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화를 내면 자존감이 낮아질까?
『초등 자존감의 힘』연재
"내 그럴 줄 알았다."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무심코, 습관처럼 하는 말버릇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얼마나 사용하시나요? 사소한 이 말 한 마디가 아이의 자존감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저희 반 영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른 아침 맨 먼저 등교한 영수의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영수는 말이 적기는 하지만, 늘 고개 숙여 인사하던 예의바른 아이입니다. 불현듯 걱정이 되어 혹시 열이 있는지도 재보았지만 아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영수야, 오늘은 휴대폰 내는 것을 깜박했네.”
영수는 아무 대답 없이 휴대폰을 낸 다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너무 기운없는 태도에 뭐라고 이야기를 이어갈지 망설여졌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무슨 일 있었니?”
“선생님, 저는 쓰레기예요.”
뜬금없는 대답에 순간 가슴이 아파왔지만, 섣부른 위로의 말을 건넬 수는 없었습니다. 영수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씀드릴까 했지만 그것도 미루었습니다. 일단 영수가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며칠 지나고 영수의 표정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변했을 때, 다시금 아이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영수야, 며칠 전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되고.”
순간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지만, 영수는 담담히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요, 평소엔 그 말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날 따라 그 말을 듣고 제가 정말 ‘하찮은 쓰레기 같은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영수 엄마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은 “내 그럴 줄 알았다”였습니다.
많은 부모님들께서 화를 내면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생각해 욱하는 감정을 참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행동에 화를 내는 대신 빈정거리는 것이야말로 자존감 상실의 시작입니다.
차라리 욱해서 꾸짖고 화를 내는 게 더 낫습니다. 적어도 아이에게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다고 깨달음이라도 줄 수 있지요.
꾸중을 받아 일시적으로는 아이의 기가 죽을 수 있지만 나중에 자존감을 세워주기는 훨씬 수월합니다. 상황이 호전되면 그때 ‘괜찮다. 기죽지 마라’고 한마디만 해주거나, 화를 낸 사람이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됩니다.
하지만 며칠 혹은 몇 달, 몇 년 동안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지속적으로 무시당해왔다면 상황이 다릅니다. 비꼬는 말투는 아이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자존감을 깍아 내립니다.
아이들은 그 말을 들으며 혼돈을 겪습니다. 내가 정말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 계속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이러한 갈등은 자기성찰을 가져오기보다는 자기부정으로 다가옵니다.
빈정대는 것보다 자존감에 더욱 치명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무시하기보다는 차라리 화를 내는 편이 자녀의 자존감에 도움이 됩니다. 적어도 ‘나’라고 하는 존재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럴 줄 알았다’는 엄마의 비아냥은 단순하지만 영수의 자존감에 상처 주기엔 충분했습니다. 영수는 온몸으로 느껴버린 것입니다. 자기 존재가 보잘것없고 하찮기만 하며 전혀 기대치가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정의 내리고 말았습니다.
오랜 시간 비아냥과 무관심으로 상처 받은 아이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리란 쉽지 않습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빈정거림을 들어왔던 기간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시간과 횟수만큼 기대가 섞인 표현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같이 영수의 자존감이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법의 주문을 걸 듯 아이에게 한 마디 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은 너만큼 좋은 아이를 본 적이 없다.”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김선호, 박우란 저 | 길벗
오늘도 아이 자존감을 살려주려고 애쓰는 모든 학부모에게 자존감에 대해 확실히 알려주면서 동시에 부모 자신의 잊고 있던 자존감까지 되살려주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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