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디자이너 (Sound Designer)
Unsung Hero 2
최근에 ‘배트맨 대 슈퍼맨’을 보았습니다. 역시나, 사운드 이펙트의 향연이더군요. 사운드 이펙트라는 것이 지난 번에 말씀드린 폴리사운드를 포함해서 몇 가지 종류가 있긴 한데, 현대 영화의 이펙트들 가운데에서는 ‘영화 사운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된 사운드 이펙트’가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아시다시피, 영화라는 매체는 허구의 집합체입니다. 정지 사진을 연달아 보여줘서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기본 개념부터 시작해서, 컷과 컷, 씬과 씬을 따로따로 찍은 다음 ‘편집의 기술’을 적용해서 시간적으로 연속되거나 건너뛰면서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게 만든다는 것도 그렇구요, 거기에 소리도 ‘현실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나지 않는 소리’까지 붙인다는 것까지 어느 하나 허구 아닌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허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인 것처럼’ 믿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이라고 멋있는 말이 있긴 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영화도 있습니다만.)
사운드 이펙트는 이 하이퍼 리얼리즘을 구현하는 데에 중요한 공헌을 하는 요소입니다. 스크린에 보이는 그림을 더욱 ‘그럴 듯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기존의 소리들을 조합하거나 변조하거나, 때론 엉뚱한 소스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디자인’이란 개념이 그래서 영화사운드에 적용되기 시작했고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파트가 생겨났는데, 수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벤 버트(Ben Burtt)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벤 버트는 수많은 영화들의 사운드 디자인을 담당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했던 영화들 중에서 일반인들에게나 종사자들에게나 가장 유명한 것은 스타워즈의 광선검 소리입니다.
광선검 소리는 고압이 흘러서 험(hum)과 버즈(Buzz) - 모두 일종의 전기 노이즈소리입니다. - 가 발생되고 있는 영사기나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소리를 녹음해서 그걸 반복해서 재생하고, 마이크를 영화속에서 광선검 휘두르는 것처럼 그 소리가 재생되는 스피커에 대고 휘둘러서 만들었습니다.
지금이야 이 방법이 알려졌으니 당연시 하지만, 그 전까지는 상상속의 소리라고 하면 주로 테레민(Theremin) 이나 여타 다른 신서사이저를 사용해서 ‘음악적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테레민은 이렇게 생긴 악기에요.
고전 공상 과학 영화 중에 유명한 ‘금지된 행성’ (Forbidden Planet)의 경우도 역시나 신서사이저를 사용해서 일차적인 소리를 만듭니다. (요즘의 건반 달린 신서사이저와는 모양이 조금 다릅니다만)
현대음악에서 점차 악기음의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것이 전기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소리를 사용하는 악기들을 탄생시키며 그전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 나오고, 그 소리들이 판타지영화나 공상과학영화에 적합하다고 여겨져서 거기에 적용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어쨌든 이때까지는 ‘상상 속의 소리’라는 것이 다소 음악과 분리되지는 않은 상태였다라고 볼 수 있는데, 벤 버트의 중요한 공헌 중에 하나는 이런 상상속의 소리들을 음악적인 방법 뿐만이 아닌 폴리사운드를 만드는 방식을 사용하는 ‘영화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서 좀 더 현실감이 있는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광선검 소리만 해도, 소리만 만들겠다고 하면 신서사이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면 당시의 테이프를 잘라서 붙이는 사운드 에디팅 기술로는 현란한 제다이 기사들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는 없었을 것도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벤 버트는 이후에 수많은 영화의 특이한 소리들을 담당했지만, 그가 항상 수행하는 방식은 마이크와 녹음기를 들고 사물들의 소리들을 녹음하고 그 소리들을 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 때론 폴리사운드 작업 방식이기도 하고, 로케이션 레코딩이기도 하고, 사운드 아이징(Sound Izing)이라고도 하는 이런 작업 방식은 이후에 영화 사운드 이펙트를 제작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고, 그것이 음악을 베이스로 하는 작업자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특징이 되었습니다.
결과물에 있어서는 이런 작업 방식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소리를 지향하는 영화사운드 이펙트의 성격에도 잘 맞았고, 80년대부터 영화사운드는 급격하게 현실감과 중량감 면에서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녹음 받은 소스를 섞거나 변조해서 다른 소리를 만드는 기술도 점점 다양해졌습니다.
공상과학 영화뿐 아니라 일반적인 영화들도 그렇고, 심지어는 자못 하이테크한 소리들을 내는 영화들이라도 기본은 마찬가지에요. 이후에 처리하는 방법이 쉬워져서 더 많이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트랜스포머의 경우를 예로 보면 그렇습니다.
말이야 쉽지만, 희한한 소리 하나 만들겠다고 여기저기서 소리들 녹음해서 조합해보고 변조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또 나가서 녹음해오고 하는 일들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 과정을 줄일 수 있는 경험치의 축척은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구요.
요즘은 디지털 시대이고 그에 맞는 매체가 발달하면서, 매번 번거롭게 녹음하는 경우보다는 이미 녹음된 방대한 사운드 라이브러리가 조그마한 하드에 담겨있어서 그걸 사용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긴 한데, 영화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최초의 소스를 만드는 방식으로 여전히 이런 방식을 선호합니다.
시작부터 노력을 가해서 녹음을 받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소리들이 영화의 소리들을 더 신선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고, 그것이 영화의 이야기 전달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영화에서 들었음직한 소리들을 빈 곳에 채워주기를 바라는 정도’는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개별 소리 자체뿐 아니라 그 소리가 언제 어떻게 영화에 얹히느냐 하는 것이 드라마적으로 소리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하기로 하구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화에 이바지하는 다른 파트들과 함께, 영화의 사운드 디자이너들도 완성된 영화에서 가히 Hero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