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형틀목수가 세상에 울리는 행복의 망치질 소리
『노가다 가라사대』 송주홍 저자 인터뷰
송주홍 저자 |
욕이나 먹으면서 잡부 생활하다가, 어느새 5년 차 형틀목수로 성장한 작가가 노가다판의 이야기와 노가다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이 책에 풀어놓았다. 하루에 수천 번 내리치는 망치가 닳을수록, 작가의 생각은 명료해졌고 문장은 벼려졌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막장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한마디로 『노가다 가라사대』는 행복한 청년 목수가 전하는 노가다판 복음인 셈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바닥이던 2018년 여름, 작가는 싸구려 여관방에서 탈출해 노가다판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부대꼈다. 어깨 빠질 듯 망치질을 하면서 마침내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지우고 행복을 발견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또한 청년 목수의 행복한 탈출기이기도 하다.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는 '글 쓰는 노가다꾼'이라 칭합니다. 원래는 기자 일을 했어요. 기자 관둔 뒤로도 글을 써서 먹고살았습니다. 그러다 서른둘, 모든 걸 정리하고 노가다판에 왔어요. 머리나 식힐 요량이었던 노가다판에서 여전히 삶을 배우며 지내는 중입니다.
『노가다 가라사대』.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가라사대'라는 제목으로 보아서는 무언가 할 말씀이 있는 듯합니다. 책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으셨나요?
이 바닥에 들어온 지 어언 5년인데요.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새삼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이 바닥 또한 보통 아저씨들의 평범한 밥벌이 현장이라는 것.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거 같아요. 일반인은 잘 모르는 공사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보편타당한 가치 같은 것들에 관해서 말이에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언젠가 같이 일했던 형님 가운데 외눈 목수가 있었어요. <생활의 달인>에 나와도 손색없는 정도로 대단한 형님이었어요. 한쪽 눈으로만 망치질하는데도 베테랑 목수 못지않았거든요. 그 형님을 지켜보면서 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애쓰는 가장의 무게를 생각했어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었어요. '아, 우리 엄마, 아빠도 저렇게 고군분투하면서 나와 형을 먹이고 키웠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담은 게 본문 중 「한쪽 눈을 잃어도 끼니는 찾아온다」라는 글이에요.
전작이 『노가다 칸타빌레』입니다. 전작과 이번 책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듯, 『노가다 칸타빌레』는 노가다판에 발들인 직후부터 쓴 글이에요. 이실직고하자면 이방인으로서의 시선이 얼마간 담겼다고 할 수 있어요. 그에 반해 이번 책 『노가다 칸타빌레』는 완숙한 노가다꾼으로 쓴 책이에요. 낯선 세계가 아닌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세계,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인 거죠. 태도나 마음가짐으로 보자면 그런 차이가 있어요. 내용으로 보자면, 『노가다 칸타빌레』는 인력소에 처음 나갔던 순간부터 잡부로 지내며 겪은 이야기, 목수가 되기까지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담았어요. 그렇다 보니 다양한 현장과 공정, 인물이 등장해요. 대신 노가다판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나 성찰은 부족하죠.
이번 책 『노가다 가라사대』는 늘 비슷한 현장에서, 늘 함께하는 형님들과 망치질하면서 쓴 글이에요. 가끔 형님들이 물어보곤 했어요. "얀마! 너는 맨날 똑같은 망치질하는데 아직도 글 쓸 게 남았냐?"라고요. 형님들 말마따나 잡부로 일하면서 다양한 현장에 다닐 때보다 소재를 찾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대신 반복되는 일상과 상황을 더 깊게 고민하고 반추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 속에서 제 나름의 메시지를 끄집어내기도 했고요.
건설 현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 책을 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송주홍 작가님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새벽 5시에 알람이 울립니다. 씻고 준비하고 헐레벌떡 6시까지 현장에 가요. 함바집에서 아침 먹고 출석부에 사인하죠. 7시부터 본격적으로 망치질을 시작해요. 오후 5시까지 수천 번 수만 번 망치를 두드리죠. 그 시간 동안 평균 2만 보 이상 걸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후 6시인데요. 바로 씻고, 산책 겸 운동을 합니다. 특별할 건 없고, 한 시간 정도 동네 골목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녀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체력이 달리는 것 같아서요.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요. 집에 돌아오면 바로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그때부터 글을 써요.
잘 써지는 날은 밤 11시까지, 글이 안 써지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10시까지... 그때그때 달라요. 글을 다 쓰고 나면 저녁을 먹어요. 저녁을 늦게 먹는 이유는 체력 때문이에요. 퇴근하고 밥을 먼저 먹으면 몸이 푹 퍼져요. 머리가 멍해져 글을 쓸 수가 없어요. 아무튼 저녁 먹고 나면 누워서 책을 읽어요. 다만 한 페이지라도 읽다가 자려고 노력해요. 당연한 얘기지만, 1년 365일 내내 그렇게 살진 못해요. 저녁이나 주말에 약속이 있을 때도 있고, 아무 약속 없어도 그냥 쉬고 싶은 날도 있어요. 그런 날이 며칠씩 이어질 때도 있고요. 그래서 스스로 늘 경계하는 편이에요. '그냥 노가다꾼' 말고, '글 쓰는 노가다꾼'으로 살기 위해서요.
「프롤로그」에 보면 '진짜 노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나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진짜 노동의 역사'란 무엇인가요?
학창 시절 근현대사 시간에 배우잖아요. 박정희가 어쩌고 한강의 기적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 또 그런 책 많잖아요. 김우중 회장이 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이병철의 『호암자전』 같은 책. MBC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같은 방송도 했었잖아요. 그런 책이나 방송, 교과서에서 늘 강조했던 건 지도자나 경영자의 리더십과 철학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들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어떻게 이끌어왔고, 얼마나 눈부시게 발전시켰는지 하는 이야기잖아요.
실은 우리네 엄마, 아빠, 삼촌, 이모가 신발 공장에서, 가발 공장에서, 건축 현장과 토목 현장에서 열여덟 시간씩 피를 토하고 뼈를 깎아가며,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아가며 이룩한 역사인데 말이죠.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성공 신화 어디에도 그런 노동자의 이야기가 없더란 말이죠. 그러니까, 엄숙한 표정으로 세상을 논하고, 책에서 읽은 것만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 얘기 말고, 몸과 땀으로 마침내 삶을 증명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물론, 제가 많이 부족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담진 못했습니다만, 앞으로도 저는 '진짜 노동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살고 싶어요.
본문에 '콘텐츠 기획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행복'의 관점에서 그 제안을 거절하셨다고 나옵니다. 그 결정에 '후회'는 없는지, 또 그런 결정을 낸 까닭을 듣고 싶습니다.
당연히 후회는 없고요. 제 성격상 후회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노가다 때려치우고, 그분께 다시 전화를 드렸을 거예요. "그때 그 제안, 여전히 유효한가요?"하고 말이죠. 그런 결정을 한 이유는 책에 자세히 나오는데요. 짧게 말씀드리면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예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이거든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래요. 저는 여전히 글 쓰는 게 좋고, 망치질이 즐겁고, 그래서 망치질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때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노가다 칸타빌레』와 『노가다 가라사대』 두 권 모두 건설 현장을 다룬 책입니다. 앞으로도 건설 현장과 관련한 책을 계속 쓰실 건지, 아니면 다른 글을 쓰실 건지 궁금합니다.
『노가다 칸타빌레』를 출간했을 땐 미련이 좀 있었어요. 아직은 할 얘기가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가다 가라사대』를 쓰기 시작했고요. 『노가다 가라사대』를 탈고한 뒤엔 아무런 미련도 없어요. 지금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준비 중이에요. 저희 어머니의 삶을 기록해보려고요. 늘 술에 절어 사는 어머니의 아버지와 5남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새벽부터 일터에 나가야 했던 어머니의 어머니 대신, 집안 살림을 도맡은 게 제 어머니 열두 살 때였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어요. 그런 어머니가 열여섯 살 때 통조림 공장에 취직한 뒤로 섬유 공장과 재화 공장 등을 전전하다가, 스물세 살에 가난한 저희 아버지와 결혼해요. 그 뒤의 삶은 소설이라고 해도 너무 과장한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예요.
그런데 말이에요. 저희 어머니만 특별하게, 혹은 대단하게 고달픈 삶이었을까요? 아마도 아닐 거예요.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나온 여성들의 삶이 대체로 그러했을 거라고 짐작해요. 그래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터에 나가서 돈을 벌어왔던 아버지의 삶 말고, 하루에 열댓 번씩 밥상을 차리고 찬물로 설거지해야 했던 어머니의 삶 말이에요. 요즘, 인터뷰를 핑계로 2주에 한 번씩 어머니를 만나요. 저녁도 함께 먹으면서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눠요. 무뚝뚝한 아들이 꼬박꼬박 찾아와 함께 데이트하는 것만으로도 어머니한테는 큰 기쁨인 모양이에요. 시작하길 잘한 것 같아요.
*송주홍
글 쓰는 노가다꾼.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다. 대전과 서울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 뒤로도 글을 써서 먹고살았다. 서른둘, 모든 걸 정리하고 노가다 판에 왔다. 머리나 식힐 요량이었던 노가다 판에서 일하면서 삶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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