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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보다 화려한 밤의 여행

『여행자의 밤』 저자 장은정 인터뷰

낮보다 화려한 밤의 여행
여행의 밤은 나에게 여행이라서 여행이니까 여행이므로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한숨을 내뱉어 마음을 환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삶을 맑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므로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이토록 아름다운 시간이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언젠가는 이 여행이 삶을 반짝이게 해줄 거라고. 아니, 지금도 여행 덕분에 내 삶이 반짝이게 되었다고 늦은 밤, 고요한 시간은 내게 속삭였다. 별처럼 반짝이고 밤하늘처럼 깊었던 그 말들을 믿는다. 그리고… 이 밤이 지나면 일상의 온도가 조금은 달라질 것을 믿는다._ 『여행자의 밤』 중

스물여섯, 평범한 직장을 그만 두고 길 위에 선 이가 있다. 그냥 사람이 좋아서, 바람과 햇살을 맞는 게 좋아서 새로운 삶을 선택한 길 위의 여행자 장은정 작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려 80여 개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녀가 마주한 건 각양각색의 사람들 그리고 그곳의 풍경뿐만이 아니었다. 하나의 하늘, 하나의 달이 내뿜는 희미한 빛의 수십 가지 이야기. 낯선 곳에서 만난 무수히 많은 ‘밤’은 여행자로서뿐만 아니라 작가로서의 감성 역시 더욱 충만하게 해주었다.

 

낮보다 화려한 남국의 야시장, 정적이 스며든 유럽의 골목, 빛이 춤추는 아이슬란드의 오로라까지 한낮의 빛이 사라지면 시작되는 마법 같은 밤의 여행, 그 길 위에 선 장은정 작가의 이야기, 『여행자의 밤』 이다.

 

벌써 네 번째 책입니다. 이전에 나왔던 책과는 조금 성격이 다른데요, 새로운 글을 쓰신 계기가 있을까요?

 

여행으로 때론 출장으로, 많은 곳을 다니면서 겪었던 일과 느낌을 꼭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그건 아마도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수많은 여행 작가의 꿈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여행할 기회가 많지만 오롯이 저의 생각을 적을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거든요. 이번 책을 통해서 그 동안의 여행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어요.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한 여행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봅니다.

 

‘밤’이라는 키워드만으로 여행지에서 마주한 풍경과 감상을 표현하는 일이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 책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여행지에서 맞는 밤은 낮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잖아요. 야경을 보거나 야시장에 가는 등 밤에만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 다니기도 하고, 밤이 되면 깊어지는 생각에 잠 못 이루기도 하고,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을 잊기도 하죠. 여행자의 밤은 그래서 좀 더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낮의 여행과는 다른, 또 하나의 여행이 시작되는 시간이거든요.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깊게 생각하고 휴식하면서 나에게 집중하고, 함께 떠난 여행에서는 함께 보고 느끼고 대화하면서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는 시간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더 깊고 짙게 무르익는 시간이 바로 ‘여행자의 밤’ 아닐까요. 제 책을 읽어주시는 독자들도 나만의 소소하고 특별했던 여행자의 밤을 추억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어요.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혼자 여행하는 사람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남편이나 부모님,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쓰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여행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할지라도 곁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돌아가면 반겨줄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면서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거든요. 함께하는 여행 역시 그렇습니다. 여행을 통해서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공유하며 배려하면서 성숙한 관계가 되거나 완전히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거든요. 저 역시 관계가 깊어진 적도, 완전히 끝나버린 적도 있어요. 마음 아픈 일을 겪지 않기 위해 함께하는 여행을 위해 가져야 할 마음과 생각을 말하고 싶었고, 여행으로 단단하고 깊어지는 관계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어둠이 내린 밤’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그 밤에 작가님이 느꼈을 슬픔과 절망, 그리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글이었는데요,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이 책 안에서 애착이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저 역시 ‘마음에 어둠이 내린 밤’에 가장 애착이 갑니다. 쓰면서도 많이 울었고, 읽으면서도 많이 울었거든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곡성’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팠는데, 오히려 곡성을 여행하면서 그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따라 시골길을 걷고, 마당에서 땅따먹기를 하고, 할머니가 계시던 방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싶어요. 그 여행에서 제 마음에 작은 위로가 찾아온다면 좋겠습니다. 때론 여행이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니까요.

 

또 하나 애착이 가는 에피소드는 이스탄불에서 맞은 축제의 밤을 적은 ‘잠들지 않는 밤’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여행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준 여행이 바로 그 여행이었거든요. 그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인정받을까, 어떻게 하면 승진하고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 여행을 통해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알게 되었어요. 때론 여행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는데, 제게는 그때가 그랬습니다.

낮보다 화려한 밤의 여행

2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국경을 지난다거나 패러글라이딩을 해본다거나 캠핑을 하는 것처럼 활동적인 일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추구하는 여행 스타일은 어떤 편인가요?

 

사실 저는 레포츠를 즐기거나 아찔한 모험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취재를 위한 여행에서는 시간표를 분단위로 쪼개 움직이지만, 오롯이 여행을 위한 여행에서는 한없이 느리고 게으른 편이거든요.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마음에 드는 가게를 구경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에 가는 등 느리게 오래 걷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끔씩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두 발로 국경을 넘고 싶어서 20시간 넘게 버스를 탔던 일이나 하늘을 날고 싶어서 패러글라이딩에 도전 한다거나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싶어서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친다거나 했던 여행들도 그렇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을 여행 중에는 종종 만나거든요. 그 순간이 찾아오면 저는 모험을 즐기는 활동적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 같아요. 그때마다 저도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합니다. 여행은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믿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여행의 완성은 잘 돌아오는 것임을, 여행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상을 잘 만나는 것임을 새삼 느낀다.”라고 하신 이야기가 많이 와 닿았어요. 여행과 일상 사이의 무게 중심을 어떻게 하면 잘 잡을 수 있을까요?

 

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여행 작가가 되었고, 그 삶을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집을 제일 좋아하는 ‘집순이’예요.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날이 제일 좋습니다. 여행을 떠나면 가장 그리운 곳 역시 집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이 있기 때문에 편하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일상 역시 그렇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반겨주는 일상이 있기에 여행이 가능한 것 아닐까 생각해요. 일상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은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비로소 일상이라는 존재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를 느낍니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여행이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겠어요. 여행 중에는 일상이 있음에 감사하고, 일상에서는 언젠가의 여행을 상상하며 좀 더 힘을 내는 것. 그것이 제가 여행과 일상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작가라는 직업이 언뜻 보기에는 부럽기도 한데요, 어떤 직업이 그렇듯 장단점이 다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여행작가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은 어떤 건가요?

 

다양한 곳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누구보다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도, 취재를 위한 여행을 떠나기도, 초청을 받아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등 여행 기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다양한 경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쌓아둘 수 있다는 것 역시 장점이 됩니다. 글쓰기 이외에도 강연이나 라디오를 비롯해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 여행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겉보기에 굉장히 멋있고 낭만적인 직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아요. 정해진 시간에 많은 양의 취재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분 단위로 쪼개진 일정표를 들고 메뚜기처럼 뛰어다니기도 하고, 더 멋진 풍경을 담기 위해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험한 길을 오르는 날도 있습니다. 날카로운 바람에 피부가 얼어붙거나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 끝이 굳기도 하고요. 온 세상이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운 날에는 온 몸이 땀에 절어 축 늘어져버려서 다 접고 집에 가고 싶은 날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여행 작가들은 여행을 사랑합니다. 힘들고 고된 일정이었다 할지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여행이 그리워지거든요. 험한 길을 올라 마주한 엄청난 풍경이나 길 위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마신 차가운 맥주 한 잔의 위로. 힘든 시간 속에서 반짝반짝 피어오르던 그런 순간의 행복 덕분에 또다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여행 작가라는 일은 특히나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여행한 곳 중 작가님이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밤의 여행지를 하나만 추천해주신다면요?

 

하나만 고르기가 너무 어렵네요. 그렇지만 정말 단 한 곳만 골라야 한다면 체코의 프라하로 할게요. 프라하의 야경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이 순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싶다는 생각이요. 나의 모든 사람들과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반짝반짝 빛나는 프라하를 함께 느끼고 싶었어요.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잖아요. 프라하의 야경을 처음 봤을 때가 그랬습니다. 이유 없이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리움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나 아름다운 프라하의 야경을 마주하고 나니,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한 마음이 쏟아졌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법이니까요.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낮보다 화려한 밤의 여행
여행자의 밤

장은정 저 | 북라이프

 

여행은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 위로받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 하는 건지도 모른다. 여행이라는 짧고 강렬한 밤을 끝냈을 때 조금은 달라진 일상의 온도를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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