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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色 대둔산

기암괴석의 비경·호젓한 등산로·단아한 계곡 美

연합뉴스

대둔산과 출렁다리[사진/조보희 기자]

8천 개가 넘는 요가 동작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산 자세'가 있다. 산 자세는 체중을 두 발에 똑같이 나누어 싣고 팔을 골반 옆으로 늘어뜨린 채 정면을 응시하고 조용히 서 있는 동작이다. 요가 자세들에는 저마다 상징과 의미가 있다.


산 자세가 상징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이다. 산처럼 고요히 서서 마음을 집중한 채 앞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등 성찰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산에 오르는 것도 우리를 사색으로 이끈다. 등산은 수행, 수련과 멀지 않다. 산에는 얼마나 많은 극기 소망이 서려 있을까. 우리가 말하는 자연은 바다나 하늘보다는 산에 가깝다. 우리의 통념에서 산은 자연과 거의 동일시된다.


산을 신성시하는 것은 인간의 자아와 산이 연관돼 있다는 신비스러운 믿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한 산에도 제각기 정체성이 있다. 이는 백두산, 지리산, 한라산 등이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충청남도, 전라북도 경계 지역인 완주, 금산, 논산에 걸쳐 개성 넘치는 산이 있다. '호남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대둔산(878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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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바위기둥 위에 소나무가 터를 잡고 긴 세월을 이어왔다. [사진/조보희 기자]

대둔산은 험준한 바위산이다. 기암괴석이 많고 계곡은 V자로 깊이 파였다. 한국의 대표 명산들에 비하면 높지 않은데도 워낙 가팔라 완주 쪽은 전체가 등산객들에게 '깔딱 고개'라 불리기도 한다.


수직에 가까운 암벽이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는 산. 그것이 대둔산이 드러내는 정체성이다.


단 한 권의 시집 '님의 침묵'으로 한국 현대 시의 별이 된 만해 한용운은 대둔산을 천하제일의 명승지로 손꼽았다.


자세히 보면 산은 모두 다르다. 사람도 그렇다. 정체성이 다르면 행복에 이르는 길도 같지 않을 것이다. 다원적 사회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 다양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상식이 되는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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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각도 70도의 아찔한 삼선 계단과 마천대의 개척탑[사진/조보희 기자]

◇ 3色 대둔산

대둔산은 전남 영암군 월출산과 함께 호남을 대표하는 바위산, 이른바 '악산'(岳山)이다. 충남도와 전북도가 모두 도립공원으로 지정해놓은 데서 경치가 얼마나 빼어난지 짐작할 수 있다. 하나의 명승지를 2개 도가 공원으로 지정해 놓은 곳은 국내에서 대둔산이 유일하다.


대둔산은 충남 금산군과 논산시, 전북 완주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 3개 시군에 속하는 구역별로 풍광이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즐기는 맛도 다를 수밖에 없다. 완주 구역은 관광, 금산 쪽은 호젓한 등산의 재미가 특별하고 논산 지역은 그윽한 계곡의 멋이 일품이다.


완주 구역은 아찔한 절벽과 험한 암벽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있다. 능선 따라 이어진 암벽들은 산의 등뼈인 듯 강인해 보였다. 완주 쪽에는 탐방을 돕기 위해 케이블카와 출렁다리, 좁고 가파른 철제 계단 등이 설치돼 있다. 덕분에 힘든 코스임에도 짧은 시간에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


실제 감염병 사태 전에는 중국, 동남아 등의 관광객이 많이 방문했다. 제주를 찾은 유커들은 목포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완주에 반나절 정도 들러 케이블카를 타고 출렁다리까지 올라가서 대둔산의 기암괴석들을 한껏 즐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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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 케이블카[사진/조보희 기자]

◇ 최초의 출렁다리

완주 쪽에서 올라가면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까지 왕복하는 데 넉넉잡아 2시간 정도 걸린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만 가면 임금 바위와 입석대를 연결한 길이 81m의 구름다리, 즉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다리에서 조망하는 깊은 금강계곡은 대둔산 경치의 압권이다.


이 다리는 1975년 건설된 국내 최초의 출렁다리였다. 건축 공사 때 비계발판으로 쓰곤 했던, 구멍 뻥뻥 뚫린 철판을 바닥재로 사용했다. 출렁거림이 심하고 구멍으로 보이는 낭떠러지가 아찔해 담이 약한 관광객들은 건널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원시적이었지만 당시로선 드물었던 출렁다리는 전국의 관광객들을 유혹했다. 다리를 건널 때 무서움에 떨었던 추억을 회상하며 이곳을 다시 찾는 노령의 탐방객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다시 놓인 현재의 다리는 출렁임이 별로 없는 안정된 다리다.


케이블카, 출렁다리를 지나면 체감 각도 70도로 일컬어지는 삼선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 수는 127개. 폭이 50㎝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철제 계단은 뒤돌아보지 않는 게 오르는 요령이다. 앞서가던 여성 2명, 남성 1명의 일행이 계단 중간에서 되돌아 내려왔다.


삼선 계단은 오르는 것보다 중간에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오는 게 더 힘들다. 내려오기 위해 몸을 돌리면 아찔한 벼랑과 계곡이 시야에 들어와 어지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삼선 계단 다음은 무수하고 가파른 돌계단이다. 케이블카가 등산 코스를 대폭 단축하기 때문에 인내심을 조금 발휘하면 정상에 서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마천대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산하는 장쾌했다. 맑은 날이면 동쪽으로 덕유산, 동남쪽으로 지리산, 서쪽으로 변산 앞바다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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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으로 빛나고 있는 대둔산[사진/조보희 기자]

◇ 눈꽃 어여쁜 겨울 대둔산

금산 쪽 대둔산을 탐방한 날 새벽 눈이 내렸다. 날카로운 바위들은 하얀 눈을 이자 비에 젖은 꽃잎처럼 함초롬해졌다. 세상의 소란은 솜 같은 눈에 빨려들었는지 산에는 평화와 고요가 내려와 있었다. 둥지에서 나오지 않은 산새는 울지 않았고 마른 눈이 뽀드득거리는 소리만 발밑에서 들릴락 말락 했다.


대둔산은 잘생긴 바위와 장대한 암벽이 많아 '작은 설악'이라 불린다. 눈 덮인 대둔산이야말로 설악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깊은 운치를 자아냈다.


거대한 바위틈을 뚫고 자란 소나무들은 분재를 확대해놓은 듯 단아했고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했다. 대둔산을 안내해준 완주, 금산 문화관광해설사들에 따르면 한국, 중국, 일본에는 공히 산이 많지만, 산이 큰 중국, 화산 지형이 발달한 일본과 달리 한국의 산은 아기자기한 멋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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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절벽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경이롭다.[사진/조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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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밀조밀 조화로운 한국 산을 즐기기 위해 방한하는 중국, 일본 관광객이 적지 않다고 그들은 귀띔했다.


대둔산 금산 구역에서 탐방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태고사∼낙조대 코스이다. 마곡사 말사인 태고사는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대둔산 제2봉인 낙조대는 경관이 탁월하다.


마천대에서 낙조대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에는 거대한 암봉이 많다. 낙조대는 일몰은 물론 일출 감상지로도 인기를 끈다. 낙조대에 닿으니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사람의 발자국이 이미 나 있었다. 설경을 찍으러 부지런한 사진 애호가가 일찌감치 다녀갔나 보다. 아이젠도 신지 않은 듯한 발자국에서 산을 향한 열정이 느껴졌다.


낙조대 아래로 노령산맥의 봉우리들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운해(雲海) 아닌 산해(山海)를 목격하는 듯했다. 대둔산에는 암벽 등반을 포함한 등산 코스가 다양하다. 완주 쪽 대둔산이 구경하기 좋은 곳이라면 금산 쪽은 산행하기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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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수락계곡[사진/조보희 기자]

◇ 깊고 그윽한 계곡, 수락

논산 쪽 대둔산은 완주나 금산 쪽과 달리 흙산, 이른바 육산(肉山)이다. 맑은 수락계곡을 끼고 있는 만큼 두 지역의 암산과는 다른 수려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대둔산은 완주나 금산 쪽이 좀 더 유명하지만, 면적으로는 논산 구역이 가장 넓다.


겨울의 수락계곡은 단아하고 정갈했다. 물길 양옆으로 솟구친 바위, 산중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골짜기는 심산유곡이 빚어낸 비경이었다.


협곡에 설치된 구름다리까지 가는 길 중간에 수락폭포, 선녀폭포, 고깔 바위 등의 명소가 있어 탐방의 즐거움을 더했다. 수락폭포는 백제 청년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며 심신을 수련했던 곳이다.


물줄기가 선녀의 하얀 비단 치마처럼 흘러내린다는 선녀폭포는 꽁꽁 얼어 있었다. 선녀폭포는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옥황상제가 선녀들에게 목욕하러 내려가도 좋다고 허락했던 장소라는 전설이 있다. 수락폭포에서 마천대까지 가는 데는 2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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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의 인삼이 거래되는 금산수삼센터[사진/조보희 기자]

◇ 세계적 규모의 '인삼 거리'

대아저수지, 적벽강, 금산산림문화타운, 금산인삼약령시장 등은 대둔산 주변 볼거리들이다. 자연이 만든 장관이 대둔산이라면 사람이 만든 장관은 금산인삼약령시장이었다. 한국 인삼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국내 인삼 생산량의 70%가 금산에 모여 거래되니 금산은 세계적 규모의 인삼 시장이 아닐 수 없다. 금산수삼센터에는 전국에서 생산된 굵직굵직한 인삼들이 대량으로 진열돼 있었다. 저렴한 중등, 하등품도 없지 않았지만, 특등품, 상등품 인삼이 큰 상자에 가득가득 담겨 있어 눈으로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금산인삼시장은 단일 품목으로는 금액 면에서 국내 최대의 농산물 시장일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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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아저수지[사진/조보희 기자]

완주군 동상면에 있는 대아저수지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댐이 1922년에 건설됐던 곳이다. 운암산, 동성산 등 주변 산세가 호수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적벽강은 금강의 다른 이름이다. 전북 무주를 지나 구불구불 흐르던 금강은 금산의 적벽을 적시고 흐르면서 적벽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적벽은 30여m 높이의 붉은 색 도는 기암절벽이다. 적벽 맞은편에는 널찍한 자갈밭이 있어 여름철 물놀이에 적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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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사진/조보희 기자]

금산산림문화타운은 중부권 최고의 산림힐링단지이다. 숲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조성된 금산의 명소이다.


남이자연휴양림, 느티골산림욕장, 산림생태문화체험단지, 목재문화체험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 캠핑장, 물놀이장, 등산로, 산책로 등은 관광객과 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어 성수기에는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완주 금산 논산 = 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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