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대신 콩을 먹으면 일어나는 일
이달 초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전 세계를 향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인류에게 약 1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기후변화를 향한 경고의 목소리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인류는 아직 피부에 와닿을 만한 해결책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죠.
심지어 환경이 계속 파괴되고 재앙에 가까운 기후변화가 임박했다는데 도무지 바뀌지 않는 상황을 보며 좌절하고 자라나는 세대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표현한 신조어 'Ecoanxiety'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환경에 대한 걱정’ 정도가 되겠죠.
기후변화를 실제로 믿고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도널드 트럼프 같은 정치지도자의 행보는 걱정을 넘어 끔찍할 겁니다. 미국은 G20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파리기후협정*을 비준하지 않았죠. (*파리기후협정: 2015년 파리에서 열린 21차 기후변화협약으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파리협정 파기를 주장했고 당선 이후 실제로 파리협정 이행조치를 백지화하고 정상회의에서 협정 반대 의사를 밝혔다.)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하는 트럼프 ⓒCNN |
그래서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이를 만회할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실마리는 우리의 식단에 있었습니다.
헬렌 하와트(Helen Harwatt)는 영양학적 측면에서의 사람의 건강과 지속가능한 개발의 측면에서의 지구의 건강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식품 체계를 연구하는 환경영양학자입니다. 기본적으로 하와트는 정책을 통해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아래서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와트와 동료 연구진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하와트와 연구진은 미국인의 식단에서 소고기를 콩으로 완전히 대체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계산해봤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감소량은 엄청났습니다. 지난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오는 2020년까지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킬 방도가 도무지 보이지 않아 흐지부지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지킬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즉, 현재 에너지 수급 구조를 바꾸지 않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비롯한 탈것도 그대로 유지한 채 사람들이 닭고기, 돼지고기, 달걀, 치즈 등은 지금과 똑같이 먹어도 소고기를 콩으로 바꾸는 단 한 가지만 실천해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의 46~74%를 달성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작은 변화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하와트가 한 말입니다. 사실 고기를 안 먹거나(vegetarianism) 훨씬 엄격한 채식(veganism)을 하는 것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는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완전히 고기를 끊을 정도로 식단을 급격히 바꾸지 않아도 여전히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좀 더 특별합니다.
즉, 식단에서 소고기만 빼는 어떻게 보면 작은 변화가 우리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구와 환경에 큰 효과를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실천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자동차 크기를 줄이는 일이나 외출할 때 실내등을 잊지 않고 끄는 일, 샤워를 오래 하지 않아 물을 절약하는 일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효과가 큽니다.
자, 그럼 소고기 대신 콩을 먹는다고 어떻게 뜨거워지는 지구가 좀 식게 될지 다시 말하면 소고기는 어떻게 온실가스의 주범이 됐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의 적지 않은 부분이 콩을 비롯한 가축 사료를 생산하는 밭으로 개간됐습니다. 소 3만 8천 두를 기르는 대형 축사에서 소를 먹이는 데 드는 사료를 공급하려면 매일 콩 900톤이 듭니다. 먹이 사슬을 그려보면 콩을 먹고 자라 도축된 소의 고기를 최종 소비자인 사람이 먹는 셈이죠.
ⓒ연합뉴스 |
일단 소를 기르는 동안 많은 온실가스가 나옵니다. 소는 사료에서 섭취한 칼로리 대부분을 몸집을 키우고 살을 찌우며 움직이는 데 써버리기 때문에 인간이 소고기를 먹을 때 얻는 칼로리는 소가 도축되기 전까지 섭취한 콩의 칼로리보다 훨씬 적습니다.
게다가 사료로 쓸 콩을 재배하려고 열대우림을 개간했기에 자연림은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온실가스를 그대로 대기 중에 방출해버립니다. 또한, 소를 방목할 목초지를 만들고자 베어버린 나무, 사료 공장과 축사를 지으려 베어버린 나무도 있습니다.
콩을 재배해 소에게 먹일 사료를 만드는 대신 사람이 이를 직접 섭취한다면 열대우림을 파괴하지 않고도 인류는 필요한 영양소를 얻고 지구도 지금처럼 급격히 뜨거워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청와대 정책 브리핑 페이지 |
이처럼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소 사육과 소고기 섭취는 다들 잘 알다시피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일어납니다. 전 세계에서 소고기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 브라질에서 기르는 소만 2억 1,200만 마리에 이릅니다.
UN의 통계를 보면 지구상에 곡식을 재배하는 경작지의 33%가 가축을 먹일 사료용 작물 재배에 쓰이죠. 너무 추워 풀이 자라지 않는 동토를 제외하고 전 세계 땅의 26%가 가축을 방목하는 목초지로 쓰입니다. 결국, 지구상의 땅의 1/3가량이 사람이 먹을 고기를 생산하는 가축을 먹이는 데 쓰이는 셈입니다.
고기 수요를 줄여 사료 수요와 사료를 생산하는 경작지만 줄여도 산림을 마구잡이로 파괴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국인이 오늘 당장 식단에서 소고기를 콩으로 바꾼다면 지금 미국 경작지의 42%를 다른 데 써도 됩니다.
기후변화를 막거나 늦추기 위해 정부가 주도한 정밀한 정책을 앞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소비자 개개인이 좀 더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소고기를 콩으로 바꾸는 무척 간단한 일만 실천에 옮기면 금세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이를 위해 기후변화 대책으로 ‘소고기 대신 콩을 먹읍시다’ 같은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이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합니다.
ⓒMBC |
하와트는 또 전체 식단 중에 소고기만 콩으로 바꾸는 건 전혀 복잡하지 않고 대단한 의지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필수 영양소와 영양소 간 균형 등을 고려해 식단 전체를 새로 짜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채식주의나 비건이 되려면 신경 써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가리다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무얼 어떻게 먹어야 영양과 건강도 챙기면서 책임 있는 윤리적인 소비자가 될 수 있을까요? 제대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건 이렇게 힘든 일입니다.
소고기만 콕 집어 콩으로 바꾸는 건 훨씬 간단합니다. 쉽게 말해 가장 심각한 문제만 해결함으로써 최소한의 노력만 들여 가장 큰 효과를 내는 겁니다.
“제일 심각한 문제만 확실히 고쳐보자는 겁니다. 먹을거리가 생산돼 우리 식탁에 오르는 길고 긴 과정 가운데 결과적으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뿜어내는 지점이 어디인지 찾아낸 다음 우리가 단백질이나 칼로리 등 섭취해야 할 영양소를 그대로 섭취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찾아본 거죠.”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얻게 될 심리적인 뿌듯함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입니다. 섭취하는 영양소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간단한 실천을 통해 기후변화를 막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이는 분명 보람 있는 일이 될 겁니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경고에 철저히 귀를 닫은 정권을 심판하려고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대선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직썰 필진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