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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불치병에 걸린 의사를 일으켜 세운 한마디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출처세바시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온 지나영이라고 합니다.

제가 미국에 살면서 배운 영어 말이 하나 있어요. 미국에 이런 표현이 있는데요.


출처세바시

바로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레몬의 의미가 미국에선 예쁜 게 아니에요. 쓰고 시어서 못 먹는 걸 뜻합니다. 그러니 이 말은 곧 "인생이 내게 못 먹는 것, 즉 레몬을 주니 그걸 짜고 설탕도 좀 넣고 해서 달콤하고 시원한 누구나 좋아하는 레몬에이드를 만들어라" 이런 뜻입니다.

저도 제 인생을 되돌아보면 인생이 제게 레몬을 마구 던져준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반지하에서 봉제공장을 하시는 부모님한테 반갑지 않은 둘째 딸로 태어났어요. 우리 아버지는 출생신고를 안 하셨습니다. 그렇게 4년이 지나는 동안 저는 법적으로 존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무관심 속에서 자랐지만 공부에는 조금 소질이 있었어요. 그래서 대구가톨릭 의과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고민해봤을 때 가장 힘들어하면서 가장 많이 소외받는 정신과 환자들을 도와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의대와 인턴 생활을 마치고 제가 봤을 때 제일 멋있어 보이는 정신과 레지던트에 떡하니 지원했습니다. 답을 기다리는데 저는 제가 될 줄 알았어요. 그때까지는 다 됐으니까요.


그런데 떨어졌습니다. 그때 레몬이 정말 썼습니다. 떨어지면 무엇을 할 건가 준비도 안 했어요. 그때 문득 '아 예과 1 학년 시절 가본 미국이 괜찮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재수하는 년 동안 미국에 가서 영어도 배우고 미국 의사 면허증 한번 따보겠다는 마음으로 정말 준비도 없이, 젊은 패기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에 갔습니다. 완전 맨땅에 헤딩을 했죠.


출처지나영 교수

그렇게 가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한 몇 개월 했나요. 그리고 시험을 쳤어요. 시험 점수가 딱 나왔는데 봉투를 펴보고 저도 화들짝 놀랐습니다. 100점 만점에 99점이 나왔어요. 그걸 보는 순간 무슨 생각이 났을까요? '아니 한국에서는 떨어졌는데 여기서 의사 하면 되겠다!' 그렇게 정신과와 소아정신과를 졸업하고 존스 홉킨스 교수로 취직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한국에서 레지던트에 떨어진 건 레몬이었죠. 그 레몬을 안 받고 그냥 붙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죠. 이런 기회를 못 잡았을 테니까요. 미국에는 또 이런 말이 있는데 저는 이 말을 믿습니다.


출처세바시

이걸 제대로 해석하면 "모든 일이 너를 '엿 먹이려고' 일어나는 게 아니고 너를 위해서 일어난다"라는 뜻이에요. 그런 뉘앙스가 있습니다. 레지던트에 떨어졌던 건 내가 엿 먹은 게 아니고 나를 위해서 일어났던 일인 거예요. 저는 그걸 굳게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던져준 두 번째 레몬

그런데 2017년 제 인생이 다시 제게 레몬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잘나가고 있는데 못 할줄 알았던 결혼도 했는데 말이죠.


그날은 제가 41살이 되기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남편이 있는 곳이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라 운전을 하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등에 통증이 느껴졌어요. 근데 이게 뭔가 아닌 통증 있잖아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기에 '이게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2시간 운전하는 동안 그 통증이 온몸에 퍼지고 오한이 일어나면서 집에 기어 들어가게 됐습니다. '어, 뭐지?' 하고 있는데 그 다음부터 여러 가지 이상 증상이 나타나고 두 달 후에는 누워서 못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그런데 제가 의사예요 남편도 의사입니다 심지어 존스 홉킨스에 근무하죠. 얼마나 유능한 의사들한테 가서 검사란 검사는 다 했겠어요 그런데 이 똑똑한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더군요.


"너 괜찮은 것 같은데 왜 그러니?" 검사에 이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열댓 명 되는 의사가 검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제게 뭐라고 했겠어요. "우울증이나 불안증 아니세요?"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경력 15년차 정신과 의사잖아요. 그 황당함이 이해됩니까? '정말 아닌데 기라 카는' 그 말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암흑의 시기가 6개월이나 지나갔어요. 결국 어떻게 실마리를 찾아서 진단을 받았는데요. 그 진단은 바로 이거였습니다.


출처세바시

이 병으로 인해 직장인 존스 홉킨스에도 1년 반을 못 갔습니다 '바닥을 쳤다'라는 말 아시죠 실제로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힘들었던 게 뭐냐면 그 병적인 피로감이었습니다.


밥 조금 먹었는데 마치 에베레스트에 막 다녀온 사람처럼 완전히 녹초가 돼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병적인 피로감이 왔어요. 휴대폰 있죠? 그 휴대폰이 오래되면 배터리가 잘 안 되죠. 충전도 잘 안 되고요. 마치 내 배터리가 10%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때 다시 이 말을 떠올렸죠.


“Everything is happening for me, not to me.

And I will make lemonade out of these lemons.”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말겠다는 집념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저는 바쁘게 가던 인생에 '쉼표'를 얻은 거였습니다. 그래서 아주 바쁘게 교수로서 의사로서 정신없이 살아갈 때와 달리 땅바닥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을 때 작가의 길 이라는 걸 걸어보고자 마음먹었죠. 누워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래서 궁리를 하다가 '분명 여기 누워서 할 수 있는 게 있을 텐데...' 싶어서 컴퓨터를 누워서 볼 수 있는 받침대를 샀어요. 그렇게 제 인생의 첫 책 『마음이 흐르는 대로』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도서 <마음이 흐르는 대로>

누가 제게 "그러면 교수님 옛날에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돌아가실 수 있다면 돌아가시겠어요?" 라고 물어보잖아요 그럼 전 단호하게 사양할 겁니다 제가 아프면서 배우고 깨닫고 성장한 게 진짜 많아요. 안 믿어지시죠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 물어볼게요 만약 지금 여러분에게 어느 날 갑자기 배터리가 10%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인생을 살 거예요? 저는 이렇습니다.

"내 인생이 정말 소중하고, 내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이 귀한 인생을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살겠다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기에도 내 삶이 너무 짧다고.”


2021년,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제 이야기가 신문기사에 나왔는데 댓글에 이런 말이 달렸더라고요.


‘거.짓.말.'


거짓말 아니에요. 저는 지금 나의 모습이 더 좋아요. 아픈 건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내 모습 여기가 좋아요. 그 전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이제 2021년이 시작됐죠. 이거 한번 상상해보세요.


한 사람은 이 어두운 곳에서 힘들어서 막 세상을 원망해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화내요. 이건 저 사람 탓이야, 라고 생각하며 절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요. 이 고통도 나를 위해 일어난 거라 믿고 레몬에이드를 만들겠다고 결심합니다. 


출처세바시

이 두 사람에게 똑같이 2021년이 주어졌습니다 이들은 똑같은 해를 어떻게 살아갈까요? 두 사람 다 똑같이 살아갈까요?

“What’s your choic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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