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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실' 이 사회의 호구(?)들이 모인 그곳

이용승 감독의 <7호실>은 ‘생존'에 관한 영화

'7호실' 이 사회의 호구(?)들이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DVD방’은 한국영화가 별로 관심을 두는 공간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10년 전이면 몰라도 누가 지금 영화 보겠다고 꿀꿀한 DVD방을 가나. 또 다른 목적을 가진 커플? 요즘 호텔 반나절 대실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다. 뭐, 내가 자주 이용해서 안다는 건 아니고, 흠흠. 아무튼, 그런데도 눈을 씻고 찾아보면 어딘가에 DVD방이 존재한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DVD방을 운영하는 걸까.

 

바로 두식(신하균)이다. 심지어 장소는 한때 오렌지족의 산실이었던 압구정동이다. 언제적 오렌지족이고, 언제적 압구정동인가. 이태원과 연남동 등의 핫플레이스에 과거의 영광을 넘겨준 압구정동에서 DVD방을 운영하는 두식은 지금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하루에 손님 한두 팀 찾는 정도로는 월세가 다 뭐야, 전기세조차 내기도 힘들 지경이다. 꼴에 또 아르바이트생은 두고 있어 월급 체납이 수개월 째다.

 

그럼 여기서 또 궁금해지는 게 월급도 못 받으면서도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또 누군가. 태정(도경수)이다. 밀린 월급을 떼이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일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액수는 점점 쌓여만 간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를 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가게 매수밖에는 없다. 근데 그것도 쉽지 않다. 어디 장사가 돼야 말이지. 두식은 호구 하나 구해 DVD방을 넘기려 공인중개사와 입을 맞추고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 더 들여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꾸민다. 조선족 출신의 아르바이트생은 “제가 일한 가게는 잘 잘 됐슴다” 호기를 부리는데 잘 되기는커녕 그 자신이 그만 감전사고를 당해 숨지고 만다.

 

이용승 감독의 <7호실>은 ‘생존'에 관한 영화다. 한국 사회에서 생존은 언젠가부터 각자도생과 동의어 취급을 받고 있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졌다. 서로 속고 속이는 이전투구의 장이 되었다. 잘 속이는 자가 살아남는 이 게임에서 사실 승자는 정해져 있다. 계급 사슬의 상위자다. 태정만 해도 자신의 돈줄을 쥔 두식의 처분 만을 그저 지켜보며 화를 삭이고 고분고분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악덕 사업주의 횡포를 고발하는 사회드라마인가?

'7호실' 이 사회의 호구(?)들이

두식의 사연도 살펴보자. 채소가게 실패 후 재기가 절실했던 그는 DVD방 수익이 짭짤하다는 업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통닭 장사로 하루살이 하는 누나의 돈까지 끌어들인 배경이 있다. DVD방이 사양 사업이 된 지 얼마나 오래됐는데. 그만큼 어수룩하다. 속여 먹기 좋은 일종의 ‘호구’라는 얘기다. 그러니 자신보다 더한 호구를 찾아야만 최소 원금 정도는 지킬 수 있다. 그래서 들인 아르바이트생인데 감전사를 당하면서 그만 일이 꼬이고 말았다. 119에 신고했다가는 DVD방 매매 불발은 말할 것도 없고 그대로 인생 ‘쫑’이다. 숨진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두식은 창고처럼 쓰는 DVD방 7호실에 시체를 숨긴다.

 

창고라고 해도 두식에게 7호실은 제단 같은 곳이다. 부적을 붙여두고 향을 피워둔 앞에서 그는 매일 같이 기도를 드린다. 내용은 예상 그대로다. “부자 되게 해주세요. 가게 좀 팔리게 해주세요. 하느님, 부처님, 부모님” 두식은 이 공간을 아르바이트생들에게는 비밀에 부치고 있지만, 태정도 여기에 숨겨둔 것이 있다. 그는 학자금 대출로 밀린 수천만 원을 조만간 상환해야 한다. 밀린 월급 받기도 요원해서 나쁜 선배를 찾아간 태정은 5백만 원을 당겨 쓰면서 부탁 하나를 받았다. 고객을 찾을 때까지만 약을 맡아달라는 건데 태정은 이를 7호실에 숨겨둔 것이었다. 근데 두식이 이 방을 대못으로 쾅쾅쾅 폐쇄해버리니, 태정 역시 골치 아픈 상황에 빠진다.

 

거액의 가치가 있는 마약과 시체 한 구, 이를 연결한 이야기는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흔한 추격전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수순처럼 두식과 태정은 경찰의 눈을 피해 각자가 원하는 시체(?)와 약을 손에 넣기는 해도 <7호실>은 의외로 이를 해피엔딩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두식이 매일 같이 7호실에서 드리는 기도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불안감의 표출이다. 큰돈 벌어 인생역전 하고픈 절실한 마음 누가 모르겠느냐마는 기도가 밝은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즉, 이 영화 속 7호실은 장시간 노동에 매달리고 죽어라 일만 해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일반의 삶이 응축된 공간이다.

 

적자생존의 장에서 나 하나만은 잘 살겠다며 멱살잡이하는 이들의 면면은 실은 한 푼이 아쉬운 우리네 모습이다. 한국 사회의 두식과 태정은 이들의 등을 쳐 배를 불리는 기득권들이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미끼로 내건 이미 한물간 DVD방과 같은 공간에서 혈투를 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심판 받아야 할 이는 온데간데없고 타국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는 조선족 아르바이트생과 같은 밑바닥 영혼만이 영문도 모른 채 피해를 보는 이 땅에 밝은 미래 따위 없다. 이런 사실을 깨달아도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흘리거나 생존 게임에서 빠져나와 양심껏 살아가며 입에 겨우 풀칠하는 정도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가진 자는 오늘도 속일 생각에 여념이 없고 못 가진 자는 이를 알면서도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귀다툼을 벌인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면 여기저기 <7호실> 투성이다.

 

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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