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군함도는 있고, 류승완은 없다
역사적 사실과 공간을 기반으로 한 픽션
그렇게 해서까지 군함도 배경의 영화를 만든 이유가 뭘까?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
'군함도'는 요 몇 년간 한국인들에게 가장 뜨거운 역사의 장소다. 2015년 '무한도전'이 '배달의 무도’ 편에서 이곳을 다뤄 대중의 관심을 이끌었고 한수산 작가가 긴 자료조사와 연재 기간을 거쳐 무려 30년 만인 2016년 소설 『군함도』를 발표했다. 그리고 2017년 7월 26일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가 개봉했다.
군함도는 나가사키에서 약 18Km 떨어진 섬이다. 원래 지명은 하시마이지만, 섬의 형태가 군함과 닮았다고 하여 군함도로 불린다. 징용으로 끌려 온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곳 해저 탄광에서 모진 탄압을 겪은 까닭에 ‘지옥의 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는 1945년을 배경으로 군함도에 영문도 모른 채 잡혀 들어왔다가 탈출을 감행하는 조선인들을 다룬다.
이강옥(황정민)은 경성의 반도호텔에서 활동하는 잘 나가는 악단장이었다. 일본인 고위 간부의 아내와 놀아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제 징용되어 하나뿐인 딸 소희(김수안)와 함께 군함도에 들어온다. 그들 외에도 400여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가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꼬임에 빠져 해저 1,000m 깊이의 막장 속에서 가스 폭발의 위험을 감수하며 노역한다.
개중에는 종로에서 주먹으로 알아주던 칠성(소지섭)과 여자라는 이유로 일본인들에게 능욕을 당하는 말년(이정현)도 섞여 있다. 사연도 가지가지, 악랄한 일본 관리를 대하는 방식도 각양각색이지만, 고약한 건 일본에 붙어 조선인을 악랄하게 괴롭히는 동포의 존재다. 뭉쳐도 살아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선인들은 독립운동가 윤학철(이경영)을 중심으로 새날의 도래를 모색한다. 마침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무영(송중기)이 윤학철을 구출하기 위해 군함도에 잠입한다.
그래서 이들은 탈출에 성공하는가? 성공 여부를 떠나 실제 역사에서 400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군함도에서 집단 탈출한 기록은 없다. '군함도'는 역사적 사실과 공간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다. 그렇게 해서까지 군함도 배경의 영화를 만든 이유가 뭘까? 류승완 감독은 전작 '베테랑'(2015)을 만들기 전 군함도의 항공 사진을 본 후 엄청난 스토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프로 프로덕션이 한창이던 2015년 7월 5일 군함도가 세계 유산에 등재되는, '베테랑'(2014)의 유아인 대사를 빌리자면, “어이가 없네”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등재 과정에서 유네스코는 일본 정부에 군함도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철강, 조선 그리고 탄광산업’이라는 주제로 하시마 탄광을 비롯해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23곳을 세계 유산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1940년대 조선인들을 노예로 취급했던 사실을 인정하는 그 어떠한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또한, 하시마를 소유했던 미쓰비시사(社)는 미국인 포로와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사과하며 역사적 책임을 인정한다고 발표했지만, 조선인에 대해서는 일체의 사과와 보상도 없었다.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이기에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군함도'의 집단 탈출의 설정은 ‘어떤’ 의지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탈출 시도를 앞둔 가운데 동포를 팔아먹고 사익을 취한 매국노를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조선인들은 모두 손에 하나씩 촛불을 쥐고 있다. 우리는 이 장면과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국민을 볼모로 국정 농단을 일삼으며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적폐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시대를 일군 게 얼마 되지 않는다. '군함도'가 촛불 시위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굳이 넣은 이유는 역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왜곡하는 일본 정부의 만행에 맞서 진실을 알려 밝은 미래를 도모하자는 우회적인 표현이다.
'군함도'에는 그런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이 촛불 설정 외에도 또 있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앞세워 일본 전역에 폭격을 가하고 그에 따라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군함도 또한 혼란에 빠진다. 이 와중에 조선인들은 군함도 사방에 높이 쳐진 담을 넘기 위해 사다리를 세우는 과정에서 거대한 욱일기(旭日旗)를 반으로 갈라 이를 지렛대 삼는다. 이 영화의 메시지에 방점을 찍는 것 같은 이 장면이 한국인에게 주는 감정은 우선 카타르시스라 할 만하다.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처럼 사용이 금지되어야 하지만, 일본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기로 사용되는 등 주변 국가를 자극하고 있다. 이 장면이 주는 감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바꿔 말해, 이는 관객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극대화한 장면이다. 대중적으로 영리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 한편으로 그렇게까지 강조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이 장면 하나 때문이 아니다. '군함도'에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두드러진 요소, 즉 클리셰가 하나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선한 조선인 vs 악한 일본인, 이 구도를 교란하는 친일파의 존재, 가족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부녀의 사연, 전장에 핀 꽃과 같은 사랑, 이를 짓밟는 일제의 만행과 그에 대한 집단의 저항, 결국,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뻔한 문구를 변형한 듯 ‘그곳에 조선인들이 있었다’와 같은 메시지로의 귀결 등 군함도라는 특별하고, 특수한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기에는 좀 가볍고 산만하게 느껴진다.
물론 '군함도'는 올여름 시장 한국영화의 최고 기대작인만큼 흥행에 성공할 것이고 군함도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리는 데도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류승완 감독이 '군함도'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 관객이 기대한 바는 익숙한 요소의 나열을 넘어선 '베를린'(2012) '베테랑' 때와 같은 특별한 리듬의 영화적 체험이었다. '군함도'는 소재만 특별했지 영화는 보편의 수준에 머문 인상이다.
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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