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천승의 나라를 다스림

논어 1장 학이學而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천승의 나라를 다스릴 경우, 일처리를 경건하게 하여 믿음을 주어야 하며, 씀씀이를 절약하여 백성을 사랑해야 하며, 백성을 부림에 때에 알맞게 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여기서 ‘승乘’이라고 한 것은 ‘수레’를 말합니다. 따라서 천승(千乘)의 나라는 '수레 천 대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 제후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런 식으로 천자국은 ‘만승의 나라’라고 표현합니다. 중국의 천하는 천자가 그 전체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천자는 기본적으로 천자국을 다스렸고 주변의 제후국들은 제후가 다스렸습니다. 천자국과 마찬가지로 제후국에도 왕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모두 독자적인 나라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운영되었던 것이 봉건제입니다.

 

제후는 조선시대로 치면 고을 수령이나 관찰사와 같은 지방 담당자들이 해당되고,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지자체장이나 각 지방의 도지사, 또는 기업이 제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춘추시대나 전국시대에 이르면 제후의 위세가 천자보다 더 높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제후들이 천자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고 위세 높은 제후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춘추시대에는 춘추오패(春秋五覇)라는 다섯 제후가,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는 일곱 제후가 그와 같은 위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차이가 있다면, 춘추시대 때에는 제후들이 천자 앞에서는 천자를 어느 정도 대접해 주면서 실질적으로 뒤에서 대장 노릇을 했다면, 전국시대에 와서는 제후들이 '내가 천하를 먹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싸워서 이긴 사람이 천자 자리를 차지한다.’ 하고 노골적으로 서로 싸우던 시대인 것이죠. 그래서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전국시대에 오면 완전히 무너지게 되고, 결국 진나라의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됩니다. 

 

공자는 춘추시대의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주나라를 중심으로 질서를 다시 회복하고자 했기 때문에, 제후가 천자를 능멸하는 하극상을 막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반면, 전국시대에 이르면 이미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에, 전국시대의 맹자는 주로 “어느 제후가 천하를 차지하겠느냐?”라는 질문을 받았고, 그는 제후들에게 양심 있는 제후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으니 양심을 가지라도 조언했습니다. 이렇게 두 시대는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천승의 나라를 다스림

맹자의 가르침에 뜨끔한 제후들... (삽화: 차망우인)

논어에서 공자는 천승의 나라, 즉 제후의 나라 하나를 다스리더라도 일처리를 경건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사이신(敬事而信)’은 일처리를 경건하게 함으로써 남에게 신뢰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일처리를 할 때 늘 깨어서 양심대로 하는 것이 ‘경(敬)’입니다. 늘 양심의 소리를 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신용을 얻겠죠. 

 

그리고 ‘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에서 ‘절(節)’은 대나무의 마디를 의미합니다. 대나무 마디처럼 ‘이건 여기까지’ 하면서 맺고 끊는 것이 절제입니다. 씀씀이를 절제하라고 했는데, 이는 재화나 돈을 쓸 때 절약하라는 것이죠. 그래서 백성(人)을 사랑하라(愛)고 했습니다. 따라서 ‘절용이애인’은 리더가 쓰는 바를 아낌으로써 백성을 사랑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리더가 재화나 돈을 함부로 써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리더가 오직 백성만을 위해서 재화를 쓴다면, 쓰면 쓸수록 그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드물겠죠. 예를 들어, 왕을 모시고 춤추는 연회나 제사를 지내는 일 등을 위해 백성들의 세금을 걷어서 다 써버린다면 백성들의 살림이 점점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니 나랏일에 돈을 쓸 때 그 쓰임을 적당히 절제함으로써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또 옛날에는 세금만 걷은 게 아니라 나라에서 백성들의 노동력을 동원해서 썼습니다. 군역도 있었지만, 나라에서 도로를 깔거나 성을 쌓을 때에도 백성들의 노동력을 세금처럼 걷어서 활용했던 것이죠. 그래서 공자는 백성을 부릴 경우에는 때에 알맞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농사를 지어야 할 시기에 사람들을 데려가 버리면 농사를 망치게 되니, 동원을 하더라도 백성들이 농사일을 마무리하고 쉴 때 하라는 의미죠. 그런데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나라에서 일처리를 할 때 양심적으로 하지 않고, 나라 재정을 흥청망청 쓰고, 백성들을 동원하고 싶을 때 맘대로 불러다 써서 민생경제에 파탄을 가져오는 일이 많았다는 뜻이겠죠. 

 

공자가 살았던 당시에는 각 가문이 지식이나 정보를 자기 후손들에게만 가르쳐줌으로써 세습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평민인 공자가 등장해서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보다 더 큰 지식을 쌓았습니다. 게다가 학당을 만들어서 신분을 가리지 않고 제자들을 받아 가르쳐 줌으로써 그 지식을 널리 공유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주 유능한 인재들이 양성되었고, 그 당시에 유례없는 지식 전문가 그룹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공자에 대해 위기감을 느꼈던 기존의 권신들이 공자의 임용을 막아버렸기 때문에 공자는 결국 어떤 나라에서도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반면 그의 제자들은 모든 나라의 제후들이 원했고, 공자 학당에서 우등생인 경우 모두 고액의 연봉에 채용되었습니다. 공자를 직접 임용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제자들을 쓰면 그들을 통해 공자의 유능한 조언들을 많이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이런 식으로 양심전문가들을 키워서 각 제후 나라에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의 제자가 제후국에 가서 제후가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을 돕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논어를 보면 그때 공자는, “북을 쳐서 성토해도 좋다.” “욕을 해도 좋다.” 하고 다른 제자들이 비난하는 것을 허락하기도 했습니다. 제자는 “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고 와서 하소연 했지만, 공자는 “차라리 일을 하지 말 것이지, 어떻게 제후 편에 서서 백성을 괴롭히는 것을 도울 수 있느냐?” 하고 아주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양심을 잘 배워서 세상에 나가도 욕심 앞에서 지거나, 제후들의 권력 때문에 힘을 제대로 못 쓰고 조언 정도나 해주는 역할에 머물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겠지만, 공자는 그런 상황을 아주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논어의 이 구절도 공자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만약 제후의 나라에 가서 정치를 돕거나, 직접 정치에 뛰어들거나 또는 조언을 하고 자문 역할을 할 때 이것을 유념해라.” 하고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나라의 정치나 조직의 운영을 생각할 때 이 말씀을 잘 새겨서, 일처리를 양심껏 하고, 공적인 돈을 아껴 쓰며, 인력을 동원을 할 경우에는 그 때에 알맞게 함으로써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실시간
BEST
yoonhongsik
채널명
윤홍식
소개글
유튜브 조회수 1000만의 인문학 스타 강사 저술과 강의를 주업으로 삼는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