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유충 발생 4일간 '쉬쉬'…부랴부랴 시장 대책회의
인천상수도사업본부, 박남춘 시장에 보고도 제때 안 해
작년 붉은 물 사태 이어 수돗물 부실 관리·늑장 대응 비난 고조
인천, 수돗물 유충 발생…당국 조사 중 (서울=연합뉴스) 서구 지역 맘카페에 올라온 샤워기 필터 속 유충 모습. 2020.7.14 [독자 촬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붉은 수돗물'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여 만에 인천에서 수돗물에 유충이 보인다는 신고가 잇따르자 인천시의 수돗물 관리체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인천시는 첫 민원을 접수하고도 나흘 동안 이 사실을 숨기다가 언론 보도 후 부랴부랴 시장 주재 긴급회의를 열어 '늑장 대응' 논란을 자초했다.
15일 인천시에 따르면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생했다는 민원은 지난 9일 서구 왕길동 모 빌라에서 처음 접수됐다. 이후 전날 정오까지 모두 22건의 신고가 추가로 잇따랐다.
주민들은 수도꼭지나 샤워기 필터 안에서 살아있는 유충이 기어가는 사진과 영상을 맘카페에 올리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그러나 유충 발생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쉬쉬하다가 지난 13일 연합뉴스의 첫 보도가 나오자 14일 오전 뒤늦게 대응 상황을 공개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조차도 취재가 시작된 이후인 13일 늦은 오후에야 상수도사업본부로부터 유충 발생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시장이 참석하는 긴급상황 점검 회의도 민원 신고 접수 5일만인 14일 처음 이뤄졌다.
시는 수돗물 유충 종류도 파악하지 못하다가 14일 오후에서야 '깔따구류'의 일종으로 확인됐다며, 서구 왕길동·당하동·원당동·마전동 3만6천가구에 직접 음용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서부수도사업소 측은 13일 밤늦은 시각에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취재가 시작되자 "기사가 나가면 주민들이 더 불안할 수 있다"는 이유를 대며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서부수도사업소 간부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서구를 관할하는 공촌정수장 자체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지난해 붉은 수돗물 사태 때와는 달리 외부 유입에 의한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되는 경우가 흔치 않고, 시민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 높은 사안인데도 시는 적극적으로 유충 발생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인천시교육청도 언론 보도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14일부터 서구 관내 유치원과 초·중·고교 39곳의 급식을 뒤늦게 중단했다.
샤워기 속 수돗물에 떠 있는 유충 (인천=연합뉴스) 지난해 붉은 수돗물 사태가 벌어진 인천 서구 일대에서 이번에는 수돗물에 유충이 나왔다는 민원이 잇따라 제기돼 당국이 원인 조사에 나섰다. 서부수도사업소는 서구 일대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공촌정수장 자체 문제가 아닌 외부 유입에 의해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정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샤워기 속 수돗물에 떠 있는 유충 모습. 2020.7.13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son@yna.co.kr |
시 안팎에서는 인천시가 작년 5월 '붉은 수돗물' 사태를 겪고도 여전히 허술하게 수돗물 관리 시스템을 운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유충 신고가 접수된 지역에 사는 이모(50)씨는 "뉴스를 보고 너무 놀랐다"며 "보도를 보면 며칠 사이에 신고가 여러 건 접수됐다고 하는데 첫 신고 접수 이후 곧바로 주민들에게 이를 알리고 대책을 전달했다면 덜 불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서구 지역 인터넷 맘카페 한 회원도 지난 13일 '화나는 건 처음에는 빌라가 4∼5년 되면 부식이 돼 수도관이나 계량기 안에서 (유충이) 알을 깔 수 있다며 벌레와 관련해서는 확인이 어려워 자기네도 방법이 없고 개별 소독을 해야 한다고 했다'며 '이후 신고가 계속 들어오니 말이 달라지던데 작년 (붉은 수돗물의) 악몽이 되살아난다'는 글을 올렸다.
붉은 수돗물 사태는 작년 5월 수계 전환 중 기존 관로 수압을 무리하게 높이다가 발생해 26만1천가구, 63만5천명이 적수 피해를 겪었다.
환경부는 당시 인천시 상수도본부 공무원들이 문제의식 없이 수계 전환을 했다며 "거의 100% 인재"라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은 15일 성명에서 "작년에 마련한 대응책이 현재 유충검출 사건에 직면해 적절히 작동하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이처럼 기막힌 사고가 왜 연달아 일어나는지 상수도본부 조직과 시스템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위생적 처리가 핵심인 수돗물에서 유충이 검출된다는 것은 미생물 오염이 일어났다는 것이며 그 차제로 심리적 충격이 큰 사안"이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원인 추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시민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는 한국수자원공사, 국립생물자원관 등과 함께 조사에 착수했으나 유충 발생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정수장에서 수돗물을 정수하기 위해 사용하는 '활성탄 여과지'에서 발생한 유충이 수도관을 통해 가정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유충 발생 가정이 처음에는 10가구 이하이고 수질검사도 적합 판정으로 나와 유충 발생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판단하지 못했다"며 "수돗물 유충 때문에 피해를 보는 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 체제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손현규 기자 = 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