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노포 맛집 이야기
어느 분야에서든 오랜 세월을 버텨낸 자들은 다 그만한 이유와 힘이 있다. 춘천에도 단골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오래된 음식점들이 있다. 오늘은 닭갈비, 막국수 가게는 빼고 다른 종목으로 춘천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노포 맛집들을 소개한다.
진아하우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 |
●햄버거와 짬뽕라면의 기막힌 조합
진아하우스
춘천 사람들은 진아하우스보다는 ‘진아의집’으로 기억하는 곳. 햄버거집? 분식집? 술집? 이 가게는 한마디로 정의 불가다. 메뉴판만 봐도 알 수 있다. 햄버거, 치즈버거, 짬뽕라면, 김치볶음밥, 오므라이스부터 골뱅이무침, 감자튀김, 양파튀김 등 정말 다양하다. ‘자고로 맛집은 메뉴가 단출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은 잠시 접어두자. 게다가 김치찌개부터 스크램블에그까지, 이 메뉴의 ‘글로벌한’ 아우름은 무엇이란 말인가? 화려한 메뉴 마지막 부는 맥주와 소주가 장식한다. 실제 이곳에서는 햄버거와 소주를 한 상에 올린 테이블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1977년부터 영업해온 진아하우스. 한국어와 영어로 된 메뉴판도 걸려 있다.
가게 한쪽에는 특이하게 영어 메뉴판도 걸려 있다. 이는 진아하우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40년 넘는 전통을 이어가는 이곳은 춘천에 미군 부대가 주둔하던 시절, 그 인근에서 장사했다. 미군들이 찾던 가게. 이 말 한마디로, 영어 메뉴판이 있는 이유, 햄버거와 스크램블 에그 같은 메뉴가 있는 이유가 설명된다.
레트로풍 수제 버거와 짬뽕라면을 함께 맛볼 것 |
그런데 이 집의 버거는 전통 서양식이라기보단 옛날 한국식이다. 수제 패티와 달걀, 양파에 케첩과 마요네즈로 버무린 양배추가 들어간다. 딱 옛날 버거 그 자태, 그 맛이다. 학창 시절에 이런 버거 좀 먹어본 40~50대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맛이고 맥도날드나 버거킹으로 버거에 입문했을 MZ 세대는 토스트와 햄버거의 경계라고 평가할 맛이다.
메뉴가 너무 많아 ‘멘붕’인 초심자를 위해 진아하우스의 국룰을 귀띔한다. 치즈버거와 짬뽕라면. 치즈버거의 느끼함과 짬뽕라면의 칼칼함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완벽한 맛을 완성한다. ‘엄청난 맛집’이라기보다는 ‘추억의 멋집’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노포이니 여행의 재미로 찾아볼 만하다.
●맛있게 즐기는 건강식
봄담은산채
1988년 문을 열어 30년 넘는 전통을 이어가는 음식점으로,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다. 그런데 춘천 현지인들에게 봄담은산채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점봉산산채’라는 상호로 영업하다 장소를 이전하면서 봄담은산채로 상호 변경했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맛있는 산채오리전골은 백년가게로 인증받은 봄담은산채의 대표 메뉴다 |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산채오리전골이다. 창업주가 자체 개발한 메뉴로, 몸에 좋은 각종 산나물과 훈제 오리고기를 넣고 끓여내는 요리다. 산나물과 오리고기가 만나 건강하면서도 정갈한 맛을 낸다. 테이블 위에서 보글보글 끓여 먹는데, 오리고기는 고추냉이+간장, 머스터드 등의 소스에 찍어 먹으면 된다. 맛있게 먹는 또 다른 방법은 곰취 장아찌에 오리고기와 부추를 넣어 싸 먹는 것. 각자의 방식대로 입맛에 맞게 즐기면 된다.
국물도 꼭 맛보자. 산나물에서 나온 채수와 오리고기에서 나온 육수가 어우러져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고기나 나물이 부족하다면 추가(유료)도 가능하다. 마지막에 먹는 볶음밥 또한 별미다. 일행끼리 식사할 수 있는 개별 공간을 다수 갖춰 편하다.
●만둣국 먹으러 가는 막국숫집
만천만두국(만천막국수)
만천막국수는 확실히 외지인보다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인데, 희한하게도 막국수가 아니라 만둣국 먹고 싶은 날 가는 곳이다. 가게 안의 손님들을 봐도 막국수보다는 만둣국을 먹는 이가 압도적으로 많다. 직접 빚은 만두를 넣은 푸짐한 떡만둣국으로 큰 인기를 누리다가 급기야는 만천만두국이라는 이름으로 신관을 열기에 이르렀다. 조연이 결국 주인공이 된 경우랄까.
현지인 맛집인 만천만두국은 만둣국과 파전으로 유명하다 |
떡만둣국과 함께 이 집을 대표하는 메뉴는 파전이다. 워낙 크고 두툼해서 ‘방석 파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크기가 다소 줄어 ‘방석 파전’이라는 명성에는 조금은 못 미친다는 평도 있다. 현재는 신관만 운영 중이며 이곳에서 막국수도 판매한다. 하지만 이 집의 주력 메뉴는 막국수가 아니라 떡만둣국이라는 점, 기억하시길.
●한 번쯤은 막국수 대신 평양냉면
평양냉면
춘천 하면 막국수지만, 춘천에는 전통 있는 평양냉면 전문점도 있다. 막국수도 평양냉면도 주원료가 메밀이니, 영 맥락 없는 관계도도 아니다. 평안도에서 내려온 주인장이 처음 가게를 차려 3대째 운영 중이니 역사가 깊다. 이 집의 역사를 굳이 숫자로 표현하지 않아도 가게 외관이 말해준다. 파란 지붕에 평양냉면이라는 네 글자 한자가 적힌 외관이 가게의 역사를 대변한다.
춘천에서 유명한 평양냉면 전문점 |
평양냉면과 빈대떡 |
당연히 직접 면을 뽑고 국내산 양지와 설깃살, 잡뼈 등을 넣고 육수를 고아낸다. 식감과 풍미를 잘 잡은 메밀 면과 뽀얀 육수가 슴슴하면서도 구수하게 조화한다. 뼈대 있는 맛집답게 메뉴는 단출하다. 물냉면, 비빔냉면, 빈대떡, 수육 정도다. ‘면파’와 동행한 ‘밥파’를 위한 설렁탕과 육개장도 있다. 아는 사람만 시켜 먹는다는 밥말이냉면도 있다. 말 그대로 냉면에 밥이 말아 나오는 별미다. 단, 메뉴판에 없는 음식이라 주문 불가한 날도 있다.
●추억의 분식집
팬더하우스
프랜차이즈 분식집이 전국을 휩쓰는 시대에 이런 지역 분식집은 고마운 존재다. 춘천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분식집으로 손꼽히는 팬더하우스는 꽤 오랜 세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양옆에는 별미당과 또또아가 함께해 외롭지 않게 자리를 지켜간다. 조그마한 노포 분식집 세 곳이 조르르 선 모습은 정겹고 따스하다. 세 집 모두 주 메뉴는 만두와 떡볶이. 손수 빚은 만두를 주문과 동시에 밖에 놓인 팬에서 튀겨낸다.
튀김만두와 떡볶이의 맛있는 조합 |
세 집의 음식 맛은 비슷한 듯 조금씩 차이가 난다. 입맛이야 워낙 주관적이라 어느 곳이 최고라 말할 수는 없다. 그저 내 입맛에 맞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나의 픽은 팬더하우스. 굳이 이유를 꼽으라면 떡볶이 양념 맛이 좀 더 입에 맞는다고 할까. 후춧가루 뿌린 떡볶이와 갓 튀겨낸 만두가 조화롭다. 튀김만두를 떡볶이 양념에 찍어 먹으면 끝도 없이 먹게 된다. 서로 느끼함과 칼칼함을 잡아주며 맛의 중용을 이루기 때문이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딱 적당한 맛의 선을 유지한다.
글·사진 김수진 트래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