우리에게 상쾌함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미지근한 말이 제일 좋은 것일까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온도의 말을, 글을 전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사람에게는 따스한 말을 건네고 너무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약간 차가운 온도의 말이 적절한 것 같다. 상황과 때와 사람에 맞게 적절한 온도의 말을 꺼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책이, 이기주 작가님이 내게 던지는 '당신의 언어의 온도는 몇 도쯤 되나요?'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고 곱씹어보며 다시 읽다보니, 나는 내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누군가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위로를 받기도 했고 내게 상처를 주었던 누군가를 조금쯤은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물론 책을 읽었다고 당장 내일의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진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적절하지 않은 온도의 말로 누군가를 상처줄 수 있고 상처입을 수 있으며, 때로는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였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쯤은,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의 온도가 너무 뜨겁진 않은지, 너무 차갑진 않은지, 꼭 해야 하는 말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말을 내뱉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보고 말을 꺼낸다면 나의 언어로 상처받는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살아남은 내 말이 그 사람에게 따스한 온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말을 꺼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상에 지쳐서 혹은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아 다른 말로 위로를 받고 싶거나, 세상의 따스한 말들로 온기를 느끼고 싶다면 이기주 작가님의 언어의 온도를 추천하고 싶다. 우리의 인생은 언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므로.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인 언어로써 올해의 차가운 겨울을 따스하게 보낼 수 있도록.
어제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 - 121p
유지윤 에디터 rjo111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