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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블비' 난 이제 더 이상 ‘유아’가 아니에요

<트랜스포머>의 폭주를 바로잡은 영리한 리부트다

'범블비' 난 이제 더 이상 ‘유아’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언제부터인가’ 로봇물에 열광하는 남성의 욕망을 두고 ‘유아적’이라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그 언제부터인가는 언제부터인가? 내 기억이 맞는다면 <트래스포머>(2007) 때부터다. 다 큰 어른이 아이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로봇에 흥분하다니! 로봇에 더해 남성 욕망의 3종 세트로 붙어다니는 스포츠카와 잘 빠진 몸매의 여성까지! 이후 5편까지 이어진<트랜스포머> 시리즈가 편이 더할수록 영화적 평가는 물론 흥행까지 좋지 않았던 건 남성 욕망 3종 세트의 효험이 비례하여 떨어진다는 일종의 빨간불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을 담보하는 프랜차이즈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이 유아적인 욕망을 어른의 태도로 키운다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에서 출발한 작품이 <범블비>다.

 

<범블비>의 ‘인간’ 주인공은 찰리(헤일리 스테인펠드)다. ‘지랄발광 17세’에서 1년 지난 나이의 찰리는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다. 다만, 질풍처럼 달리고 싶어도 그럴만한 차가 없다. 이리 조르고 저리 투정해도 엄마는 간호사로 먹고사는 처지에 그럴만한 돈이 어디 있느냐며 철벽 방어다. 그러면서 재혼한 새아빠와 진하게 키스하는 엄마의 모습에 찰리의 마음은 복잡하다.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껴서도, 새아빠가 싫어서도 아니다. 아빠의 죽음에 찰리가 일정 정도의 죄책감을 느껴서다. 찰리 때문에 죽은 건 아니다. 찰리의 다이빙 훈련을 지켜보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탓이다. 영화는 그 정황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찰리의 부재한 아빠의 빈자리를 ‘로봇’ 주인공 범블비로 채워 유추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린다.

 

그에 관한 너무 눈에 보이는 단서는 범블비와 찰리를 위협하던 디셉티콘을 물리친 후의 에필로그에서다. 아빠를 잊지 못하는 찰리는 수영장에서 둘이 찍은 사진을 집 차고에 보관 중이다. 그 옆에 비슷한 구도로 구형 폭스바겐으로 변한 범블비와 찰리가 찍은 사진이 놓여있다. 아빠와 찰리의 관계가 범블비와 찰리에게로 고스란히 이식된 듯한 설정이다. 안 그래도 범블비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디셉티콘의 셰터와 드롭킥에 맞서던 중 부두 설비에 고인 물에 정신을 잃고 가라앉는다. 그 순간 찰리는 아빠의 죽음이 트라우마가 되어 이후 망설이던 다이빙으로 물속에 뛰어들어 범블비가 시스템을 재가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는 똑같은 상황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찰리의 의지.

 

처음부터 범블비가 찰리의 대체 아빠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디셉티콘과의 전쟁 중 패배에 몰려 지구로 숨어든 범블비는 거의 무지한 상태로 찰리를 만나 지구에 관해, 무엇보다 관계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고 배워가기 시작한다. 그럼으로써 대체 아빠의 지위를 얻게 되는 범블비의 위상은 흔히 이 장르에서의 주인공 역할을 도맡아 하던 마초적인 백인 남성의 성정과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형성된다. 인간 친화적인 범블비를 알아보지 못해 곤란을 겪는 정부 비밀 기관 섹터-7의 최고 장교 번스(존 시나) 요원이나 셰터와 드롭킥의 위협에 맞서 아내를 보호하기는커녕 애정하는 스포츠카를 지키기에 급급해하다 목숨을 잃는 한량 카우보이는 전형적인 마초 백인 남성이다.

'범블비' 난 이제 더 이상 ‘유아’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범블비>의 배경은 1987년. 시대의 상징적인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는 로널드 레이건 전(前) 대통령 당시는 우락부락한 근육질로 대표되는 강한 백인 남성의 시대였다. 이의 분위기 하에서 <람보> <코만도> 부류의 영화가 인기를 끌었고 시간이 많이 흘러 형태를 달리하여 2000년대에 등장한 것이 <트랜스포머> 시리즈였다. 이들 작품에서 여성은 남성의 보호 대상이거나 성적 욕망을 충족하는 판타지였고 건장한 백인 남성에 끼지 못하는 소수자 들은 주인공의 임무 완수에 걸림돌로 기능하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트랜스포머>의 성공은 이런 메시지가 여전히 먹힌다는 증거였다. 이어진 속편들의 눈에 띄는 흥행의 하향 지표는 이런 메시지가 더는 유효하지 않는다는 징후였다.

 

지구로 온 범블비가 디셉티콘에 발각되어 가장 먼저 잃는 기능은 목소리다. 이는 굵고 날카로운 선의 형태가 아니라 둥글둥글한 외관과 더불어 범블비의 ‘세대’ 특징을 드러내는 꽤 상징적인 설정이다. 그동안 이 장르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소수자들이 범블비를 통해 목소리를 높인다는 맥락의 이야기는 <범블비>가 <트랜스포머>의 스핀오프이면서 마초 남성의 욕망과는 거리를 둔 독립적인 작품임을 보증하는 태그다. 18세 소녀를 주인공을 내세운 것도 그렇고 찰리와 멜로라인을 형성하는 소년이 흑인인 점도, 그리고 아빠의 죽음 이후 엄마가 재혼한 새아빠를 악의 세력 중 하나로 규정하거나 놀림감 삼지 않고 찰리와 연대하는 어른으로 묘사한 것도 다양성이 완전히 배제된 <트랜스포머> 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다.

 

목소리를 찾는다는 건 자격이나 지위를 얻는다는 걸 의미한다.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범블비는 찰리의 집에 숨어 모든 걸 하나하나 배워가야 하는 유아의 수준이었다. (인기척에 놀라 구석에 쪼그려 앉는 모습은 꼭 강아지를 연상시킨다!) 찰리가 즐겨듣는 음악의 테이프를 재생하면서 이를 통해 ‘다른’ 음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범블비는 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등한 관계라는 표현보다는 서로 돕고 돕는 연대의 사이로 발전한다. 찰리는 마치 죽은 아빠를 되살리듯 범블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마다 깨우는 역할을 한다. 범블비는 마치 아빠의 품 안에서 자식을 돌보듯 찰리를 차로 변신한 자신에 태워(?)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 <범블비>의 상호보완적인 관계의 묘사를 두고 누가 유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방적이고 위계적인 <트랜스포머>의 욕망은 이제 안녕~ 이제는 <범블비>의 시대다. <범블비>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트랜스포머>의 폭주를 바로잡은 영리한 리부트다.

 

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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