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스러움과 성실함
논어 1장 학이學而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가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며, 배움도 견고하지 못하다. 충성스러움과 성실함을 주로 하되, 자기만 못한 자를 벗으로 삼지 말며,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고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子曰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가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문을 해도 견고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무거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입을 다물고 침묵하면 되는 걸까요? 여기에서는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생기기 않는다고 했는데, 사람은 중심이 없을 때 위엄도 없습니다. 즉, 무겁다는 말은 중심이 잡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뜻이 확고히 서지 않으면 중심이 잡힐 수 없습니다.
‘뜻’(志)이란 ‘마음’(心)이 ‘가는 것’(之)을 의미하니, ‘뜻’이 섰다는 것은 이제 죽으나 사나 그 길로 가겠다고 정한 것이고, 그런 상태를 ‘입지’(立志)라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자꾸 바뀌는 생각은 뜻이 섰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판사가 될 거야!”라는 뜻을 세웠다면 그게 절대 변하지 않아야 하고, 자나 깨나 그 생각만 하고, 그 방향으로 연구하고 노력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지독하게 품은 뜻이 하나 있어야 사람이 무거워집니다.
‘충’(忠, 충성 충)자는 마음(心)이 무언가 하나에 꽂혀 있는 형상(中)의 글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무엇에 충성한다는 의미일까요? 바로 자신의 ‘뜻’입니다. “나는 가정에 충실하기로 했어!” 하면, 자나 깨나 가정을 최우선시 하겠다는 의미죠. 마찬가지로 학문에 충성하기로 했다는 것은, 자나 깨나 학문에 모든 시간과 정력을 쓰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이런 뜻이 있는 사람은 무거워집니다. 반면, 뭔가 하나라도 깊은 뜻을 품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는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행실이 한없이 가벼워집니다. 사람들이 “이게 좋다.” 하면 팔랑귀가 돼서 “그럴까?” 했다가 “저쪽 가면 더 좋은 게 있다던데….” 하면 또 “그럴까?” 하는 것이죠. 그런 사람에게서는 위엄이 나오지 않습니다.
학문은 확립되지 않고 군살만 확립될 수도... (삽화: 차망우인) |
그런 사람은 학문을 하더라도 확립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뜻을 세웠다는 것은 뭔가에 몰입한다는 의미인데, 우리의 뇌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또 몇 가지를 서로 비교하면서 “이럴까? 저럴까?” 하고 있을 때 뇌는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따라서 하나로 뜻을 세우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어렵습니다. 지긋이 하나의 뜻을 품고 가야만 그 학문을 견고하게 만들고 확립시킬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뜻이 확립되어 늘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늘 한결같이 그 길로 가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한 것은 지켜지리란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충성스러움’(忠)과 ‘성실함’(信)을 주로 하되, 이렇게 계속해서 양심을 밝히는 학문에 최선을 다해 무겁게 파고 들어가라는 의미입니다.
또 자기만 못한 자를 벗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존재가 바로 벗인데, 어떻게 벗을 함부로 사귀겠습니까? 양심을 공부하는 선비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양심이 더 잘 계발된 친구를 벗으로 삼아야만 공부에 진척이 있을 것입니다. 나보다 못한 친구는 양심을 추구하지 않고 욕심만 추구하는 친구를 말합니다. 그런 친구와 같이 있다 보면 나도 그 욕심에 물들게 되니 피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고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들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용’입니다. 거부하면서 버티거나, 속으로 분노하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말이 맞으면 빨리 수용해야 하는 것이죠. 만약 평소에 사사건건 나에게 시비를 거는 친구라면 그 지적이 좋은 의도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위한 것일 수 있으니 그 친구와의 인간관계를 정리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친구인데 어느 날 나를 위해 따끔한 지적을 했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럴 확률이 높겠죠. 그럴 때에는 잘 분석해 보고 그 말이 일리가 있으면 빨리 수용하는 게 최고입니다.
그렇게 지적을 빨리 받아들이고 나면 기억에도 안 날 일이 될 텐데, 그걸 못 받아들이면 서로 관계가 안 좋아지고, 그 친구가 지적한 보람도 없어지고, 나는 나대로 전혀 바뀌지 않고, 모두가 안 좋아는 것이지요. 모두가 좋아지려면 얼른 수용하고 빨리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친구가 더 이상 지적하지 않아도 되고, 나도 흔쾌히 한 단계 성숙하게 되겠죠.
옛날 선비들에게도 지적 받았을 때의 도道가 있었습니다. 그 말이 자명하면 빨리 받아들이고, 자명하지 않으면 그 친구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 친구의 말이 자명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양심분석을 차분히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명하는 결론이 나면 빨리 수용해 주는 게 자신의 공부에도 도움이 됩니다. 학문에 뜻을 두었다면 무엇이든지 공부에 써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