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는, 파랑새 같은 음악인
『1719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 G. 뮤지션 핫펠트 인터뷰
내 생각을 밝힌다는 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큰 힘이라고 생각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얘기해주어야 해. 그들에게도 말해주어야 해.
난 할 수 있어. 난 잘하고 있어. 내 길은 내가 스스로 만들 거야, 라고. Girls, be loud. 더 세상에 소리치고 시끄러워져도 돼. 더 소리 내서 꿈을 현실로 만들어.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뮤지션 핫펠트의 첫 정규앨범 <1719>와 함께 출간된 책 『1719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에서 한 부분을 읽어드렸습니다. 그냥 예은 하지 웬 핫펠트야, 그냥 대중적인 거 하지 무슨 자기 색깔 음악이야, 그냥 JYP에 있지 무슨 아메바야. 뮤지션 핫펠트는 이런 쉬운 말에 작아지기를 거부합니다. 대신 나 자신에게 잘하고 있어, 라고 말을 걸죠. 더 시끄럽게 세상에 말하겠다는 그의 용기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뮤지션 핫펠트를 모셨습니다. 솔직하고, 또 솔직한 책을 앞에 두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저도 무척 기대가 되는데요. 뮤지션 핫펠트와 인간 박예은의 다채로운 이야기, 많이 기대해주세요.
오은: 이번 앨범 참 좋았어요. 감히 예측하건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어떤 상을 수상하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따라 왠지 ‘오스트라다무스’(웃음)가 되고 싶네요.
핫펠트: 믿습니다!(웃음)
오은: 진짜 10년 뒤에 들어도 세련된 앨범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은의 옹기종기> 출연 제안을 드렸을 때 무슨 생각 하셨어요?
핫펠트: 일단 무조건 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는 오은 시인님이 불러주시는데 달려 와야죠.
오은: 출간 전에 제게 원고를 보여주셨어요. 읽었는데 원고가 엄청나게 밀도가 높은 거예요. 힘든 시기를 잘 건너기 위해서 글이라는 도구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생각했어요. 첫 정규앨범이잖아요. 앨범에 수록된 곡들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는데요. 이번 앨범을 준비할 때 핫펠트 님에게 중요했던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핫펠트: 일단 정규앨범에 대한 갈증이 오래 있었어요. 2017년부터 정규앨범을 내려고 고민했었는데요. 당시 생각했던 건 해가 지는 시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그 시간이었어요. 그것을 테마로 잡고 작업을 했는데요. 뭔가 마무리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2018년으로 미뤄지고, 2019년으로 미뤄지다가 이제야 나오게 된 거예요.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감이 딱 오면서 ‘정규를 낼 준비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상한 감정인데요.(웃음) 그래서 곡을 쭉 배치해보니까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은: 그런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시집을 낼 때는 어느 순간 이제 시집을 묶어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올 때가 있거든요. 묶으려고 애쓴다고 되는 건 아니고, 어느 순간 찾아오더라고요. 핫펠트 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던 거군요.
핫펠트: 맞아요.
오은: 요즘은 싱글앨범이나 EP로 많이 발표를 하잖아요. 그런데 정규앨범을 냈어요. 정규앨범은 어떤 세계를, 핫펠트만의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무게나 부담감은 없었나요?
핫펠트: 무게나 부담감은 사실 항상 있었던 것 같은데요. 싱글로 세 번 활동을 했는데, 아무래도 원더걸스 때의 컨셉과 색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핫펠트로서의 모습을 보여드리면 이질감을 많이 느끼셨던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게 정규앨범으로, 긴 호흡으로 핫펠트의 색은 이거라고 보여드렸을 때 더 이해가 빠를 것 같았어요. 정규앨범이 효율적인 시스템은 아니죠. 한 곡씩 듣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정규앨범을 지지하고 함께 해준 회사 분들이 정말 감사한 거죠.
오은: 앨범이 나온 뒤에 많이 울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울음이었을까요?
핫펠트: 이 앨범은 준비하는 내내 울컥하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걸 되게 참았거든요. 울고 나면 무너질 것 같아서 계속 붙잡으면서 작업을 했어요. 그래선지 앨범이 나오니까 ‘드디어 이게 세상에 나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동적이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제가 정규라는 걸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진짜 많았거든요.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오은: 앨범 이름이 <1719>잖아요. 보자마자 중의적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이름의 의미도 설명해주세요.
핫펠트: 2017년부터 작업하던 곡 중 좋아하지만 발표하지 못했던 곡들이 계속 쌓였어요. 2019년 말에
오은: 책에도 등장하지만 활동명 ‘핫펠트’의 의미를 궁금해 하는 분들에게 이유를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 원더걸스 예은이 핫펠트가 되는 과정을 일컬어 “내 길은 내가 스스로 만드는 과정”이었다고도 말씀하셨는데요.
핫펠트: 제가 실속을 잘 챙길 것 같은 이미지인데(웃음) 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어쩌다 heartfelt라는 단어를 봤는데 ‘마음에서 느껴진’이라는 의미가 너무 좋았어요. 거기에 hot이라는 단어를 섞어서 이름을 만들었죠. 사실 이 이름은 작사, 작곡을 하면서 원더걸스 때부터 사용했던 거예요. 솔로로 활동하면서 이 이름으로 활동해야겠다는 확신이 제게는 있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이름이 너무 어렵고, 부르기도 불편하다면서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굳이 핫펠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두고 전쟁이 있었죠. 저를 예은으로 많이 알고 계시니까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웃음) 분명히 예은으로 활동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저는 아닌 거죠. 예은에게 기대하는 음악과는 다른 음악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예은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가는 게 오히려 대중에 대한 배신 같기도 했어요. 원더걸스로서 쌓아온 인지도를 이용해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다른 뮤지션들처럼 처음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오은: 이제 핫펠트 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뮤지션, 마음을 움직이는 가수를 꿈꾸는 사람. 씩씩한 어린이였다. 초등학교 때 머리를 빨간색으로 염색해서 ‘빨간 머리 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0살 때 사람들 앞에서 크리스마스 특송으로 <북치는 소년>을 불렀는데 그때 처음으로 노래 부르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했다. 일찍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소속사 없는 지망생이었다. 사람들은 다들 안 될 거라고, 이러다 인생 망치고 후회한다고 말했지만 매일 노래하고 춤추고, 울다가도 곡을 썼다.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나갔던, 백화점 앞에서 한 JYP의 공개 오디션. 1등에게는 연습생의 기회가 2등에게는 5만원 상품권이 전부였는데, 2등을 했다. 헛헛한 마음으로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내가 볼 땐 당신이 1등이야.” 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을 오래 간직하고 있다. 2007년, 기적처럼 원더걸스로 데뷔한 후, 그는 성공에 꽤나 집착했다. 빌보드, 그래미를 목표로 했고, 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했다. 그러나 늘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됐다. 2017년과 2018년, 2019년까지의 힘들고 어둡던 시기를 보내며 핫펠트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매일 밤 기도하면서도 가끔씩 타로카드를 꺼내는 자신의 모순된 면을 받아들이게 됐다. 온통 얼룩인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반려견 니뇨, 아모와 함께 살고 있다. 야행성에, 엄청난 집순이다. 집에 있는 걸 정말 좋아하고, 집에 있을 때는 주로 미드를 즐겨본다.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7절을 좋아하고, 말랑말랑한 과일과 서핑을 좋아한다. 물욕이 없는 편이지만 갖고 있는 물건은 잘 버리지 못한다. 취하면 영어를 많이 쓰는 주사가 있다.” 가수의 꿈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크리스마스 때 <북치는 소년>을 부르면서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깨닫게 되었다고는 해도 가수를 마음먹은 계기는 따로 있었을 것 같아요.
핫펠트: 그때가 처음으로 겪었던 무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소름이 쫙 돋았던 기억이 나는데요. 물론 당시에 가수라는 직업을 잘 몰랐죠. 그 뒤로 음악을 많이 듣게 되면서 가수의 꿈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SES나 핑클, 베이비복스 무대를 보면서 저렇게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동시에 로린 힐이나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도 듣고 자우림, DJ DOC도 듣는 식이었어요. 당시 제게는 음악이 탈출구였고요. 그러다 보니까 그 음악을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 것 같아요. 노래 부르고, 춤 추는 것도 좋아했으니까요.
오은: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볼게요. 먼저 직접 『1719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를 소개해주세요.
핫펠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겪었던 감정과 생각을 엮은 음악과 글의 묶음집입니다. 삽화도 함께 들어가 있고요. 어려운 시간, 힘든 시간을 견뎌내시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오은: ‘잠겨 있던 시간’이라고 말한 것은 어쩌면 열기 싫었던 시기를 말하기도 하겠어요. 그렇지만 그 시기를 직면하지 않고서는 다음 시기로 넘어갈 수 없을 테니까 어떻게든 그 힘든 시간을 글로 써서 견뎌낸 것이군요.
핫펠트: 맞아요. 책에 ‘슬픔이 나를 잠식한다’는 구절이 있는데요. 그 시기에 제가 물 속에 잠겨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여기서 어떻게 빠져 나가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요. 물속에 잠겨 있던 시간들, 그리고 제가 잠가 놓았던 시간들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오은: 글과 음악이 대단한 시너지를 일으켜요. 앨범과 책을 함께 묶어 내겠다는 구상을 처음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핫펠트: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었어요. 음악이 한 편의 영화처럼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음악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 글이 붙게 된 거예요. 평소 사장님이 제게 “너는 책을 써야 해”라는 말씀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또 상담을 받을 때도 제가 음악이 잘 안 된다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에 다 담을 수 없다고 하니까 상담 선생님께서 글을 써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씨앗이 계속 심어졌던 것 같아요.
오은: 책의 첫 부분에 안내문이 있어요. ‘모든 이야기를 우리만의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약속’하라는 내용이 있잖아요. 그만큼 내밀한 이야기가 솔직하게 담겨 있죠.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고, 환호를 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고백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을 이야기를 공개하는 게 걱정이 되기도 했을 것 같거든요.
핫펠트: 성격상 돌려 말하기를 잘 못해요. 워낙 직설적이기도 하고요. 글도 너무 솔직하니까 처음 한두 챕터를 써서 주변에 보여줬을 때는 다들 너무 걱정을 했어요. 진짜 이걸 책으로 내도 괜찮겠니, 좀 더 돌려서 접근하면 어때, 라면서요. 근데 그건 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글을 다 쓴 후에도 글의 배치로 얘기가 많았죠. 첫 챕터가 워낙 강하니까 그 글을 뒤에 두면 어떻겠냐고요. 고민을 했는데 역시 안 되겠더라고요. 시간의 흐름대로, 여기서부터 사건이 시작되어서 겪게 된 감정의 흔들림인데 그걸 뒤에 배치를 하는 게 별로였어요. 그래서 안내문을 넣은 거고요. 안내문이 가장 마지막에 쓴 글이에요.
오은: ‘3년’이라는 글에서 상담 받았을 때의 이야기를 길게 적었는데요. 보면서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침잠, 내적 고민 같은 것들이 뮤지션 핫펠트를 다음 단계로 도약하게 만든 중요한 시간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 시간은 핫펠트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핫펠트: 많이 생각했던 게 이 시간이 끝이 안 보이는 긴 터널 같다는 거였어요. 계속 가고는 있는데 터널이 줄어든다는 느낌은 안 드는 거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안에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 멀리서 보이는 빛이라고 해야 할지, 반짝이는 돌이랄지, 그런 것들을 하나씩 보면서 걸어갔던 시간 같은데요. 굉장히 많이 힘든 시간이었는데 이 시간이 제게 또 자양분이 되기도 했어요. 이 시간에 겪은 것들이 제가 핫펠트로 음악을 하는 데 자양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오은: 에필로그에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나아졌고, 강해졌어’라고 했어요. 이 말이 참 좋더라고요. 글을 쓰면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어떤 과거를 거쳐서 지금 여기에 와 있게 됐는지도 보겠지만 그것을 표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강해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핫펠트: 글을 쓸 때는 감정 때문에 손이 떨리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퇴고를 하면서 좀 초연해지더라고요. 진짜 많이 강해졌구나, 생각을 했죠. 사실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하긴 했어요. 혹시 이런 얘기를 누군가 단편적으로 이해하거나 확대 해석을 하거나 제게 선입견을 갖게 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저는 오히려 이것을 속 시원하게 얘기해서 후련해진 느낌이 있었고요. 곪은 상처를 잘라내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오은: 2020년의 핫펠트가 바라보는 지난 3년과 앞으로의 3년도 들려주세요.
핫펠트: 지난 3년은 정말 롤러코스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제가 50살, 60살이 돼서도 꺼내서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시간일 것 같고요. 이 시간을 지난 지금, 좀 더 완전한 30대가 된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앞으로의 3년은 조금 더 멋있는 여성이 되고 싶고요.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은: 핫펠트님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한 후 여러 매체에서 거리낌 없이 그 사실을 밝히기도 했잖아요. 이런 선언이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을 텐데 이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없으실 것 같긴 해요.
핫펠트: 네, 저도 뒤를 돌아보긴 하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도 제가 페미니스트로 선언한 것에 있어 이걸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요. 여성으로서 여성의 인권을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로서, 연예인으로서 이로 인해 생기는 부담감이나 시선이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렇지만 그 시선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어요.
오은: 아티스트, 연예인, 작가에 앞서 사람 박예은이 있는 거니까요. 나를 속일 수는 없다는 말로 들리네요. 그래서 더 멋있는 것 같고요. 이런 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 | 신연선 글 | 오은(시인) 사진 | 이지원 PD
핫펠트 | 우주북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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