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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

논어 1장 학이學而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색을 예쁘게 꾸미는 자치고 인자한 이가 드물다.”라고 하셨다.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이 구절은 유명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우리가 자주 쓰는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대한 내용입니다. 공자께서는 교언영색 하는 사람치고 인(仁)이 거의 없다고 하셨는데,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

왜 쉽게 상대방을 성인(聖人)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삽화: 차망우인)

‘교언영색’(巧言令色)에서 ‘교언’(巧言)은 말이 교묘하다는 뜻이고, ‘영색’(令色)은 얼굴색을 꾸미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치고 어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여러분의 양심이 투철하지 않으면, 양심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교언영색으로 다가오는데도 모르고 계속 속게 됩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속은 사람도 진지하게 양심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서 속은 것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교언영색으로 다가왔을 때, “나에게 잘 대하는 것을 보니 착할 것이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다. 말을 그렇게 했으니 꼭 지킬 것이다.” 하고 쉽게 판단해버린 것이죠. 이게 여러분 안에 있는 양심 중에서 약한 부분이고, 양심에서 어긋나는 그런 요소 때문에 결국 사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속인 사람이 주범이니까 잘못이 훨씬 크지만, 그걸 막지 못하고 끌려간 사람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 남이 나를 속였다고 분해 하지만 말고, 왜 그런가를 한번 잘 판단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도대체 얼굴색과 말을 왜 꾸밀까요? ‘욕심’ 때문이죠. 상대방에게 취할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인데, 나에게 인(仁)으로 대하는 줄로 착각하면 안 되겠죠. “상대방이 나를 속이려는 것은 아닌가?” 하고 살펴보는 것을, “내가 상대방을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선 안 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일단 정확히 읽어내는 것이 우리의 양심에 더 맞지 않은가요?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상대할 때, “나도 그러면 내 이익만 생각해서, 이익 대 이익으로 맞서야 되는 것 아니냐?” 하고 생각하는 것도 답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익으로 밀고 나가면 오히려 욕심꾼에게 더 잘 낚일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그런 욕심 또한 활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잘 읽어내는 사기꾼 고단수에게 저단수는 늘 당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상대방이 이익으로 나오더라도 우리가 ‘양심’, 또는 ‘인’(仁)으로 맞서면 상대방이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양심적이라면,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안색을 짓는지를 보면서 동시에,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자명한지, 솔직한 것인지를 살필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고, 가식적으로 좋은 표정을 짓지만 편안하지 않아 보인다면, 상대방은 지금 어떤 이익 때문에 그렇게 부득이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예측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걸 읽어내지 못한다면 ‘인의예지仁義禮智’ 중에서 ‘지혜’(智)가 부족하고, 결국 ‘공감’(仁)도 부족한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이라면 저런 말에 이런 표정을 지을 때에는 속마음이 이럴 것이다.” 하는 걸 알아야 하는데,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으니까요. 일부러 남을 의심하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은 무슨 마음일까?”라고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죠.


왜 쉽게 상대방을 성인(聖人)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성인군자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고, 욕심꾼을 만나기가 훨씬 쉽습니다. 그러니 상대방은 언제든 나에게 욕심으로 접근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도 자신의 욕심 때문에 속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렇게 유리한 제안을 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수상하지만 간절히 믿고 싶다.” 하는 식으로, 나에게 조금이라도 욕심이 있다면 상대방은 그걸 물고 늘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나부터 먼저 양심을 단단히 챙기고 버티고 있지 않으면, 자기 이익만 신경 쓰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여러분에게 분명히 피해가 갈 것입니다. 만약 “나는 피해가 와도 괜찮다. 이 사람이 이렇게 다가와도 나는 껴안아 주고 싶다.” 하고 손해까지 감수하는 경우라면, 그건 여러분의 선택이고 괜찮습니다. 각자의 역량에 따라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모르고서 억울하게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죠.


“교언영색으로 다가온 사람은 인(仁)이 드물다!”라는 이 한마디는 사실 엄청난 삶의 실전 팁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뭔가 하나라도 얻어내려면 여러분도 교언영색을 했을 것입니다. 따로 배운 적도 없는데 누구나 알고 귀신같이 그렇게 합니다. 우리가 ‘양심’을 타고나듯이 ‘욕심’도 타고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속이는 능력도 타고나며, 어려서부터 이런 능력이 발현된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럴 때 “내 아이가 그렇구나!” 하고 읽어내는 것을, 아이를 의심했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즉,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읽어내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상대방을 읽어내지 못한 만큼, 여러분이 나중에 뒤통수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자명한 사고입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 늘 손해를 본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하다’는 것의 범위를 너무 작게 보고 있기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진짜 양심적이라는 것은, ‘인의예지’를 써서 상대방의 욕심까지 다 읽어내어, 나의 욕심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욕심까지도 적절히 이루게 해주는 ‘홍익인간의 실천’을 말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속마음까지 미리 알고 있다면, “너는 이정도 먹고 떨어져라.” 하고 먼저 제시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니 정말로 양심적이라면 욕심꾼과 내가 둘 다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버리기 때문에, 욕심꾼이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 자명하고 강력한 양심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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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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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조회수 1000만의 인문학 스타 강사 저술과 강의를 주업으로 삼는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