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주' 속 그 찻집 아리솔
황차 한 잔이 전해준 삶의 가르침
우리나라 고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 경주. 개인적으로 이곳을 사랑하는 나는 일 년에 두 세 번 정도는 꼭 들른다. 언제 가든 좋다. 역사관광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그곳들을 찾지 않아도 경주라는 공간이 지닌 유구한 분위기는 도심에서 벗어난 느낌을 한껏 전해주니까.
이번에도 경주를 찾았다. 경주로의 여행을 계획한 후, 그간 가보고 싶었던 ‘아리솔’이라는 전통다원을 목적지 중 한 곳으로 정했다. 아리솔은 영화 <경주>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극중 공윤희(신민아)가 운영하는 찻집으로 등장하는데, 최현(박해일)의 추억이 서린 장소이며 그 때문에 다시 찾은 곳이다.
영화 속 주 배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아리솔은 극중에서 ‘굉장히 한국적인 공간감’을 지닌다.
예스러움을 간직한 공간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최현이 마시는 황차(黃茶), 그리고 그와 나누는 윤희의 대화의 감수성 또한 현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경주라는 도시와, <경주>라는 영화와 곧잘 어울리는 장소다.
경주를 찾기 며칠 전, 영화를 재감상 했다. 이 영화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경주’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추억여행작품이다. 실제로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뤄지기도 하고, 최현의 기억(추억)들이 어쩌면 ‘죽은(가공과 편집된) 것들’이라고 암시하기도 한다. 원래 인간의 기억이란 건 기록과는 다른 것이어서 재편집될 수밖에 없다. 다뤄지는 소재들은 죽음 외에도 역사와 사랑, 실체(존재)에 대한 관념적인 것 등 다양하다.
추억을 더듬는 작품인 동시에 예스러움이 배어있는 이 영화감상을 마친 후, 아리솔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심상을 안고 실제 그곳을 찾았다.
위치는 예상과는 먼 곳에 존재했다. 물론, 그래서 여행자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상대로라면 외딴 곳에 위치해있어야 할 이곳은 도심에 있다. 경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도 충분히 방문 가능하다. 입구에 다기(茶器) 등을 판매하는 갤러리가 있고, 그 사잇길로 들어서면 찻집을 발견할 수 있다. 안내 또한 자세히 나와있으며 갤러리 외관에 <경주> 포스터가 부착돼 있어, 이 길을 지나는 이들이라면 굳이 목적지로 정하지 않았더라도 반가움에 발걸음을 멈추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규모는 크지 않다. 물론, 영화에서도 과장하지 않았고 과장될 수 없는 공간이다. 다소 아쉬웠던 점은 이곳 너머의 공간들이 도시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솔에 들어서자마자 호흡이 느려졌다. 출입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글귀가 내면에 들어서면서부터 예스러운 기운이 온 몸을 휘감는다. 반가움에 사진을 찍고 있으니, 주인이 “몇 분이세요?”라며 맞이했다. 응답 후 나는 “<경주>에 나온 그 방, 이용할 수 잇나요?”라고 첫 질문을 했다. 운이 좋게도, 때마침! 그 공간이 비어있었다. 다른 이들도 있었고 우리가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이들도 찾았기에 “완전 운 좋다!” 라며 친구에게 기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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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극중의 춘화(春畵)를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지금은 산수와 다기의 벽화가 그곳을 대신하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궁금증이라도 풀고자 주인에게 “여기에 영화 속 춘화가 실제로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초기엔 실제로 그림이 있었고, 영화 촬영 당시엔 없었어요. 감독이 당시 춘화를 그렸던 화가를 찾아, 다시 춘화를 그리게 했고 임시로 활용된거예요.” 였다. 사실, 영화 속에서도 최현이 사라진 춘화를 찾기 위해 벽과의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흘러나오는 음악 또한 예스러웠다. 자연스럽게 추억여행을 떠나게 만들어주는 음악들이었다.
극중 배경이 된 방 |
최현이 마셨던 황차와 더위를 식혀줄 냉오미자차를 주문했다. 황차를 주문하면 보온병에 담긴 물과 함께 잎이 담긴 티팟이 나온다. 주인은 티팟에 뜨거운 물을 적당량 부은 뒤 1분 가량 우려낸 후 마시면 된다고 알려줬다. 녹차향이 감도는데, 보다 짙은 풍미를 지닌 맛이 일품이다. 따듯한 황차를 마시니 몸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론 시원한 얼음이 띄워진 오미자차가 더욱 좋았지만….
아리솔은 경주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오후 여섯 시가 마감시간이었고, 우리가 마지막 손이었다. 이곳에서 해질녘 풍경을 즐기고 싶었는데 다소 아쉬웠다. 그렇게 아리솔을 나와 경주의 도심을 걸었다. 영화<경주>에서도 같은 맥락의 대사가 나오는데, 이곳은 어디에서든 무덤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을 한껏 체감할 수 있었다. 도심 곳곳에 고분이 있다. 그리고 경주 시민들은 자유롭게 그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늘 ‘죽음과 가까이에 있는’ 경주 시민들은 어쩌면 ‘죽음이란,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그것을 염두에 두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메멘토 모리’. 사실,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것일 테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은 죽음이다’라고. 죽음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 이 순간들이 가장 값지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경주>의 배경이 됐던 아리솔에서 전통 차를 즐기며 부렸던 여유, 그 여유에서 얻었던 마음의 여백, 그것을 통한 내면정화, 그리고 경주의 곳곳에서 죽음을 염두에 두며 삶에 대한 가치를 인식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좋았다.
이번 경주여행은 ‘영화 속 배경 찾기’ 프로젝트 그 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기에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기억은 추억이 되면서 편집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록’ 중이다.
영화 <경주>를 인상 깊게 감상했었다면, 아리솔에 들러 분위기를 만끽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이번 아리솔 방문은 내게 ‘낭만의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글 | 최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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