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 아티스트 (Foley Artist)
Unsung Hero 1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할 때에 주목하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선은 배우가 하는 연기를 보고, 음악을 듣고, 연기와 음악이 얹히는 화면을 보고, 그 화면이 연결되는 편집의 리듬을 타고, 그리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감독 이름을 보고 그리고 극장을 나서지 않나 해요. (일반 상영관은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독립영화 전용관 같은 영화관을 가면 크레딧 끝까지 앉아있는 것이 일종의 매너로 취급되기는 합니다.)
그 중에 들리는 것만 놓고 보면, 영화에서 하는 기능이 상당히 적극적인 편인 음악이 제일 먼저 들리겠지만, 사실 제일 많이 들리는 것은 음악 이외의 소리인 ‘사운드’입니다.
가장 많이 들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운드는 음악과는 달리, 특히나 액션영화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웅장한 소리가 중요한 영화에서나 ‘실감난다’는 정도로만 여기는 일종의 ‘부수적인’ 장치로 취급되는 인식이 좀 있긴 한데, 귀기울여 들으면서, 직전 씬의 소리를 기억하고 지금 씬의 소리와 관계짓고 다음 씬의 소리를 예상하면서 보면 꽤 재밌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영화를 보게 되기까지는 얼마간의 연습도 필요하고, 사실 그렇게 영화보면 머리 아파요..ㅎ)
영화에 들어가는 모든 사운드들은 ‘사운드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만지거나 만든 소리입니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그 중에서 대사(Dialogue)를 만지는 사람도 있고,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라고 해서 필요한 소리를 직접 액팅(acting)을 해서 녹음하는 사람도 있고, 이미 녹음된 여러 소리들을 조합해서 더 강화된 소리를 만들거나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이펙트 디자이너도 있습니다.
대사는 배우의 발성을 통해서 나오는 모든 소리를 말하는 거지요. 이야기를 전달하고, 상황에 따른 감정을 표현하는 등, 사운드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직접적으로(!) 합니다.
‘직접적’이라는 성격이 상당히 중요한데, 직접적이라 쉽게 접근해서 모든 것을 말로 다 ‘설명’해버리는 영화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개중에 설명하는 것이 아닌 ‘표현’해야할 것들마저 설명해버려서, 내용은 알겠는데 공감은 안되는 영화 말입니다.
어쨌든, 대사의 중요성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기 때문에 더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구요, 대사가 없는 영화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직접적이라 조심해야 하긴 한다지만, 대사가 없으면 내용은 뭘로 전달할 것이며, 연출자가 의도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는 어떻게 단서를 줄 것인지, 순간 막막해 집니다. (사실 영화적인 방법이야 많지만) 그래서 대개는 말로 발성되는 대사는 없을지언정 그 역할을 어느 정도 감당하는 보완장치가 있게 마련인데요, 희한하게도 대사가 없는 영화가 있긴 있습니다. 무성영화 아닙니다. ㅎ
영화 '트라이브' 포스터 |
이 영화는 설정 자체가 대사를 할 수 없는 농아학교의 폭력조직에 속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라 일반적인 대사가 없습니다. 대사가 없으면 보완장치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자막인데, 배우들이 열심히 수화를 하면서 서로 의사소통은 하는 걸 자막으로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그럼 음악이라도 깔아서 드라마의 흐름을 따라가게 해줄 수도 있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습니다. 내용은 관객이 대략 이러이러하구나 짐작하게만 할 뿐이지만, 다행히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영화 '트라이브' 메인 예고편 |
이 영화는 내용이 폭력과 성에 관한 내용이 있어서 보시기 좀 힘든 분들이 계실 수도 있는데, 영화만으로 보면, 촬영은 한 씬을 한 테이크로 찍어서 편집적인 기술도 간단하고, 사운드면에서는 대사와 음악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것저것 신경쓰이는 요소들이 배제되어서 배우들을 보는 것에만 오로지 집중이 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영화에요. (그래서 소름이 돋는 씬도 있습니다. ㅎ)
영화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치들 모두 잘 사용한 영화들도 좋지만, 어느 부분에 드라마적인 이유로 포커스를 몰아줘야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런 장치들 중 몇 가지를 과감히 생략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일 텐데, 영화 전체를 그렇게 가기에는 좀 주저하게 되겠지만,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용감합니다. 물론, 설정이나 내용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부분이 있긴 합니다만, 일부러 영화적인 기교를 부리자면 부릴 수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생략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대사도 없고, 음악도 없고, 이 영화에서 들리는 거라곤 오로지 이펙트 사운드 밖에 없습니다. 영화에서 이펙트 사운드라는 건 대사와 음악이 아닌 다른 소리들을 말하는 건데, 배우들의 움직임에 수반되는 소리들, 각종 도구들에 딸려나오는 소리들, 주변음(Ambience), 영화적인 필요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집어넣는 소리들 등이 있어요.
움직임에 수반되는 소리나 도구들을 사용할 때 필요한 소리들을 폴리(foley) 사운드라고 하고요, 영화적인 필요 때문에 현실에선 그런 소리가 안들리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넣는 소리들을 스페셜(Special) 사운드라고 합니다. 스페셜 사운드를 많이 쓰게 되면 현실감이 좀 달라지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그런 건 좀 자제하고 있구요, 폴리 사운드와 엠비언스만으로 영화 전체가 채워져 있습니다.
폴리 사운드 작업에 관한 예쁜 단편영화 하나 링크해 드립니다.
폴리 사운드는 잭 폴리(Jack Foley)라는 사람이 영화에 필요한 소리를 직접 행위로 녹음하던 방식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이 방식은 요즘엔 배우의 움직임을 아티스트가 액팅(acting)을 다시 해서 녹음하고, 도구들도 다시 녹음하는 방식으로 점점 더 양도 많아지고 디테일하게 발달했습니다.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는 유일하게 후반 사운드작업 중에 액팅을 직접 하는 사람입니다. 보여지는 액팅은 배우가 하는 걸로 되어있으니까 쉐도우 액팅이라고 해야 하나요. 촬영된 배우의 움직임을 한두 번 보고 바로 쫓아서 재현하는 동물적인 감도 필요하구요, 그렇게 몸을 써서 움직이고, 도구들을 선택해서 소리를 내는데에 자신들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티스트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한 편의 영화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 사람들은 당연히 드러나는 것만큼 중요한 사람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성도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Unsung Hero들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중에 사운드 작업자들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때에 소리에 집중해서 보시면 그것도 확실히 재미있으니 한 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다음에는 이펙트 디자이너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