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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엽기적 옛사랑

Opinion

<엽기적인 그녀>를 보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그녀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만,
그녀 옆에 있어 주겠다고...
- 엽기적인 그녀 中 -

옛사랑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체는 변함이 없으면서 말이다. 2000년대, 1990년대 감성 등과 같이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원인이 될 수 있겠다. 기술의 발전이 아무리 뛰어나도, 우리가 이따금 아날로그 감성을 찾으려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기에 겉보기엔 촌스러워 보이는 영화나, 드라마, 음악을 지금까지도 간간이 회자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먹고 살기 어려울수록 상대적으로 그러지 않았던 지난 시절로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 제법 적지 않은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오가는 감성으로 사랑을 담았다. 조금 유치하고 엽기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사랑은 묘하게도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애정전선을 확인하고, 애매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고 자신을 되살펴보기 위해 진심을 적은 편지를 타임캡슐에 넣는다.

 

그 기간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존재이자 의미인지 확인한다. 단지 '그녀'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싶단 마음을 먹었던 '견우'는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 역시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았던 죽은 옛 연인의 존재를 보내주고, 두 사람은 자연스러운 우연처럼 재회한다.

다시, 엽기적 옛사랑

코믹을 기반으로 한 진실한 사랑 이야기라는 구성은 지금까지도 한국 로맨스코미디의 표준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견우'가 새로운 남자친구에게 그녀에 관한 이모저모를 하나씩 자세히 알려주는 장면은 이전의 분위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순수하게 좋아하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첫사랑으로 많은 자리를 내어 준 만남은 우연과 인연을 거치며 담백한 재회로 매듭지어진다. 타임캡슐을 묻은 이후로 마음만 먹는다면 만날 기회가 있었겠지만, 자신의 감정과 역할에 충실하며 만날 순간을 묵묵히 기다리는 모습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때,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견우의 독백을 한 번 곱씹어보자.

전 이렇게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너무 우연이라고요?
우연이란 노력한 사람에게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랍니다.
- 엽기적인 그녀 中 -

실제로 요즘 사랑이 이런 우연과 운명을 함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시각에서 '옛사랑'과 '지금 사랑'의 차이가 어느 정도 나타난다고 볼 수 있겠다. 사랑을 하는 데 있어 이미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이 요구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가치가 절대로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절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사랑을 사유하는 방식은 어떻게 풀어서 살펴볼 수 있을까?

다시, 엽기적 옛사랑

한병철은 그의 저서 『에로스의 종말』에서 현대 사회의 사랑은 '관계의 나르시스트화'로 전락하였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전에 비해 요즘 사회는 무한한 선택의 자유와 대상 속에서 개개인을 동질적인 존재로 긍정화된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은 커다란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성과와 일에 급급하여 자신을 착취하는 사회 안에서 타자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도구로 가치가 전락한다고 본다. 종합하자면 현대인은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을뿐더러, 수많은 사람 마저도 자신과 별 다를 바 없는 동질감을 공유하기에 예전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다시, 엽기적 옛사랑

물론 이러한 진단은 한병철의 개인적인 시각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있다. 한병철 또한 진단에 따른 해결책을 효과적이고 분명하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요즘 시대의 사랑이 암울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지금도 우리는 옛날 아날로그 감성의 사랑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고, 기회가 된다면 그러한 사랑을 한 번 쯤은 겪어보기를 희망한다. 그러한 현실을 파악하고 여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에로스가 종말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앞서 썼듯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감정 자체가 소멸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대가 그리운지, 아니면 그때가 그리운지'라는 언어유희가 적어도 인간미를 그리워하는 걸 공유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런 영상과 노래를 접하며 감성적으로 넉넉했던 그 시기의 문화를 동경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런 감정이 남아있어 그래도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영화 OST MV

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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