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걸어야겠다
걷다 보면 괜찮아지는 신기한 일
언스플래쉬 |
생각이 가득 차서 머리가 무거워지면 이내 지쳐 침대에 드러눕게 된다. 생각을 멈추려고 누웠는데, 기다렸다는 듯 무수한 생각들이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의도와는 다르게 생각의 가지들이 편하게 뻗을 자리를 마련해 준 탓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결국에는 부정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잠을 잔다. 그렇게 자는 잠은 제대로 된 도피처도 재충전의 시간도 아니라서, 깨고 나면 되려 기분이 더 나빠진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거지?
육체 피로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내버려두면 어느 정도 회복된다. 격하게 움직인 부위의 근육을 잠시 쉬어주면 이내 활동 가능한 상태로 돌아온다. 하지만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되면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 단언컨대 무작정 가만히 누워 있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도 ‘꼼짝도 안 한 채 이불 둘러쓰고 싶은 순간’이 없는 건 아니다. ‘이렇게 힘든데 뭘 더 어떻게 움직여?’ 의구심부터 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힘들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되뇌게 되었다.
‘아, 힘들다…… 걸어야겠다.’
나는 힘들수록 주저앉거나 눕기보다는 일단 일어나려 애쓴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 오히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팔과 다리를 힘차게 흔들면서 온몸에 먼지처럼 달라붙은 귀찮음을 탁탁 털어내본다. 그렇게 걷다보면 녹슬어서 삐걱거리던 몸과 마음에 윤기가 돈다.
-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163-164쪽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간다. 복작거리는 게 싫어 일부러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는 뒷골목으로 향한다. 요 몇 달간 다니지 않았던 길이라 처음 와 본 동네처럼 낯설다. 새로 문을 연 가게의 빤딱빤딱한 새 간판에 새겨진 이름을 천천히 발음해 보기도 하고, 창문 너머 가게 주인의 표정도 힐끗 훔쳐본다. 가끔 가는 김밥 가게는 오늘도 넘치는 손님들로 정신이 없고, 초점 없는 눈빛으로 쉬지 않고 김밥을 말고 있는 아주머니를 본다. 맞은 편에서 팔을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며 걷는 사람이 다가온다. 열정적으로 걷고 있지만, 저 사람도 나처럼 사는 게 답답해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된다. 동네를 한 바퀴 걷다 보니 지금까지 뭘 고민했던 건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대로는 절대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정신 차리고 다시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생겨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힘들 때 마다 못살겠다고 말하는 대신, 걸어보기로 한다.
걷기는 비우기다. 쓰레기같이 냄새나는 감정으로 꽉 찬 마음의 휴지통을 비우는 일이다. 걷기는 마음을 정화시킨다. 걷다 보면 분노나 질투심 같은 마음의 오염 물질이 점차 빠져나간다. 더 걷다 보면 내 마음은 나와 아무 관련 없이 그냥 거기에 있었던 길과 분수대, 하늘과 구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로 꽉 찼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자신이 세상의 극히 작은 한 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겸손해진다. (중략) 우리는 걸으면서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걸으면서 세상일에서 받은 상처와 실망을 다독거린다. 마음속을 닦아내고 정신을 정화시키기 위해 걸어야 한다. 몸을 움직여 걷다 보면 온몸에 에너지가 퍼지고 순환이 촉진되며 외부와의 교감이 일어난다.
- 정수복, 『파리를 생각한다』 64-65쪽
그냥 걷기만 했을 뿐인데 마음의 오염 물질이 빠져나가 마음이 정화가 된다니, 걷기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창작이 필요한 일을 할 때, 하루 종일 책상에서 끙끙대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밖에 나가 터덜터덜 걷던 중에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경우가 많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좋지 않은 감정이 다 빠져나가 마음의 빈 공간이 생겨 그 틈으로 신선한 아이디어가 생겨난 거였다. 걷다 보면 잡다한 생각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가장 본질에 가까운 생각 하나만 남게 되는, 신기한 일.
아니 대체 하와이까지 와서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뭐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 가고 있는 거지? 10만보를 걸어서 뭐하자고?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걷자면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걷는 목적을 잃어버렸다.
그 당시에는 다들 이런 고통과 회의에 푹 잠긴 상태로 계속 걸어서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흥미롭게 느껴진다. 하와이에 왔으니 10만 보 걷기에 도전해보자며 다 함께 목표를 설정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의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고, 이 길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스스로 세운 목표를 부정하며 ‘포기할 만하니까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었던 거다. 이것은 꼭 걷기에 관한 얘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유난히 힘든 날이 오면 우리는 갑자기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 ‘사실 처음부터 다 잘못됐던 것이다’라고 변명한다. 이런 머나먼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최초의 선택과 결심을 등대 삼아 일단 계속 가보아야 하는데, 대뜸 멈춰버리는 것이다.
-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78-79쪽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언제부턴가 사무치게 다가온다. 한 걸음을 걷지 않으면 천릿길은 갈 수 없다. 한 걸음을 떼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걷는 걸음에도, 비유적으로 쓰는 걸음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말은 너무 쉽다. 정말 너무나도 쉽다. 말로 내뱉은 결심을 한 걸음으로 옮기면, 그때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 ‘포기한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침대로 기어가 드러눕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일단 운동화를 신는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이게 굳이 포기를 운운하며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고민할 일이었나 싶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고 의미 없게 느껴질 때마다, 하정우표 주문을 걸어봤으면 좋겠다.
‘아, 힘들다…… 오늘도 걸어야겠다!’
글 | 최지혜
하정우 저 | 문학동네
‘배우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실제로 그가 두 다리로 땅을 디디며 몸과 마음을 달랜 걷기의 노하우와 걷기 아지트, 그리고 걸으면서 느낀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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