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학문
논어 1장 학이學而편
자하子夏가 말하길 “현명한 이를 현명하게 여기되 예쁜 여자를 좋아하듯이 하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임금을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바치며, 벗과 서로 사귀되 말에 믿음이 있으면, 비록 학문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학문을 하였노라고 말하겠다.”라고 하였다.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논어에는 공자의 말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했던 좋은 말도 실려 있습니다. 7절은 공자의 제자 중에 성이 복(卜)이고 이름이 상(商)인, 자하(子夏)라는 분이 한 말입니다. 여기에서 ‘현명한 사람을 현명하다고 여기는 것’(賢賢)은 철인을 철인으로 존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철학자구나!’ 하고 알아보고 존경하는 것이 현명한 이를 현명하다고 여기는 것이죠.
그런데 현자를 알아보되, 예쁜 여자를 좋아하듯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건 남성들에게 하는 말인데, 예쁜 미녀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의미죠. 남자 분들은 길을 가면서 한참 얘기를 하다가도 예쁜 분이 지나가면 다 같이 잠깐 보다가 돌아와서, “우리가 무슨 얘기했었지?” 하고 말할 정도로 몰입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인을 이 정도로 좋아할 수 있다면 엄청나지 않을까요?
현자를 미녀 좋아하듯이? 좀 더 수련이;;; (삽화: 차망우인) |
이것은 글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하는 게 진짜 학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경전 공부가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덕목들로 이야기한 것이죠. 여러분은 현명한 사람을 현명하다고 여기고 존경하십니까?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보다, 현명한 철인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시나요?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어진 이나 스승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을 좋아하듯이 공자, 맹자가 소크라테스가 좋아야 됩니다. 진심으로 진리의 빠가 돼야 하는 것이죠. 여기에서는 현인에게 빠지라고 말했지만 어느 한 사람의 빠가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실 현인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진리에 빠져야 하는 것이죠. 현인이 갖고 있는 에고의 단점들까지 여러분이 덮어주고 감싸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건 그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자가 도를 품은 사람임을 인정해 준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지닌 진리(道)를 알아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에 빠지는 것은 좋습니다. 이런 분들은 책을 보더라도 그런 책만 보겠지요. 영화를 봐도 그런 영화만 보고, 드라마를 봐도 그런 드라마만 볼 것입니다. 설사 전혀 상관없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다 진리(道)로 해석할 것입니다. 그 정도면 도에 푹 빠진 오타쿠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부모를 섬기되 최선을 다하시나요? 부모님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냥 효도를 해야 된다고 하니까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역지사지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나에게 은혜를 가장 많이 베풀어 준, 가장 가까운 사람도 역지사지를 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히 안 할 테니까요.
그래서 부모님을 대표로 예를 드는 겁니다. 부모님께만 잘 하라는 뜻이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잘 헤아릴 정도의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은 당연히 헤아릴 수 있다고 본 것이죠. ‘효는 백행의 근원’이란 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온갖 덕행이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가장 많은 은혜를 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사회에 나가서 남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헤아린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이 진심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부모님을 섬기는 데에 힘을 다하라고 했지, 목숨을 다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두 가지 표현은 미묘하게 다릅니다. 만약 부모를 섬기다가 죽는다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래서 부모를 섬길 때에는 힘을 다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을 섬길 때에는 목숨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임금을 섬길 때에 임금이 죽으라고 하면 죽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혹시 나라의 일에 맡은 책임이 있으면 목숨을 걸고 지키라는 뜻입니다.
효도는 사적인 영역이지만, 임금을 섬기는 충성은 이미 공적인 영역입니다. 물에 사람이 빠졌을 때 겁이 나서 누구도 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 만약 내가 그 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때 목숨 걸어야 하는 것이지요. 내가 맡은 책임이 그것이고, 그 일을 하라고 나라에서 월급을 받았다면, 자기 책임을 다하는 데에 목숨을 걸으라고 논어는 말합니다.
그리고 친구와 사귈 때에는 말에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말만 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서로에 대해 믿음이 없겠지요. 말(言)을 했으면 반드시 이루는(成) 것을 ‘성실함’(誠)이라고 합니다. 성실하면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깁니다. 즉, 남에게 한 말을 반드시 지키면 남이 믿게 되니, 말을 했으면 반드시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양심을 충실히 지켜가는 사람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공부를 안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미 양심을 이해하고 쓰고 있는데 그 사람이 단순히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학문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나요? 그래서 자하가 결론을 내립니다. 이런 사람은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도, 나는 반드시 학문을 했다고 말하겠다는 것이죠.
이것이 진정한 학문입니다. 글로 읽고 지식만 얻어서, 실제 현실에서 양심을 구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고, 글을 모르더라도 양심에 맞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미 원칙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칙을 알고 있다는 것은 지혜이고, 그걸 실천한다는 것은 인자함입니다. 그리고 지혜와 인자함을 잘 갖추면 성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