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어라뇨…가을 은어죠
임금에게 진상되는 귀한 물고기…살 오른 가을에 더 맛나
빨간 숯불이 타는 화로 위에서 은어(銀魚)가 익어간다.
바싹하게 익은 껍질과 함께 맛본 은어의 속살은 고소함 그 자체다.
누가 가을을 전어의 계절이라 했던가.
살이 오동통하게 붙은 은어 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소리겠지….
그릴에서 익어가는 은어 [사진/성연재 기자] |
◇ 은어, 옛날부터 귀한 민물 생선
지인이 낚시를 통해 갓 잡아 온 은어가 있다길래 요리를 부탁했다.
경기도 화성의 한 캠핑장에서 경기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 김욱 교수를 만났다.
그는 저 멀리 경남 산청의 경호강에서 은어 낚시를 막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매번 그의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은어 요리가 신기해 보여 부탁했더니 마침내 승낙했다.
민물고기인 은어는 예전부터 귀한 물고기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은어에 대한 기록이 모두 8건이 나온다.
참숯에 불을 붙이는 장면 [사진/성연재 기자] |
연산군일기 56권에 보면 연산 10년에 '은어(銀魚)를 볕에 말려 봉해 올리라 하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은어는 임금에게 비칠 만큼 귀한 물고기였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요즘처럼 신선하게 보관해 한양까지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볕에 말리는 방식으로 보관했다.
김 교수는 기묘하게 생긴 화로를 하나 챙겨 왔다.
세숫대야 모습의 도자기 화로였는데, 가장자리에는 꼬치를 꽂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나 있었다.
화로에서 익어가는 은어 [사진/성연재 기자] |
◇ 참숯으로 굽는 은어
이런 장비를 챙겨온 것은 오로지 은어의 맛을 느껴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캠핑장 구석에 조용한 장소를 찾아 화로에 불을 붙였다.
깊어가는 가을이라 토치로 불을 붙이는 것은 사실 즐거운 일이다.
숯에 불이 잘 붙지 않으면 주위의 낙엽을 끌어모아 쌓은 뒤 그 위에 숯을 올리면 쉽게 불을 붙일 수 있다.
낙엽 타는 향과 함께 이윽고 참숯에 불이 붙자, 김 교수는 미리 배를 가른 은어에 왕소금을 흩뿌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꼬치에 꿰었다.
몇 분 지나자 은어에서 떨어진 기름은 그릴 아래로 사라졌고 지글지글 은어가 익기 시작했다.
은어 속살을 집어내 손가락을 후후 불어가며 맛보기 시작했다.
잘 구워진 은어 속살 [사진/성연재 기자] |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맛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은어구이를 먹어보니 가을 전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했다.
김 교수는 은어가 물속의 이끼를 먹고 살기 때문에 비린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수질이 깨끗한 곳에서 잡힌 은어일수록 먹을 때 수박 향이 난다.
은어가 먹은 신선한 이끼 덕분이다.
그래서 낚시인들은 은어를 먹을 때는 수박 향이 난다는 말을 자주 해 왔다.
김 교수는 제대로 된 은어 요리를 위해서는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은어를 잡은 뒤 하루 정도 살려 해감을 시킨다는 것이다.
◇ 빠질 수 없는 은어밥
완성된 은어밥 [사진/성연재 기자] |
귀한 은어를 맛본 뒤 이제는 은어밥을 맛볼 차례다.
압력밥솥에 씻은 쌀을 넣고 그 위에 숯불에 바싹 구운 은어 4마리를 얹었다.
가스버너 위에서 수증기 소리를 내면서 은어밥이 익어간다.
20여 분 기다렸을까. 이윽고 은어 밥이 다 됐다.
은어밥은 다 된 밥과 은어를 주걱으로 짓이긴 뒤 양념장으로 비벼 먹는다.
쪽파와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장을 얹어 먹으니 고소한 은어 속살과 갓 지은 밥이 잘 어울렸다.
여기에 기름기 자르르한 김으로 싸 먹으니 고소함이 더했다.
은어 요리를 준비한 김욱 교수 [사진/성연재 기자] |
순식간에 한 그릇 후딱 비우고 남은 누룽지라도 더 먹을 심산으로 압력밥솥을 봤으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시중의 그 어떤 식당에서 은어밥을 메뉴로 내놓는 곳을 보지 못했다.
참으로 소중한 경험을 했다는 느낌이다.
연산군은 과연 이런 은어의 속살 맛을 봤을까?
오늘만큼은 연산군 부럽지 않다는 생각을 해봤다.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