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렌시아, 호텔과 같은 일상을 위하여
페브릭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린넨을 사랑하게 될 것
우선 공간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최근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 키워드 중 하나가 ‘케렌시아(Querencia)’다. 일상을 중시하는 문화가 발견한 신조어 더 정확히는 마케팅용어라 할 수 있는데, 몸과 마음의 휴식이 되는 공간, 또는 그러한 공간을 찾는 경향을 뜻한다. 즉, 나만의 안식처를 갖자는 뭐 그런 이야기에 신뢰를 더하기 위해 이색적인 스페인어를 썼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듯하다. 두 번 정도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정을 보호해주는 정서적 해자와 빙벽이 필요하다는 사회 분위기의 발현이 아닐까 싶다.
집을 의미하는 홈(HOME)과 놀이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합쳐진 ‘홈루덴스(Home Ludens)’, 침구나 카페트, 벽지, 조명, 가구 등으로 집 안을 꾸미는 산업 ‘홈퍼니싱(home furnishing)’, 집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며 보내는 휴가 ‘홈캉스’ 2017~2019년 침실 인테리어 트렌드인 모던한 럭셔리 호텔 스타일을 뜻하는 ‘맥시멀리즘 (Maximalism)’까지 다 비슷한 이야기다. 소확행은 꺼내지도 않겠다.
케렌시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간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다른 사람들이 관심과 감탄을 자아낼 수 있는 예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한 가장 기본 바탕이 조명의 온도와 이부자리다. 특히 가장 부피가 큰 살림인 침구는 1인 가구의 인테리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침구의 스타일이 방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침구 관련 산업이 확장 일로다. 이 트렌드를 이끄는 라이프스타일은 호텔식 베딩이다. 대부분의 침구 브랜드들과 5성급 호텔들은 럭셔리라인을 만들거나 PB상품을 강화해, 호캉스를 넘어서 안방을 호텔처럼 꾸미겠다는 야심과 판타지를 자극한다.
침구를 갖출 땐 색과 소재의 톤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별한 기호가 없다면 화이트나 깔끔하면서도 진중한 네이비나 그레이, 겨울에는 브라운계열처럼 따뜻한 톤을 기본으로 배색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침대 위는 UFC의 케이지가 아니니 가능한 여러 브랜드나 다양한 소재, 패턴을 이종 집합하지 않는다. 사실 침구의 선택은 취향뿐 아니라 어느 정도 공부와 경험이 필요한 분야다. 무조건 고급스럽고 값비싼 소재나 브랜드를 구매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 없다면 무인양품 같은 곳에서 세트로 구매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호텔처럼 살겠다는 이 문화의 핵심은 값비싼 침구를 갖추는 게 아니다. 그만큼 신경을 쓰면서 살겠다는 거다. 그러니 살림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네 일상 이부자리가 호텔 베딩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서양식 침구 구성을 전부 갖추기에 공간과 세탁 측면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침대 다리를 가리는 베드 스커트부터 매트리스 커버(모서리에 고무줄이 달린 제품은 피티드 시트(fitted sheet)라 한다), 그 위에 매트리스 패드를 얹고 플랫시트(Flat Sheet)와 이불〔속통과 이불커버가 분리되는 제품을 듀베이(duvet)라 하고 차렵이불 같이 커버가 따로 없는 이불은 컴포터(Comforter)라 부른다〕을 덮는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덮을 수 있는 스프레드(Spread)를 깐 다음 침대 아래쪽이나 중앙부에 띠처럼 장식하는 베드 쓰로(Bed Throws) 혹은 베드 러너(bed runner)를 얹어야 한다. 베개도 침대 헤드에 세워두고 기댈 수 있는 가장 큰 베개인 샴(Sham), 숙면용 베개, 그리고 그보다 작은 쿠션까지 3단 시스템이다.
아침에 서둘러 출근해야 하는 생활인이 이걸 다 해내기란 어렵다. 따라서 몇 가지만 차용하길 추천한다. 기본적으로 베개는 1인당 최소 두 개씩 놓고, 이불과 매트리스 사이에 광목천이나 리넨으로 만든 얇은 플랫시트를 한 장 깐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 최소 하룻밤에 300cc 이상의 땀을 흘리고 온갖 오염물질을 배출하는데 플랫 시트는 이불의 오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같은 맥락에서 매트리스 패드도 권장한다. 싱글 살림에 가장 많이 쓰는 세탁기 용량은 8~10킬로그램짜리다. 플랫시트와 패드를 사용하면 누구나 2주에 한 번 정도 해야 하는 침구 빨래를 일상적으로 할 수 있다. 스프레드는 침구의 얼굴과 같다. 집 안 분위기는 사실 이 스프레드가 대부분 담당한다. 겨울에는 펜들턴의 담요를 깔면 보온도 되고 에스닉한 오두막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여름에 얇은 홑이불만 깔아두면 빈약해보이기 십상인데 그 위에 리넨 담요나 스프레드를 깔아두면 한결 부드럽고 느낌 있는 공간이 연출된다.
구스다운의 최대 단점은 털 날림
슈퍼 싱글 이하의 잠자리를 갖고 있거나, 혼자 사는 마당에 규모가 필요한 호텔식 베딩이 부담스럽다면, 구스다운 이불과 플랫시트, 리넨 담요의 간결한 조합을 추천한다. 구스다운은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이불 소재로, 호텔식 베딩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따스하고 푹신한 구스다운 이불은 노곤해진 몸을 누이면 온몸을 침대에 흡수시키는 듯한 기분을 들게끔 한다. 보온, 가볍지만 몸에 감기는 듯한 적절한 무게감, 통기성과 흡습성까지 훌륭한 덕이다.
구스다운은 비교적 고가라 신중히 구매해야 한다. 꼭 따져야 하는 것이 원산지와 필파워다. 헝가리, 시베리아, 캐나다, 혹은 독일에서 생산됐으며 기계가 아닌 손으로 뽑았다는 ‘hand harvest’ 인증이 있는 제품이 최상품이다. 또한 그레이 색상의 솜털이 보다 고급으로 취급된다. 필파워란 숫자가 높을수록 같은 무게당 공기층을 많이 형성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적은 양으로 가볍고 따뜻한 최상의 퍼포먼스를 낸다는 뜻이다. 따라서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제품이지만 20도 안팎의 실내 환경에서 550만 넘어도 여름을 제외하고 충분히 쓸 만하다.
구스다운의 최대 단점은 털 날림이다. 완벽히 방지하기란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제품들은 솜털이 최대한 빠져나오지 않고, 촉감도 만족스럽게 만들기 위해 최소한 고급 원단의 마지노선이라 볼 수 있는 60수, 300TC 면을 사용해 만든다. 여기서 수는 1g의 실로 몇 미터를 짰는가를 나타내는 실의 굵기를 뜻하는 단위다. 숫자가 높을수록 원단이 얇아 부드럽다. 60수의 경우 1g당 실의 길이가 대략 102미터고, 40수는 68미터다. TC란 thread count를 뜻하는 말로 1제곱센티미터당 실의 수, 즉 밀도를 뜻하는 미국식 표준이다. 우리네 60수가 대략 300TC와 상응한다. 제대로 된 구스다운의 경우 900TC, 1300TC제품들 까지 나오는데, 굉장히 부드럽고 가볍지만 구겨짐과 내구성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이 정도로 수가 올라가면 세탁도 드라이클리닝밖에 안 된다.
대중적인 제품들은 대부분 40수 이하짜리 면 커버로 제작되는데, 성긴 직조 틈새로 털이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운프루프 가공을 한다. 이는 낮은 밀도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안쪽 면에 일종의 코팅을 했다는 뜻이다. 이 코팅이 구스다운 이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이유다. 다시 말해 60수 이상의 고급 면을 사용한 제품에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가격도 저렴해지고, 털 빠짐도 완화되지만 흡습성, 통기성과 같은 구스다운 본연의 쾌적한 기능은 마비된다. 구스다운을 살 마음을 먹었다면 지갑은 최대한 크게 열길 권장하는 이유다.
참고로, 침구를 시작으로 페브릭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머지않아 리넨과 사랑에 빠질 게 분명하다. 리넨은 역사상 인류와 가장 오래 함께하고 있는 면직물이다. 여름 소재란 인식이 강하지만 따뜻한 색감과 높은 보온력으로 인해 겨울에도 매우 잘 어울리는 사계절 소재다. 리넨의 통기성은 겨울에는 따뜻한 체온을 품고, 여름에는 체온을 떨어뜨려주는 역할을 한다. 내구성도 강하고 사용할수록 세월을 덧입는 경연 변화 또한 사랑스럽다. 리넨 커튼을 투과한 햇살이 머금은 공간은 언제나 부드러운 무드를 자아낸다. 흰색 이불 커버 위에 리넨 담요 스프레드는 일종의 클래식이다. 갖은 무늬와 질감의 리넨 티타월은 주방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가꿔주는 꽃이다. 사치는 금물이라지만 우리 집에서 리넨 티타월 만큼은 사치의 치외 법권 지역에 놓여 있다. 어쩌다가 질 좋은 리투아니아산 리넨이나 프랑스, 벨기에산 리넨을 발견한다면 일단 쟁여놓도록 하자.
글 | 김교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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