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는 게 정말 내 탓일까?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
퇴사했다. 회사에 제출하는 사직서엔 퇴사 이유를 ‘일신상의 이유’로 적어야 했다. 내가 겪었던 복합적인 상황과 내가 퇴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와 배경에 대해선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한다는 말처럼 절은 떠나는 사람한테 그리 관심이 없었다. 복잡한 마음이 들어 나 또한 주저리 설명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사직서를 보내면서 조직내부자들의 귀에 대고 "과연 이걸 나의 희망 퇴사로 봐야 할까요?!!" 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리치고 싶었다.
서류상 퇴사의 이유는 대부분 '개인적 사정' 사유로 귀결된다. 많은 사람이 사직서의 수정을 반복하지만 끝내 '일신상의 이유로'라고만 적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면? 회사 내의 (혹은 외의) 근원적 문제가 있을 땐? 그걸 모두가 느끼면서도,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결국 '일신상의 이유로' 그곳을 떠나고 만다. 무언가에 의해 떠밀려 나가는 것이어도 내가 희망한 퇴사와 이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퇴사를 선택했다. 회사에서 나의 아픔은 그저 개인적 사유나 부주의로만 생각되기 마련이었고 아픈 와중에도 일은 최우선이었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퇴사를 고민하게 됐다. 더 이상 못 버티겠어서 떠났다.
돌이켜 보면 나에겐 STOP 버튼이 필요했다. 그 자체가 적응 못 하고 뒤처진 건 아닐까 하는 느낌에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다.
내 몸에서 보내는 신호 "멈춰"
건강의 적신호는 나의 상태를 명확히 알려준다. 젊은 나이에 겪지 않을 질병에 걸렸다. 작년 회사가 재정이 어렵다고 해서 노동조건을 변경하고 계약서를 수정하게 됐다. 내 월급 비스므리한 활동비를 지원해주는 용역단체가 건강검진표를 요구했다.
그 덕분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내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저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것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회사에 몸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전달했지만 일은 해야 했기에 차일피일 치료는 미뤄졌다.
휴가를 신청하고 얻는 과정에서 내 상황을 고려해주십사 요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조금 긴 휴가를 얻게 됐다. 그래도 계속 일에 신경 써야 했다. 휴가인데도 마음이 불편했다.
어찌 됐든 "일은 되게 해야 한다"는 일 중심 사고나 멋지게 일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나 책임 때문인지 모르겠다. 휴가임에도 일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가 유지됐다.
하루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아파요. 이게 다 스트레스 때문이죠, 뭐. 사는 게 그렇지" 나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아파지고 나니 아니었구나 느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회사에서의 관계들, 일들이었다.
조직 안에선 소통이 되지 않았고 최소한의 배려도 부족했다. 그러나 ‘아닐 거야. 좋은 사람들이야’라고 계속 부정했다. 내가 사회생활과 일을 잘 모르니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니까, 라고 생각했다. 회사도 어렵고 다들 바쁘고 힘들게 일하니까, 라고 이해하려 했다.
그 모든 일이 축적돼 내가 아파지고 나서야 내 몸을 버겁게 만들 만큼 '재정상 어려움'을 강조하던 회사의 말은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됐다. 함께 일하는 나를 기억하지도 배려하지도 않았던 거구나 느꼈다.
무례했다. 무례했던 조직, 무례했던 상사와 동료들에 대해서 격렬한 감정과 생각이 들면서 회사 안의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았다. 나 자신을 내팽개처놓고 누군가를 위해, 일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퇴사하고 알게 된 사실
한때 일하고 바쁜 것은 멋져 보였다. 책임감, 소속감, 자아실현 등등의 보람찬 느낌. 조직은 항상 어렵다고 말하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이 밀려왔지만 일을 해나간다. 일이니까 해야지. 열심히 해내야지.
부조리한 조직 생활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들어도 나는 직장인, 나는 사회초년생이라는 이유로 참고 일해야 한다. 퇴사를 고민하게 되는 시점은 얼마든지 오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사직서를 수정하고 저장해둔다. 그렇게 나 자신은 점점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갔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라는 말처럼 멋지게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길 바랐다.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해서 사회생활을 잘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사회생활과 일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서 몸도 마음도 다쳤을 뿐.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했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휴가를 보낼 때, (그러나 여전히 일하는 중인 것 같았던) 더이상 몸이 버티지 못하겠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해도 날 힘들게 하는 상황을 변경할 수 있는 결정권/권한 따윈 내게 없다는 걸 직시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픈 채 익숙하게 일하는 것.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는 게 느껴지자 황급히 비상구를 찾아 나가듯 퇴사했다. 사직서에 적은 이유완 달리 소진되고 소모돼서 도망치듯이 나가게 된 것 같았다.
직썰 필진 BIG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