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서 '펑펑' 쏜 폭죽… 바다 오염되고, 사람까지 다쳐
'폭죽 탄피' 줍는 남자 김용규 씨 "맨발로 해변 다니는 거 보면 조마조마"
바다가 좋아 강원 강릉으로 이사 온 남자는 어느 날 해변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커피숍이 즐비한 이 해변은 매일 청소해 겉으로는 깨끗해 보였지만 백사장 바닥에는 이상한 플라스틱 물체가 널려 있었다. 아내와 해변 산책을 하던 남자는 플라스틱 물체를 수거하기 시작했고,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좁은 면적에서 꽤 많은 양을 주울 수 있었다. 플라스틱의 정체는 행락객들이 인근 상점에서 구매한 뒤 밤하늘로 쏘아 올리고 나서 버린 플라스틱 폭죽 탄피였다. 이후 해변에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백사장에 방치된 폭죽 탄피 등을 줍는 일이 일상이 됐다.
폭죽을 쏘고 나서 해변에 버려진 플라스틱 폭죽 탄피.[김용규 대표 제공] |
다이빙 등 바다 관련 일을 하던 중 지난해 5월 경기 양평에서 강릉으로 아예 거주지를 옮긴 오션카인드 김용규(39) 대표의 이야기다. 행락객들이 해변 인근 상점에서 무심코 사서 쏘아 올린 폭죽 탄피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플라스틱병 등 눈에 잘 보이는 쓰레기는 매일 치워졌지만, 폭죽 탄피는 그대로 해변에 누적됐다. 폭죽을 쏜 해변은 밤사이 마치 멍이 든 것처럼 곳곳이 검게 그을렸고, 폭죽 탄피는 화약 열기에 녹아내리면서 기이한 형태로 해변에 뒹굴었다. 김 대표가 수거해 모아 놓은 폭죽 탄피에서는 시간이 지났어도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강릉 안목 해변에서 수거한 폭죽 탄피.[김용규 대표 제공] |
그는 해변 청소를 할 때마다 수거한 폭죽 탄피를 기록했고, 직접 사진까지 찍어 SNS에 올리며 요즘 폭죽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해변에서 폭죽을 터트리면 폭음과 매연뿐만 아니라 자칫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도 있어 엄연히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행락객이나 적극적으로 적발하는 관계기관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폭죽 탄피는 유명 관광지뿐만 아니라 그동안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됐던 청정 해변까지 침입하는 추세다. 지난해까지 군부대 경계 철책으로 막혀 있던 강릉 송정해변의 경우 바다를 통해 인근 해변에서 폭죽 탄피와 함께 밀려 들어온 쓰레기가 긴 띠를 이루기도 했다. 플라스틱 폭죽 탄피는 쉽게 부서질 수 있어 해변이나 수중에 누적되고, 이는 먹이로 착각하는 새 등 해양 동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불을 붙이면 반짝이며 타들어 가는 '스파클링 폭죽'은 날카로운 철사로 만들어져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주기도 한다.
스파클링 폭죽이 타고 난 뒤 드러나는 철심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어 수거와 동시에 구부려 놓았다. [김용규 대표 제공] |
젊은이들이 인증샷으로 많이 찍는 스파클링 폭죽은 백사장에 꽂아놓은 형태로 방치돼 사람에게 더 위협적이다. 그는 "지인의 친구가 강릉의 한 해변에서 스파클링 폭죽의 철사가 발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피해를 봤다"면서 "스파클링 폭죽의 철사가 눈에 안 띄게 박혀 있는 해변을 맨발로 다니는 사람을 보면 조마조마하다"라고 걱정했다. 해변을 오염시키는 것은 바다를 찾아 띄우는 소원등도 마찬가지다.
엉킨 채 바닷가 숲에 추락한 풍등은 산불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용규 대표 제공] |
피서철이나 연말연시에 주로 띄우는 소원등(풍등)은 해안 소나무 숲이나 바다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풍등은 심지어 산불 위험 기간에도 아무런 제재 없이 띄운다. 바닷물에 빠지면 수거조차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 대표는 바닷속에서 풍등 잔해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해 숨이 막혔다고 털어놨다. 철사와 대나무로 뼈대를 만들어진 풍등이 바다에 방치되면 새나 물고기들이 얽히면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폭죽 탄피로 해변이 오염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게 된 그는 최근 명주 플리마켓 등에 나가 수거한 폭죽 탄피의 심각성을 알리는 일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외국에서는 해변 주변에 사는 주민이 산책을 나와 바닷가 쓰레기를 줍는 것이 일상처럼 이뤄지고 있어 폭죽 탄피를 줍는 일을 시작했다"면서 "해변에 와서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폭죽을 쏘기보다는 맑은 공기와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강릉=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dmz@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