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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젊은 거장,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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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젊은 거장, 칼 오베 크나

몇 년 전 노르웨이에선 Min Kamp, 즉 『나의 투쟁』이라는 꽤 두꺼운 신간이 인기를 끌었다. 그때, 나는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밀린 일거리가 많아 신간을 읽을 여유도 없었거니와, 신문 지상에서 베스트셀러라며 떠들어대는 책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대부분 반짝 인기몰이를 한 후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게 자취를 감추어버리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며 느긋한 마음으로 두고 보았다. 더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자면, 신간이 나오면 노르웨이의 출판사에선 이 책, 저 책 다 읽어보라며 내게 보내주는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 책을 읽어보고 한국에 소개하고 번역하라는 것이기에 조금 귀찮았던 이유도 없지 않았다. 언제 저 두꺼운 책을 읽고 검토서를 작성할 것이며, 어느 세월에 저 수천 장의 책을 번역한단 말인가. 게다가 한국의 출판업계는 불황과 공황만을 왔다 갔다 한다는데 이렇게 두꺼운 책의 번역 저작권을 선뜻 구입할 출판사가 나서줄지도 의문이었다. 우선은 책 한 권을 읽는 시간이 아까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은 그렇게 내 일상에서 비켜갔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그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작가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에 그 책은 여성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남편-물론, 내 남편은 남성이다-이 그 책에 코를 파묻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조금 기이한 느낌도 들었다. 솔직히 남편의 성향을 살짝 의심해 보기도 했다. 남편은 제1권을 읽고, 내 서재에 들어와 제2권이 어디 있느냐고 묻더니 결국 제3권을 읽기 시작할 때는 아예 제4~6권을 한꺼번에 미리 들고 가 침대 옆 작은 탁자 옆에 쌓아두었다. 서재에 들어와 책을 찾을 때마다 나의 의뭉스런 눈길을 받아내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나의 투쟁』은 스웨덴어로, 독일어로, 영어로, 프랑스어로, 네덜란드어로 착착 번역?출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은 언제 들어갈 수 있겠느냐는 이곳 출판업계의 은근한 압박에도 나는 초지일관 “글쎄요, 그 책이 한국 독자들의 정서와 잘 맞을까요?”라는 되물음으로 일하기를 거부했다. 물론, 나는 그때 책을 읽지도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는 어느 번역 세미나에서 만난 네덜란드어 번역가가 『나의 투쟁』을 번역하던 중 느낀 고충을 토로하는 걸 듣고선 ‘난 절대 저 책, 번역 안 한다!’라는 결심을 되새겼던 적도 있었다.

노르웨이의 젊은 거장, 칼 오베 크나

그런데, 읽고 말았다. 어떤 계기도 없었다. 왜 자기가 읽은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지 않는 거지 하고 투덜거리며 남편의 손이 갔던 책을 책장으로 되가져가다가 한 번 책장을 넘겨본 것이 전부였다. 숨이 콱 막히는 듯, 무언가 묵직하게 어깨를 짓눌러오는 듯한 한 줄, “심장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힘이 다할 때까지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에 정신을 빼앗겨 2층으로 오르던 계단에 주저앉아 몇 장을 더 넘겼다. 그 뒤엔 멈출 수가 없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서도 책을 조리대 위에 펼쳐놓고 곁눈질을 해가며 읽었다. 그래서 닭고기를 썰다가 손끝의 살점을 함께 뭉텅 썰기도 했고, 밥을 태우기도 했으며, 식사 준비를 다 해놓고서도 상 차리는 것을 잊어버린 채 책을 읽느라 온 식구가 한참이나 지난 후에 다 식은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내가 왜 이 책에 그토록 빠져버렸는지, 나는 지금도 그게 궁금하다. 아이들이 어떤 종류의 옷을 어떤 순서로 입는지, 빵 위에는 뭘 얹어 먹고, 할머니의 어질러진 방에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 뭉치의 길이와 색깔이 어떠한지에 대해 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그걸 부엌에서, 심지어는 샤워할 때도 물에 젖지 않게 책을 들고 읽을 수는 없을까 궁리했던 나. 솔직히 나는 내게 타인의 은밀한 면을 엿보고 싶어하는 관음증이 있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해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한 걸음 떨어져서 타인의 삶을 몰래 들여다보는 관음증이 아니라, 한 사람의 기억과 사고의 진행과정을 들여다보며 경험하는 밀도 높은 감정이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매력은 책장을 덮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책 속의 장면이 너무나 선명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뒤돌아보니 그의 기억은 내 기억이 되어버렸고, 나는 어느새 크나우스고르가 되어 그와 함께 짜증내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길사에서 『나의 투쟁』 번역을 의뢰해왔다. 나는 두말없이 번역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두께와 첫 문장의 무거움이 주는 장벽이 있는데도 흔쾌히 번역하고 싶다고, 내 이름을 걸고 번역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 책이 풍기는 기묘한 향기 때문이었다.

 

번역가로서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하게 책을 읽을 때는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의 책이라 해도 그저 한 권의 책으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로서 한 권의 책을 읽고 무슨 이유에선지도 모른 채 그 책에 빠져들며,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히 이 책에 무언가 내가 짚어낼 수 없는 매력이 있다는 뜻일 게다.

노르웨이의 젊은 거장, 칼 오베 크나

나는 문학 이론가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다. 이런저런 어렵기만 한 시대적 사조나 장르, 문학적 가치에 대해선 어디 가서 입을 떼지도 못할 정도로 문외한이다. 나는 번역가 이전에 좋은 책, 오래 남는 책을 읽고 싶은 독자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크나우스고르가 노르웨이의 국민 시인 올라브 헤우게를 방문했을 때, 시인의 책장에 꽂혀있던 세기의 문학가들이 저술한 책을 보며 그 내용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의 이름을 안다는 것,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책을 훑어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고양된 지성의 세계를 경험했던 적이 있다고 고백한 부분을 읽고선 작가가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작가가 살아온 환경과 내가 살아온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말도 다르고 생활 터전도 다르며 사고방식도 같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작가의 세세하고 치밀하며 밀도 있는 기억의 한가운데 서서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건 바로 나야!”라고 소리 없는 외침을 내뱉으며 그의 기억과 더불어,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둔 나만의 기억을 꺼내어보는 이 이상한, 너무도 이상한 책 읽기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읽어보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이 책을 번역했기 때문도 아니고, 내가 이 기묘한 경험을 했으니 당신도 한 번 따라 해보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크나우스고르의 기억과 글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어느 정도의 강도로 우리에게 부딪쳐올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그의 글과 부딪쳤을 때 우리가 만들어내는 여운은 또 어떤 색과 어떤 향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글 | 손화수 

 

* 이 기사는 <월간 채널예스> 3월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젊은 거장, 칼 오베 크나
나의 투쟁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저/손화수 역 | 한길사

 

자신의 삶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상세히 기억해내며 ‘아버지의 죽음’과 만나는 과정을 경이로울 정도로 집요하게 풀어낸 화제작. 진력날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지독하게 중독적인 독서체험을 선사한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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