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을 겪고 있는 케이팝 다문화 갈등
Opinion
‘외퀴’와 ‘화이트워싱’은 뭘까
바야흐로 아이돌 계에도 국내 시장의 성공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부지불식간에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인기상이라 할 수 있는 ‘톱 소셜 아티스트’ 부분에서 3년 연속 수상하더니, 올해는 본상인 ‘톱 듀오/그룹’까지 더해 2관왕 수상을 거머쥐었다. 다소 익숙한 일본 시장에서는 트와이스가 한국 걸그룹 최초로 도쿄돔 투어를 마쳤고 블랙핑크는 미국에서 상당한 규모의 페스티벌인 코첼라에서 현재 미국 최고의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라인업에 오르기도 했다.
국경을 넘어 퍼지고 있는 케이팝의 성장에 기획사들도 앞다투어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그룹 기획에서부터 해외시장 진출에 용이한 외국인의 영입은 눈에 띄게 많아지고 외국어 교육과 국제상황에 예민한 사안에 함구하는 것 또한 소속사 관리사항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세대 아이돌(소녀시대, 카라, 빅뱅, 동방신기 등) 이후로 급격하게 불어난 해외 팬덤의 유입은 케이팝의 세계화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동시에 여러 인종과 문화적 차이를 양산해왔다. 현재까지 주된 케이팝 소비 시장인 일본과는 반일감정에서 비롯한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해왔고 현재에 와서는 여러 유색인종의 해외 팬과 인종차별 논란까지,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위와 같은 현상은 다소 생소할 수 있다. 팬덤 문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인 '외퀴' '외랑둥이' '화이트워싱'이란 단어 또한 낯설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생소한 단어들과 함께 케이팝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문화 충돌을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리사를 존중하라, #제니에게 사과하라
올해 1월, 한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리사의 기사 사진에 “화장 했을 땐 러시아 엘프 같았는데 화장 지우니 그냥 태국 여자네”라는 익명의 댓글과 함께 추천 815개, 반대 145개로 베스트 댓글에 올랐다. 이 댓글은 이내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K팝 팬들에게 전해졌고 태국 방송에까지 전파를 타게 된다. 이는 곧 한국 사회 전체의 인종차별 문제로 치환되며 여러 해외 팬들이 SNS에 #respect_lisa (리사를존중하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다.
논란 당시 개그맨 정용국의 인스타그램 |
최근에는 블랙핑크 제니 매니저의 불법 주정차에 대한 일화를 공개한 개그맨 정용국이 제니의 팬덤에게 인스타그램 악플 테러를 받았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 내용은 제니의 팬덤이 ‘제니에게 사과해’라는 내용으로 2,000개가 넘는 비난 댓글이 쇄도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일반 네티즌들은 부도덕한 매니저의 만행과 동시에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블랙핑크의 팬덤에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열어보면 언론에서 그저 ‘제니의 팬덤’이라고 명시된 팬덤의 실체는 대부분 해외 팬들의 만행이었다. 이런 사실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있기에 ‘무개념’이란 주홍 글씨가 새겨진 블랙핑크의 국내 팬덤은 억울함을 느끼고 있다.
블랙핑크는 멤버가 4명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국적을 포함한 다국적 그룹이다. 먼저 태국 국적의 리사가 대표적인 외국인 멤버이며 호주계 한국인 로제, 어릴 적부터 뉴질랜드와 미국을 오갔던 유학생 출신 제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태국 국적의 멤버 리사 덕분에 블랙핑크는 동남아에서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위의 두 상황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담아내고 있다. 먼저 #respect_lisa사건은 특정 포털사이트에서 정화되지 않은 한 익명의 댓글이 과연 한국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와 동시에 185개의 추천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전반에 존재하는 인종적 서열의식 문제 또한 대두한다. 분명 한국의 블랙핑크 팬덤과 보편적인 대중은 해당 악플과 같은 생각으로 리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태국 언론에서 소개된 익명의 댓글 하나로 한국의 전반적인 인종차별에 대한 오해에 억울함을 느낀다. 동시에 우리 사회를 둘러싼 동남아에 대한 시선을 보면 모두가 동의할 정도로 우호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딜레마 또한 마주할 수 있다. 이는 곧 케이팝의 세계화에 따라 동반되는 한국 전반에 깔려있는 인종 문제로 맞닿아 있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제니에게 사과해 사건은 한국 팬덤과 해외 팬덤의 다른 위기대처 방식에서 기인한 갈등이다. 한국 팬덤은 오랫동안 팬덤 문화 지속해오면서 탄탄하고 정교한 규칙을 쌓아왔다. 일명 #관심을 주지 마세요. 같은 키워드는 게시판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개인에겐 무관심으로 대처해 깨끗한 게시판을 만드는 문화를 말하고 팬덤 사이에 음악방송 1위 투표를 두고 품앗이를 하는 규칙 등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세계가 그 나름대로 정착되어 있다.
위기에 대한 한국 팬덤의 대처 방식은 #관심을 주지 마시오. 와 비슷하게 흔히 말하는 쉬쉬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이다. 이는 연예인들이 어떤 논란이 터지면 자숙 기간을 가지며 일체 매체 활동을 금하는 모습과도 닮아있는데, 위기에 대한 대처는 곧 조용히 있는 것이 암묵적인 한국 문화가 팬덤 문화에도 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한국 정서와 정교한 팬덤 문화를 알지 못하는 해외 팬들에겐 자신의 가수를 욕보이게 한 한 명의 개그맨은 그저 악인에 불과하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여과 없이 2,000여개 넘는 악성 댓글을 게시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조용히 논란이 넘어가길 바라는 한국 팬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외퀴, #화이트워싱
외퀴는 외국인 팬 + 바퀴벌레의 합성어로 무개념 해외 팬들을 통칭하는 속어이다. 처음 이 단어의 기원은 해외 팬과 국내 팬의 노골적인 차별대우에서 비롯되었으나 2000년대 후반 이후로 유튜브와 SNS에서 급속도로 퍼진 범세계적 해외 팬들과 함께 나타난 부작용을 그 뜻에 공유하게 되었다.
흔히 외퀴라고 불리는 해외 팬들의 만행은 경쟁 그룹에 무분별한 악플과 싫어요 테러를 한다거나, 1~2세대 아이돌 이후로 한국에서는 지양되고 있는 아이돌 사생활 침해, 유튜브를 비롯한 모든 영상물에 eng sub plz(영어자막을 달아 달라)를 도배하는 등의 양상이 있다.
나아가 해외 팬들이 국내 팬을 비방하는 예도 늘어났다. 국내 팬들이 자신의 가수를 하얗고 밝게 보정해 사진을 게시하자 해외 팬들이 달려와 ‘White Washing(화이트 워싱)’ 하지 말라며 댓글을 남기고 도리어 해외 팬은 해당 사진을 더 노랗게 보정하며 사진을 다시 게시하는 일도 발생한다. ‘화이트워싱’이란 본래 유색인종 캐릭터나 유색인종 인물을 매체로 만들 때 백인으로 바꾸는 행위를 가리키는 어휘지만 이 단어가 케이팝으로 넘어오며 해외 팬들이 한국 아이돌의 피부를 밝게 보정하는 국내 팬들을 인종주의적이라며 비판하는 뜻으로 변모된다. 이러한 갈등은 곧 한국 팬들이 전통적으로 하얀 피부를 선호하는 문화적 특성에 몰이해에서 발현된 것으로 문화적 차이를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케이팝의 세계화와 동시에 팬덤의 다문화 현상은 불가피한 문화적 충돌을 낳고 있다. 이런 사안에서 한국인이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도 외국인들의 만행이 ‘바퀴벌레’로 치환되는 것 또한 불필요한 논쟁이다. 케이팝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우리는 이 첨예한 문화 갈등 사이 어딘가에서 조정할 ‘무언가’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다문화 사회가 빚어낼 갈등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닌 현실에도 마주할 수 있는 문제이다. 난민 수용 문제가 여러 매체에서 다뤄지면서 다양한 설전이 벌어졌고 당장 수업을 듣고 있는 우리 강의실의 옆자리엔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이 앉아 있다. 시나브로 다문화는 대한민국에 정착해오고 있는 현재이다. 그렇기에 이미 오래전부터 설왕설래되고 있는 케이팝에서의 문화적 갈등은 어쩌면 곧 현실로 도래할 다문화 문제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며, 우리는 이를 잘 다룸으로써 보다 영민하게 현실을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참고자료
- 팟캐스트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 얘기(안알남)
- 1부 [문화] 외퀴? 외랑둥이? part 1
- 2부 [문화] 외퀴? 외랑둥이? part 2
정일송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