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CEO 프로젝트의 충격적 실체를 고발하다
『자포스는 왜 버려진 도시로 갔는가』 저자 에이미 그로스 인터뷰
Aimee Groth by kristin Abigail |
‘고객에게 행복을 배달한다(delivering happiness)’는 독특한 기업 문화로 유명한 자포스(Zappos)는 포천(Fortune) 선정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꼽히는 온라인 신발 회사다. 천재 CEO 토니 셰이는 자신이 꿈꾼 유토피아적 계획에 맞춰 낙후된 라스베이거스 구도심 ‘다운타운’에 새롭고 혁신적인 기업 공동체를 건설하겠다며 ‘다운타운 프로젝트’를 선포한다. 저널리스트 에이미 그로스 또한 토니 셰이의 이상향에 이끌려 ‘다운타운 프로젝트’에 동참한다. 그러나 다운타운 프로젝트의 ‘황금기’는 고작 1년에 불과했다.
『자포스는 왜 버려진 도시로 갔는가』 저자 에이미 그로스는 5년간 자포스 생태계 깊숙이 들어가 자신이 보고 듣고 겪고 느꼈던 것들을 가감 없이 써 내려갔다. 이 책은 혁신의 그늘 뒤에 밀린 임대료를 걱정하는 소상공인, 집세를 내야 하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월급쟁이 등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아무리 좋은 생각과 실천도 독단적이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과연 토니 셰이의 이야기는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이 될 만한가? 아니면 이뤄낼 수 없는 도전에 대한 엄중한 경고인가?
책에 언급되어 있긴 하지만, 시계를 몇 년 전으로 돌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특히 당신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다니던 직장(언론사)까지 그만두었는데, 무엇이 그토록 당신을 도전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자포스 CEO 토니 셰이를 만나고 그를 따라 사막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겠다는 결심을 한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매우 중요한 시기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그 순간은 바로 삶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거나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껴지는 존재론적 고뇌의 시간이었다. 이들은 토니에게서 그 답을 찾았다. 토니는 자신의 계획을 통해 모든 것이 실현될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약속했다. 아메리칸 드림 같은 이상향과 각자가 품고 있던 평생의 야망이, 그것도 단 5년이라는 기간 안에 가능하다고 했던 것이다. 이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었고, 우리 대부분은 토니를 믿었다. 게다가 토니가 지닌 컬트적 개성 또한 우리가 그를 따르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당시(6년 전인 2012년) 나는 나만의 분명한 자아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이었는데, 토니의 제안으로부터 그 답을 찾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외부에서 답을 찾고 있었다. 결국 나를 포함해 모든 이들이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내적인 부분은 뒤로하고 바깥을 향했던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기존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 혁신적인 방법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 우리는 이처럼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에게 좋은 평가를 내려왔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평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비즈니스 전문 저널리스트인 당신은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사실 실리콘밸리에는 자기 과신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위대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지나치게 ‘자아’를 숭배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첨단산업 분야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지난 2년의 기간을 통해, 지금까지 인기를 끌어온 자아 중심적인 리더십 모델에 대해 우리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기존 리더들과는 다른 유형의 리더를 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기중심적인 방식에서 탈피해 좀 더 큰 객관성을 지닌 리더들이다. 〈콰르츠(Quartz)〉에서 일하고 있는 내 동료는 “실리콘밸리에 새로운 유형의 리더가 등장하고 있다”라며, 이와 같은 문화적 변화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녀는 구글의 선다 피차이(Sundar Pichai)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같은 새로운 유형의 CEO들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이들은 공감 능력을 갖춘 섬세한 리더십 스타일을 지니고 있으며, 비전투적인 의사소통을 옹호한다. 바로 이들이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토니 셰이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토니 셰이는 흥미로운 유형의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정확히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바를 꼭 집어 이야기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게다가 매우 설득력 있는 화술을 지녔다. 아마도 이런 능력을 카리스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를 포함해) 그와 가깝다고 여겼던 많은 이들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한국에도 토니 셰이를 꿈꾸며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토니 셰이가 이룬 두 가지 성공 사례로 2억 6,500만 달러를 받고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한 링크익스체인지(LinkExchange)와, 12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아마존에 매각한 자포스를 들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하버드대학 동기인 앨프리드 린(Alfred Lin)이 토니와 함께 일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앨프리드 린은 링크익스체인지에서 재무이사로, 자포스에서 재무 및 운영 최고책임자 겸 회장으로 일했었다. 토니는 타고난 모험가였고, 앨프리드는 두 회사를 운영하면서 토니가 감수하려던 위험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앨프리드는 토니가 다운타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즈음 자포스를 떠났다. 자포스에서 그를 대신할 인물은 없었고, 토니가 앨프리드처럼 균형을 이뤄줄 누군가와 함께 일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다운타운 프로젝트의 원대한 비전을 실현시키지 못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분들께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신뢰할 수 있는 평형추와 같은 파트너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와 셰릴 샌드버그, 스티브 잡스와 팀 쿡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된다. 성공한 비전가 뒤에는 늘 훌륭한 경영자가 함께하고 있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맥스 레브친(Max Levchin)은 페이팔 마피아(페이팔에서 나와 벤처기업을 설립하거나 벤처업체에 투자하는 등 실리콘밸리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파워 그룹)가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서로의 능력에 대해 매우 신뢰했기 때문에 페이팔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레브친에 따르면 스타트업을 공동 창업하는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실수는 ‘내가 상대방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그와 창업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래 위에 동반자 관계를 쌓아가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힘든 시간이 쌓이고 쌓여, 그 관계는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Aimee Groth by kristin Abigail |
당신은 자포스가 홀라크라시(Holacracy)를 도입한다는 뉴스를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기자로도 유명하다. 자포스가 홀라크라시를 도입한 지 5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도입 초기와 달리 홀라크라시가 자포스에서 잘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자포스는 2013년 ‘직위 체계나 관리자,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 홀라크라시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끌벅적했던 이 시스템의 도입을 통해 토니 셰이는 (기존의 피라미드형 구조를 뒤집어) 셀프 조직화라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회사를 하나의 도시처럼 운영하고자 했다. 그는 1,500명이나 되는 자신의 직원들에게 각자가 기업가처럼 일하도록 장려했다. 이는 아마존 소유의 회사가 된 자포스에서 급격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토니와 함께 일해온 직원들도 권력의 탈중심화라는 개념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홀라크라시를 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의 30퍼센트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미국에서 일하기 가장 좋은 직장으로 계속해서 손꼽혔던 회사 자포스에게 이는 상당히 높은 이직률이었다. 그러는 동안 자포스는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몇 년간 언론에서 자포스의 홀라크라시 실험에 대해 여러 차례 다루었으나, 2017년 미국에서 내 책이 출간된 이후에는 토니와 자포스의 소식을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이들은 더 이상 홀라크라시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이야기를 내놓지 않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다운타운 프로젝트의 명암을 평가해본다면?
다운타운 프로젝트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도시를 변화시키겠다고 약속한 점이었다. 토니 셰이는 황폐해진 라스베이거스 다운타운 중심에 기업가들만의 생태계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대중에게 너무나 잘 홍보했다. 토니는 이를 위해 다른 무엇보다 빠른 도시 건설을 추구하겠다며 실리콘밸리의 전통적인 지혜를 적용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도시계획을 단 5년 안에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이 계획을 실행하는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는 현 상태를 파괴하기를 원하는 수많은 이상주의자들을 끌어들였으나, 그들 대부분은 실제 경험이 부족하거나 그 일을 실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전통적인 지혜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지 않으면서 도시 건설에 ‘탈관습적’ 전략을 적용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부분과 파티 문화가 뒤섞이면서 다운타운 프로젝트는 마치 모래 위에 도시를 짓는 것과 같았다. 지속가능한 커뮤니티와 혁신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반은 형성되지 않았다. 결국, 토니를 따르던 상당수의 추종자들이 환멸을 느낀 채 이곳을 떠났고 다른 곳에서 자신들만의 삶을 다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책 출간 이후 미국에서의 반응이 궁금한데, 어떤 이야기를 주로 들었는가? 특히 자포스 측에서는 책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자포스는 왜 버려진 도시로 갔는가』 는 실리콘밸리가 윤리적인 위기에 봉착했을 즈음 출간되었다. 당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던 페이스북이나 우버와 같은 테크 기업들에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고, 사람들은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집단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했다. 이러한 흐름과 미국의 불안정한 정치 풍토가 결합해 실리콘밸리는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동안 우리가 비즈니스나 정치적인 영역에서 권한을 부여해온 리더들의 유형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자포스는 왜 버려진 도시로 갔는가』 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로부터 문화적 시대정신을 적절히 반영한 책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러한 언론 보도가 다소 과장된 듯 느껴졌으며, 내가 의문시하는 서구적 가치와 무모하고도 잘못된 방식의 행복 추구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들은 지나치고 있는 듯했다.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s)〉가 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잘 짚어냈다고 생각하는데, 다음과 같이 언급했기 때문이다. “자포스에서 벌어진 사회적 실험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나 경영관리 기법, 인간의 가치와 같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책으로, 기업들에 대한 폭넓은 시사점이 담긴 흥미로운 비즈니스/사회 연대기다.”
그리고 토니 셰이와 자포스는 내 책에 관여하지 않고 책의 출간에 대한 언급도 자제하고 있는데,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진실은 불편하기 마련이니.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에이미 그로스 저/이정란 역 | 한빛비즈
그 혁신의 그늘 뒤에 집세를 내야 하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월급쟁이 등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아무리 좋은 생각과 실천도 독단적이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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