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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가득, 담양

초여름 곳곳에 환상처럼 우거진 녹음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대나무 숲, 200∼350년 된 푸조나무·느티나무 제방 숲길, '세상에 다시 없는' 메타세쿼이아 길…. 천년 고도 담양에는 지금 환상(幻像) 같은 녹음이 펼쳐지고 있다.


나무와 숲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고장은 흔치 않다. 그런 기품 있는 곳이 전라남도 북단에 자리한 담양이다.


국내 최대 죽림욕장 '죽녹원', 300년 된 '관방제림', 베어질 위기를 딛고 반세기를 맞는 메타세쿼이아 길. 명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 나무와 숲이 모두 담양에 있다. 야들야들 연하던 신록이 검푸른 녹음으로 우거지는 초여름, 담양에는 푸른 나무와 숲이 환상적이다.


역사와 전통의 뿌리가 깊고, 문화가 풍성한 담양을 두고 '나무로 먹고사는 곳'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이요, 단순화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불러보고 싶을 만큼 담양은 나무와 숲이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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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 대숲 [사진/전수영 기자]

담양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장소는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 길이 아닐까 한다. 담양군 중심부에 위치한 이곳들은 한길로 쭉 연결된다. 죽녹원 가까이에 약 300년 된 관방제림이 있고, 관방제림 끝자락에서 메타세쿼이아 길이 시작된다.


이뿐 아니다. 담양에는 한국의 대표 정원 소쇄원, 배롱나무 숲이 매혹적인 명옥헌 원림,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 송강 정철이 머물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었던 송강정 등 내로라하는 정원과 누각이 여럿이다.


담양 전체가 하나의 정원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맑은 햇살이 쏟아지고, 시원스러운 바람이 건들건들 불기라도 하면 발길 닿은 곳에 그냥 머물고 싶다.

죽녹원

담양은 예부터 대나무로 유명했다. 1960∼1980년대 초·중등학교 교과서엔 죽세공품 산지인 담양에 대한 설명이 빠지지 않았다. 지금도 국내 대나무의 28%가량이 담양에서 서식한다고 한다.


담양군은 2000년대 초 담양읍 향교리에 있던 천연 대나무 숲을 민간으로부터 사들여 죽녹원을 조성했다. 31만㎡의 땅에 분죽, 왕대, 맹종죽 등 다양한 종류의 대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단일 수종으로 조성된 숲으로는 국내 최대다. 대나무가 빽빽해 한낮인데도 대숲 속이 컴컴하다. 수십m 높이로 치솟은 대나무 숲은 고개 들어 쳐다만 봐도 장관이다.


2007년에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다녀갔다. 숲길 중간에 세워져 있는 당시 사진 속에는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문재인 현 대통령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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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방제림 2번 보호수 푸조나무 [사진/전수영 기자]

죽림욕은 산림욕보다 건강에 더 이롭다고 한다. 대숲의 음이온, 산소 발생량이 많기 때문이다. 음이온은 혈액을 맑게 하고 면역력을 높인다. 대숲은 바깥 온도보다 4∼7℃ 낮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인류가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바이러스와 여름을 이기기에 대숲만 한 곳도 없을 것 같다. 죽림욕은 6월 초부터 초가을까지가 적기다.


키 큰 대나무 밑에는 댓잎에 맺힌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가 자생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표 녹차 중 하나인 죽로차는 대나무 그늘에서 자라기 때문에 찻잎이 연하고 맛이 부드럽다.


평일인데도 방문객이 적지 않았다. 주로 가족, 연인들인데 한꺼번에 월차 휴가를 낸 듯한 젊은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일행 4명이 '오' '늘' '월' '차'라는 글자가 한 자씩 박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죽녹원 북쪽에는 '죽녹원 시가문화촌'이 조성돼 있다. 송강정, 면앙정 등 담양의 이름난 정자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원형에 가깝게 재현해놨다. 죽로차를 만드는 제다실, 한옥체험 숙박시설인 '죽녹원 영빈관'도 있다. 제다실에는 담양죽로차문화원 영농조합법인 소속 여성 영농인 5명이 정성스레 죽로차를 덖고 있었다.


이들의 죽로차 사업은 2015년 풀뿌리경제로 선정돼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소득이 높지 않고 사업이 힘들다면서도 고품질 죽로차를 자부하는 이들의 표정에서 보람과 긍지를 읽을 수 있었다.

관방제림

죽림원 내 봉황루에서 내려다보면 담양천을 따라 좌우로 쭉 뻗은 관방제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방제림은 강둑 위에 조성된 '삼백년 숲길'이다.


조선 인조 28년(1648) 담양 부사 성이성은 영산강 최상류인 담양천의 풍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 그 후 철종 5년(1854)에 부사 황종림이 제방을 보수하고 또 숲을 조성했다. '관이 만든 강둑에 조성된 숲'이 관방제림이다.


관방제림에는 수백 년 된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은단풍, 개서어나무, 곰의말채나무, 벚나무 등 176그루가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보호수들은 1번부터 176번까지 번호가 붙은 표찰을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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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방제림 둑길을 걷는 시민, 관광객들 [사진/전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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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가슴 높이의 둘레가 5m, 수관폭이 10m 넘는 아름드리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모두 낙엽성 활엽수들인 노거수들은 당당함을 넘어 신묘한 기운을 내뿜는 듯했다. 노거수가 즐비한 관방제림 1.2㎞ 구간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1번 보호수는 음나무였다. 높이가 14m에 달하는 풍치목이었으나 2013년 7월 폭우와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음나무는 가지에 날카롭고 억센 가시가 있다. 노거수 중 음나무는 1번 나무가 유일했는데 잡귀를 쫓는 문지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현재의 후계목은 그해 11월에 심어졌다.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종은 서울에서 못 보던 푸조나무였다. 푸조나무는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전형적인 난대수종이다. 강바람이나 바닷바람을 잘 견뎌 방풍림이나 해안 방재림으로 쓰인다. 담양군은 1980년 제방 보수 때 관방제림에 후계목 200여 그루를 심었다. 선인의 지혜를 잇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사업이다.


관방제림의 감동은 웅장함에서 그치지 않았다. 관방제림은 지역 주민의 생활 속에 있었고 관광객에게 친근했다. 널찍한 둑길에는 한가롭게 산보하는 주민, 빠르게 걷기 운동하는 젊은이, 구경하는 관광객이 모두 느긋했다.


경로석이라고 표시된 평상에는 어르신들이 산들바람을 맞으며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이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이 얼마나 있으랴.

메타세쿼이아 길

담양 사람들은 이 길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숲'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지역민의 사랑을 받는 자랑스러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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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메타세쿼이아길 [사진/전수영 기자]

오전 6시 좀 지나 이곳을 찾았다. 높이 20∼30m의 위풍당당한 메타세쿼이아가 길 양쪽에 도열해 있었다.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아득했다. 어딘가 먼 곳에서 사라진 듯도 싶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검은 점이 생기더니 점점 커지고 가까워진다. 새벽 산책 나온 사색가였다. 길 복판에 덩그렇게 가로 놓인 긴 대나무 의자가 고즈넉하다. 누군가 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의 새벽 정취는 청신하다 못해 몽환적이었다.


담양 대로변에는 메타세쿼이아가 많다. 1972년 담양읍과 각 면이 연결되는 주요 도로에 4천700여 그루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 5월 담양 대전면-순창 간 국도 24호선을 확장하면서 메타세쿼이아가 베어질 위기에 처했다. 담양 군민은 분노했다. 수십 년 동안 키우고 가꾼 가로수를 자연자원으로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영산강 옆인 담양읍 학동리 학동교와 금월교 사이 약 2㎞ 구간에 자동차가 다니지 않고 오로지 걷는 길인 메타세쿼이아 길이 탄생했다.


이 길에는 현재 높이 약 27m, 수령 40여년 생의 메타세쿼이아 487그루가 심겨 있다. 이 길은 한국의 대표 숲 터널로 자리 잡았다.

오래된 미래, 나무와 숲

나무와 숲이 멋진 곳은 격조가 있다. 오랫동안 바람과 비, 세월을 견딘 노목들은 지혜로와 보인다. 이 품격의 원천은 바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담양은 삼백년 동안 관방제림을 보존했다. 도로를 닦으려고 베어내려던 웅장한 메타세쿼이아를 지켜냈다. 민간에게서 천연 대나무 숲을 사들여 시민 공간으로 만들었다. 담양인들이 나무와 숲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가능했을까. 담양에는 수백 년 전부터 그런 지혜로운 선인이 살았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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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천. 왼쪽이 관방제림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물과 정자가 단정하고, 대나무와 소나무가 장엄한 소쇄원은 크거나 화려하지 않다. 자연의 숲과 계곡이 그대로 정원이 됐고, 건물들은 드러난 듯 아닌 듯 자연에 녹아 들어가 있었다.


제월당이나 광풍각 마루에 말없이 앉아 계곡으로 눈을 돌리면, 지조가 높으나 이를 내세우지 않으려 했던 조선 선비의 정신을 알 듯도 하다.


마음을 열면 물소리, 바람 소리가 가슴 속으로 파고 든다. 한국 조경문화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소쇄원과 함께 조선 시대의 아름다운 민간 정원으로 꼽히는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 역시 주변의 자연을 정원 경관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명옥헌에는 담장이 없다. 그래서 이곳 정원을 '원림'(園林)이 아니라 '원림'(苑林)이라고 부른다.


여름 내내 명옥헌을 무릉도원으로 만드는 배롱나무는 8월부터 본격적으로 붉은 꽃을 터뜨린다. 배롱나무는 꽃이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일홍 나무'가 '배롱나무'로 굳어졌다.


정원 안 작은 계곡 물이 옥구슬 소리를 낸다는 명옥헌은 1600년대에 만들어졌다. 수십 그루 배롱나무는 그때 심어졌으니 최고 수령이 400년에 가깝다.


수십 년, 수백 년 된 나무와 숲, 우리가 오랫동안 꿈꿔 왔던 미래다. 장소의 품격이 그곳에 사는 사람의 품격이다.


(담양=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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