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LP판 : 홍대 레코드 포럼
홍익대학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 그곳을 지날 때면 늘 노래가 흘러나온다. 외관은 이쁘장하게 생겨서 얼핏 보면 그냥 잘 사는 부자가 살고 거기서 커피를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는 음악건물. “웨스트 브릿지”이다.
웨스트 브릿지 건물은 SJA뮤직에서 지은 건물이다. SJA뮤직은 서울재즈아카데미와 연관이 있는 회사라고. 건물은 지하 3층에서부터 5층까지 있는데, 모두 음악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3층은 라이브홀, 지하 2층은 합주실, 지하1층은 레코드샵, 1층에는 카페, 2~3층에는 스터디룸, 나머지는 사무실이다. 1층 카페에는 CD를 주로 팔고 지하 1층에는 레코드판을 판다. 음악건물에서는 악기레슨, EDM레슨 등도 한다. 이건 여담인데 지하3층 라이브홀에서 언프리티 랩스타도 녹화하던데.
왠지 모르게 지하 1층이 더 끌려서 무언가에 홀리듯 들어간 적이 있다. 들어갔을 때 첫 느낌은 냄새. 냄새가 달랐다. 어렸을 적 피아노 합주실에서 연주할 때 그 피아노 냄새가 났다. 과거로 돌아간 느낌, 그게 좋았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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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하는 사람들은 레코드샵에 모여들었다. 바이올린 켜는 사람, 첼로 켜는 사람, 영국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 영화에서 나오는 노래를 지은 사람, 보아까지…. 레코드판은 클래식부터 재즈, 영화ost, 가요까지 다양했다. 레코드판 표지를 보는 재미도 있어서 한참을 레코드판을 뒤적거렸다.
레코드샵 안에는 음악이 가득했다. 침과 판이 맞닿으면서 내는 소리는 탁상만한 크기의 스피커로 흘러나왔고, 귀는 즐거운 듯 그 자리에 서게 했다. 레코드판이 오래되어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오히려 그 소리에 집중해서 들었던 것 같다. 뭔가 부족한데 부족한 게 더 맛있는. 어렸을 적 집에 전축이 있었는데 저 낡은 걸 왜 버리지 않고 놔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해가 간다. 부족한 면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게 아닐까.
홍대, 그 젊음의 거리에서 꿋꿋이 오래된 레코드판을 추구하는 ‘레코드 포럼’가게가 마음에 들어서 레코드포럼을 관리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들어오는 방향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가요이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중고에다 클래식이다. 요즈음에는 LP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때문에 가요도 LP판으로 판매한다고. 제이슨 므라즈도 있었다. 최신 판들은 뜯어볼 수 없어서 들을 수 없지만, 오른쪽 중고판은 틀어달라고 하면 틀어주신다. 가격은 상세히 나와있고, 어디에서 수입해왔는지, 제품의 상태는 어떠한지도 적혀져 있었다.
'레코드포럼'은 그렇다고 단순히 레코드판만 파는 곳이 아니라 레코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앞서 말했듯이 중고는 틀어달라고 하면 틀어주어서 마음에 드는 곡을 들을 수 있다. 의자도 마련되어 있어서 앉아서 한없이 들을 수도 있다. (물론 눈치가 보이겠지만.)
이 공간에서는 매주 '소리'에 대한 강의가 열린다. 소리를 연구하시는 박사님 등을 초청해서 1회마다 15000원 수강료를 받고 진행한다. 처음 강의는 공짜였는데, 친구가 가보고 말하길 정말 듣기 좋은 강의라 하였다. 생소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잘 전달해 주었다고.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recordforumlp)에 보면 강의에 대한 정보가 나와있다.
주인분과 레코드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무한도전 킹스맨 특집에서 정형돈과 광희가 했던 ‘패션왕’이 많이 생각났다. 분명 광희가 옷을 더 잘입혔는데 정형돈이 승리했던 이유는, 남들이 단점이라고 보는 요소들을 더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단점을 오히려 매력이라고 칭하는 정형돈. 레코드 주인은 정형돈의 생각과 많이 닮아있었다.
레코드판을 판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니어보였다. 앉아있으면서 잠깐 지켜봤는데, 한 손님이 와서 사더라도 레코드판을 찾는 일부터, 어떤 기계에 넣어서 돌리고, 다시 넣어서 계산하고. 그리고 늘 레코드로 음악을 틀어놓는데 한 레코드판에 들어있는 곡이 끝나면 다시 빼서 새로운 레코드 판을 끼운 다음 침과 맞춰야 하고, 음량도 그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주인분께서는 번거롭지 않다고, 오히려 그런 게 매력이라고 하였다.
사실 지금은 스마트 폰에서 유투브, 멜론 등으로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 손으로 까딱하면 들리는 것이 음악이다. 반면에 자리를 차지하는 기계, 큰 레코드판, 역시나 자리를 차지하는 큰 스피커. 어쩌면 레코드를 사서 듣는 것만으로도 내 공간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돈이 많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도 좋은 이유는 그 불편함 속에서 오는 또 다른 매력 때문이 아닐까?
나의 공간 속에서 차지하는 음악이라는 매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앨범 표지를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 판을 갈아 끼우러 가는 동안에 다음 곡 선정을 위한 설렘. 레코드판에 침을 내려놓기 바로 직전까지의 떨림. 그 쉽지 않은 순간들 사이에서 감성이 나온다.
하지만 여기는 레코드를 파는 곳. 레코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온다. 마치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미술품을 돈의 가치로 생각하듯, 레코드판을 돈으로 생각하고 나중에 얼마나 가치가 오를까 묻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럴 때마다 레코드를 진심으로 사랑해줬으면, 한다. 연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니까 상대방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아껴줬으면 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떠나가는 배라고, 떠나보내라고 한다. 레코드판의 시대는 이제 다 끝났다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주워서 무엇 하냐고.
불편하다고, 번거롭다고, 못났다고, 쓸데없다고.
맞다. 못나고, 쓸데없고, 번거롭다. 못난 LP판이지만 뭐 못나면 어때. 그것도, 즐길 줄 알면 된거다. '레코드 포럼'공간에서만큼은 못난 것도 즐길 수 있는 감성이 있는 것 같다.
출처 : SJA 홈페이지(http://www.sjamusic.co.kr/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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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jinju16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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