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달군 ‘문제적 의사’의 한 마디
“의대생은 학교를 떠나라. 의과대학에서 20여 년 교수 생활 한 이가 의대생들에게 전하는 충심의 조언이다.”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전공의 집단휴진, 일명 ‘의사 파업’이 끝난 후 나온 〈의대생은 학교를 떠나라〉는 칼럼이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의사는 “환자보다 먼저 아프고 더 오래 아파야 하는 직업” 이니 그런 직업을 갖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의대를 떠나라”는 이 도발적인 글은 페이스북에서만 1만 5천 회 이상 공유되며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도발적인 글의 저자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인 신영전 작가다. 그는 항상 비주류의 자리에서 상식과 통념에 도전하는 글을 써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시기에 그는 “나쁜 바이러스는 없다”라고 선언하고, 우리 몸을 관리해주겠다는 건강산업에 맞서 “건강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퓨즈만이 희망이다』는 이 같은 ‘문제적 의사’ 신영전 작가가 15년 동안 여러 지면에 쓴 글을 묶은 책이다. 『퓨즈만이 희망이다』에서 인상적이었던 글들을 중심으로 ‘문제적 의사’ 신영전 작가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의 모습을 물어봤다.
『퓨즈만이 희망이다』 라는 제목이 독특합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오랫동안 취약계층 건강 정책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에 대한 정치·경제적 고민, 더 나아가 존재론적 고민을 늘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면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부수적 피해』에 등장하는 퓨즈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과부하가 걸리면 가장 먼저 끊어져 전체 전기 시스템을 살리는 존재들의 죽음을 현대사회는 그저 ‘부수적 피해’로 간주한다는 거지요. “아! 그동안 제가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지”라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들이 단지 취약한 인간만을 의미하지 않고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취약한 ‘존재’이며, 이들의 생존이 결국 우리 인류의 삶도 결정지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인간 중심 사고를 넘어서고도 싶었지요. 그래서 박노해 시인의 책 제목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퓨즈만이 희망이다』라고 바꾸었습니다.
<나쁜 바이러스는 없다>에서 가해자는 바이러스의 벌집을 건드린 인간이고, 인간과 바이러스가 공생해야 한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하셨습니다.
제 전공인 사회의학은 기본적으로 질병의 원인을 병균, 세포, 유전자 탓으로 돌리려는 환원주의적 사고에 비판적입니다. 결핵의 원인을 결핵균 탓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먼지 나는 좁은 폐쇄공장에서 식사도, 잠도 제대로 못 하는 노동, 생활환경의 문제는 사라져 버리니까요. 하지만 노동과 생활 조건은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서도 지배 권력과 대자본은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을 싫어하지요. 더 나아가 항생제, 백신 등 문재인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영리 ‘바이오헬스’를 그 답으로 내놓습니다. 하지만 이런 환원론과 영리자본의 결합은 오히려 더 많은 질병명과 검사법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해결책이 아니라 그 자체가 질병의 원인입니다. 이 글에서 그런 환원론적 접근을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건강은 없다>에서는 “건강이란 말이 범람하고 건강산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나약해지고 아프다”라고 하셨습니다.
“건강이 없다”고 말하면 “너는 아프면 병원 안 갈 거냐?”는 질문이 바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단언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오래전에 이미 “병원이 병을 만든다”고 비판했었지요. 저는 지금 시대가 인간의 완벽함에 대한 강박이 만들어낸 ‘우생세(優生世)’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강박이 결국 인류를 망치게 될 거라는 확신에 도달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이 완벽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에게서 멀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글에 쓴 것처럼 질병, 장애, 늙음이 ‘부담’으로 전락하고 인간은 초라해지며 마침내 죽음으로써 모두 실패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실존적 당위는 ‘완벽한’ 건강이나 질병과 장애의 ‘박멸’이 아니라 본질적 불완전성과 함께 ‘온존’하기 위한 존재들의 끝없는 연대가 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으로 계시다가 유전자검사 항목 확대, 영리 유전자검사 연구 사업 등에 반대하며 <대통령 앞 사직서>를 쓰고, 공개적으로 그만두셨는데요.
국가생명윤리위원회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생명윤리와 안전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는 대통령 자문기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들어가 지난 십여 년간의 회의록을 검토해 보니, 이 조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바이오헬스 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게 주 역할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조직을 만들었던 시기가 황우석을 국가 영웅화하던 시기였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주지요. 새로 구성한 위원회에 좋은 분들이 많아 그 안에서 싸워 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서 거대과학, 정부, 대자본이 ‘철의 삼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 비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대변할 과학 시민운동세력의 힘은 너무 약하지요. 저는 앞으로 국가생명윤리위원회를 지금 국가인권위원회 수준의 독립성과 실무 역량을 가진 조직으로 만드는 운동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5년 동안 십여 차례 북한을 다녀오며 ‘영유아와 모성 보건 협력사업’ 등 대북교류에도 깊이 관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활동의 결과가 <통일부 장관 출마 선언>일 텐데요.
다들 아시겠지만, 장관은 선출직이 아니기 때문에 출마라는 것이 사실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후퇴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이 글을 썼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와 남북관계 중단이 너무 속상했지만, 이런 결정에 죽어도 안 된다고 드러누운 장관이나 관료가 없었다는 것이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한 축소되고 축소되어 권한과 조직 면에서 거의 힘을 쓰지 못하는 통일부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최근 실세 정치인이 통일부 장관으로 왔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결국 새로운 한반도 평화시민 세력의 규합과 활동이 절실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임정로드>에 임정로드를 탐방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한 인성학교 교사이자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전 세계에 알린 독립운동가 신언준 선생의 손자라고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기 직전이 마침 제 안식년이었습니다. 마침 한 신문사에서 중국 내 임시정부가 있었던 곳을 따라가 보는 4,000킬로 ‘임정로드’ 탐방단을 모집해서 얼른 신청했습니다. 오랫동안 미뤄놓았던 일 중 하나가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활동지이자 제 아버지가 태어나신 상하이에 가서 그 흔적을 돌아보는 것이었는데, 애초 목표 이상의 경험을 한 셈이지요. 할아버지는 1938년에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으니 제가 뵐 수 없었지요. 하지만 할머니로부터 안창호, 김구 선생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것이 제가 역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퓨즈만이 희망이다』는 한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놓인 ‘퓨즈’에 대한 책입니다. 이 땅의 ‘퓨즈’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앞서 언급했듯이 퓨즈는 취약한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취약한 존재들입니다. 약자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미 수많은 퓨즈들이 멸종했지요. 거시적으로 보면 이제 우리 인류도 멸종위기종인 퓨즈가 된 셈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퓨즈”라는 그런 존재적 자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신영전
의학과 보건학을 전공하고 현재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로 있다. ‘건강’ ‘취약 집단’ ‘정치학’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건강정치학을 공부하고 있으나, 최근 ‘건강’을 재정의할 필요성을 느껴 ‘온존’이라는 개념을 갈고닦는 중이다. 정치는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이라는 브라질 정치가 로베르토 웅거의 정의를 좋아한다. 물을 막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하는 것이 치수治水임을 보여준 ‘우왕’, 포정해우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 ‘포정’을 건강정치학의 롤 모델로 삼고 있다. “모두가 온존(well-being for ALL)”한 은하수를 꿈꾼다. 『보건의료 개혁의 새로운 모색』(공저), 『건강보장론』(공저)을 쓰고, 『거대한 규모의 의학』, 『리처드 레빈스의 열한 번째 테제로 살아가기』, 『붉은 의료』 등을 여러 사람과 함께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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