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우유’ 굴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굴 바다가 보낸 겨울 향기를 먹다
‘굴 요리의 매력은 향기에 있다’
나의 굴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장김치에는 반드시 굴이 들어갔다. 잘 익은 김치를 먹다가 발견한 굴은 멸치 반찬 먹다가 발견한 꼴뚜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횡재한 기분이었다. 당시의 미각과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을 터, 그렇다면 진짜 가장 맛있는 굴은 어떻게 먹는 것일까.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 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굴은 맛도 맛이지만 영양에서도 으뜸이다. 굴의 물렁함과 향이 싫어서 잘 먹지 않는 사람도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는 말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굴은 칼슘과 철분이 풍부하고, 저칼로리 식품으로 비만과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나의 굴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장김치에는 반드시 굴이 들어갔다. 잘 익은 김치를 먹다가 발견한 굴은 멸치 반찬 먹다가 발견한 꼴뚜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횡재한 기분이었다. 당시의 미각과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을 터, 그렇다면 진짜 가장 맛있는 굴은 어떻게 먹는 것일까.
일본만화 『맛의 달인』에 ‘굴 요리의 매력은 향기에 있다’고 나온다. 맞다! 향기 없는 굴은 상상할 수도 없다. 향을 즐기기 위해서는 간수를 이용해 재빨리 씻어내야 한다. 씻어낸 굴은 바로 먹어야 그 맛과 향이 변하지 않는다.
생굴이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느낄 수 있어 좋긴 하지만 금세 물리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달리 먹는 방법 중에 하나가 굴무침이다. 이 요리는 어렸을 때 아버지 밥상에 자주 올랐다. 그때 접한 입맛이 지금도 남아 가끔 직접 만들어 먹는다. 조리법도 간단하다. 주재료는 굴과 무, 당근이다. 무와 당근은 얇게 썰어 가로 세로 2㎝ 크기로 사각 썰기를 해서 소금에 잠시 절여 물기를 뺀다. 무에 많이 들어있는 비타민C는 속살보다 껍질에 배나 많으니 몸을 생각한다면 껍질째 먹는 게 좋다.
흐르는 물에 재빨리 씻은 굴에 무와 당근을 섞는다. 조개젓 건지를 다진 것과 고춧가루, 깨소금, 다진 파를 넣어서 조물조물 무쳐내면 굴무침 완성이다. 바로 먹기보다 냉장고에 20~30분 넣었다가 먹으면 양념과 재료가 따로 놀지 않는다. 향이 살아있는 굴을 무, 당근과 함께 먹으면 굴무침의 진가가 발휘된다. 씹히는 맛이 없는 굴의 단점을 아삭아삭 씹히는 채소가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굴만 먹었을 때 물리게 되는 그 느낌도 없다. 굴무침이나 굴국에는 무가 들어가는데 이는 산성인 굴과 알칼리성인 무가 음식궁합을 이루기 때문이다.
색다른 굴요리를 원한다면 시원한 ‘굴물회’를 빼놓을 수 없다. 물회로 좋은 굴은 서해안에서 채취한 ‘잔굴’이다. 자연산 굴이라고도 하지만 양식도 자연 상태에서 자라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자연산은 좋고 양식은 나쁘다’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차라리 신선한 굴과 신선하지 않은 굴로 구분하는 게 더 현명하다. 신선한 굴은 형태가 그대로 있고 윤기가 나며 탱글탱글한 탄력을 지녔다. 굴은 요리에 맞춰서 골라야 한다. 물회용으로는 확실히 잔굴이 좋다. 수저로 떴을 때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굴물회를 만들어 보자. 동치미 국물에 약간의 식초를 떨어뜨린다. 무, 배, 오이는 채 썬다. 미나리를 넣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굴 향이 죽을 것 같아 나는 넣지 않는다. 무도 하단의 흰 부분을 사용한다. 배가 많이 들어가면 단맛이 많아지니 무와 오이채에 비해 반 정도만 넣는다. 채는 곱게 썰수록 재료들이 독립운동을 하지 않는다. ‘뭉치면 산다’가 아닌 ‘뭉치면 맛이 난다’라고나 할까. 동치미에 굴과 채를 넣고 고춧가루와 깨소금을 뿌려주면 달콤새콤 시원한 굴물회가 완성된다.
12월이 되면 아무래도 음주량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식상한 해장국 대신 별난 해장국 ‘굴두부 조치’가 있다. ‘조치’는 찌개를 말하는 궁중 용어이다. 간편한 조리법이기에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 끓는 물에 깍둑 썰기한 두부를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두부가 떠오르면 굴과 실파, 홍고추를 넣고 한 번만 끓여낸다. 불을 끄고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완성. 시원한 국물 맛에 반해서 여느 해장국은 생각나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
왁자한 분위기보다는 차분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나는 조촐한 미식쇼를 열었다. 아무래도 이날 메뉴가 굴샤브샤브였던 게 원인이었던 듯하다. 한 테이블에서 김이 나는 냄비를 가운데 두고 굴샤브샤브를 먹는 모습은 겨울의 낭만이 아닐 수 없다.
환상의 조합인 껍데기생굴과 레몬 |
먼저 생굴을 냈다. 껍데기생굴과 레몬은 환상의 조합이다. 레몬즙을 굴에 짜서 국물까지 후루룩 들이켜면 상큼함과 싱싱함에 겨울이 즐겁다. 레몬즙은 맛도 맛이지만 철분 흡수에 도움을 주는 데다 살균작용까지 하니 이보다 더 환상적인 궁합은 없다.
굴샤브샤브 재료들. 겨울철에는 굴과 키조개, 새조개 등으로 샤브샤브를 해먹으면 겨울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 |
굴샤브샤브는 굴과 키조개, 각종 채소를 데쳐서 상큼한 폰즈소스에 찍어 먹는다. 뜨거운 김을 불면서 국물을 마시면 추위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샤브샤브만큼 겨울의 정서에 안성맞춤인 요리가 또 있을까 싶다.
대구이리구이 |
4㎏에 달하는 대구 한 마리를 구입한 이유는 순전히 ‘이리’ 때문이다. 이리는 라면처럼 꾸불꾸불하게 생긴 생선의 정소를 말한다. 흔히 탕에 넣어버리지만 미식쇼에서는 일품요리로 탄생시켰다. 이리를 소금구이 한 다음 송로버섯 추출물이 들어간 올리브유를 살짝 끼얹어 냈다. 참석자들이 감탄 또 감탄한다. 이리구이를 넣고 김초밥까지 만들었다.
키조개초밥 |
키조개관자로는 초밥을 만들었다. 연하면서 오돌돌하게 씹히는 식감과 단맛이 키조개의 자랑이다. 김칫국물이 들어간 굴구이까지 먹고 나니 어느새 유리창이 불투명해졌다. 밖은 쌀쌀한 겨울 날씨지만 실내는 계절요리를 즐기는 행복한 사람들의 온기로 더없이 따뜻했다.
굴구이 |
글 | 김용철
김용철 저, 사진 | 엠비씨씨앤아이
예약 대기자 1000여 명, 맛객 미식쇼! 이 생경한 이름의 쇼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지 궁금증이 일 것이다. '맛객 미식쇼'는 한 달에 두 세 번, 맛객 김용철이 제철 자연에서 찾은 재료들로 소소하지만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다. 『맛객 미식쇼』에는 그의 요리 철학과 미식 담론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맛, 인생에서 찾은 맛을 나누며 행복을 느낀다고 믿는다. 그래서 맛객의 요리를 접한 사람들은, 맛은 몰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