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에게 산해진미를 묻다
맛으로는 장흥을 이길 곳이 없다. 장흥의 산해진미에 대하여.
맛의 원천, 갯벌. 장흥의 감칠맛은 다 이곳에서 나온다
진정한 진수성찬의 고장
흔히 맛있는 음식을 두고 ‘산해진미’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산해진미(山海珍味)’란 산과 바다에서 나는 진귀한 맛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그냥 하나의 맛있는 음식을 산해진미라고 지칭해선 안된다. 이와 비슷한 말로 ‘진수성찬(珍羞盛饌)’이란 말이 있는데 여기서 진수(珍羞)는 평소 보기 드물게 맛 좋은 음식, 성찬(盛饌)은 반찬을 풍성하게 차림을 뜻한다.
‘만한전석(滿漢全席)’을 산해진미로 칭하기도 하는데 사실 만한전석은 고유명사다. 청나라의 황제, ‘강희제’가 직접 고안했다고 알려졌다. 만주족과 한족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만한(滿漢)의 여러 요리를 함께 차린 잔칫상을 이른다. 황제의 요리인 만큼 사나흘씩 펼쳐지는 화려한 구성이다. 당연히 산해진미이며 진수성찬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오늘의 산해진미를 특정하자면 당연히 산과 바다를 대면한 고장에서 난 풍성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여러 음식이겠다. 그렇다, 산해진미라면 당연히 장흥이 떠오른다. 가든형 고깃집이 줄지은 경기도 장흥이 아니고 정남진(광화문 기준 정남쪽 방향), 전남 장흥이다. 일단 기름진 바다(득량만)를 품고 명산(천관산)을 이고 앉은 형세에, 가운데 맑은 강(탐진강)이 흐른다. 여기서 수많은 산해의 진미가 나온다. 딱 지금이 제철이다.
가을의 한복판 11월, 주꾸미와 낙지 등 민머리 부대를 해군 선봉장으로 앞세우고 들과 산에는 표고버섯과 천관산 한우 등이 비처럼 쏟아진다. 물이 차가워지면 김과 매생이, 키조개 그리고 자연산 굴까지 나오니 금상첨화에다 더 이상 견줄 곳이 없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을 차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는 셈이다. 유치와 장평, 부산면(장흥에 부산이 있다) 등 관산과 회진, 용산, 안양(용산과 안양도 있다) 등 바닷가에도 많지만 많은 식당이 몰려 있는 장흥 읍내에서도 대부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일단 강변 토요시장에도 맛있는 음식이 천지다. 이제 탱글탱글한 살을 뽐내는 꼬막이며 표고, 매생이, 황칠에 김부각까지 요것조것 살 것에다 만둣집과 꽈배기를 파는 분식집, 드라마에 등장한 ‘삼대곰탕’, 몸에 좋은 소라낙지국밥을 파는 ‘토정황손두꺼비국밥’, 갖은 버섯에 해물과 닭고기를 넣어 끓이는 ‘불금탕집’ 등이 토요시장을 배불리 꽉 채우고 있다. 이팝(쌀밥)과 고깃국의 조합, 국밥 마니아라면 해장국과 소머리국밥을 잘 끓이는 ‘한라네 소머리국밥’과 한우 소고기로 맑은 나주식 곰탕을 끓이는 ‘미청’을 추천한다
진수성찬으로 상다리 부러지도록 그득 차린 한상차림을 좋아한다면 갖은 찬에 차린 백반과 큼지막한 달걀말이를 내는 토요시장 시골집과 군청 인근 ‘푸른길’에 가면 좋다. 말도 안 될 일이지만 배가 금방 꺼져 출출하다면 장흥 내 중국음식점을 들러 보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다. 짜장면 하나를 시켜도 반찬이 여럿이다. 김치만 서너 종류를 내주는 ‘경성식당’이 인심 좋은 남도 장흥식 중국집이다. 짜장면 하나에 한 상 가득 반찬이라니, 짜장을 남겨 밥을 아니 비빌 수 없다. 마침 제철을 맞은 표고버섯으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내는 화풍은 채식 식단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딱이다. 탕수육과 간짜장, 볶음밥을 잘하는 ‘영춘원’도 장흥군민들에겐 입소문이 난 집이다.
가을 지나 겨울까지, 언제나 장흥
술과 함께 즐기는 저녁 식사라면 단연 ‘장흥삼합’을 선택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합’ 하면 홍어삼합이 전부였지만 이젠 전 국민이 다 아는 장흥삼합이다. 읍내 토요시장 일대와 강 건너 시내 곳곳에 삼합을 내건 식육식당이 많다. ‘만나숯불갈비’는 칼솜씨가 그리도 좋은 사장이 직접 고기를 끊어 주는 식육식당이다. 한차례 칼바람이 불면 삼합의 완성이다. 정남진 장흥 천관산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 등 ‘감칠맛 삼총사’가 불판 앞으로 모여든다.
삼합(三合)이란 3가지가 서로 어울리는 것을 이른다. ‘뒤마’의 <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나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생각하면 쉽다. 한우가 아토스라면 표고는 포르토스, 키조개 관자는 아라미스 격이다. 고소한 맛, 진한 향, 쫄깃한 느낌 등 각각 맡은 역할을 하는데 여기 마지막으로 달타냥이 등장한다. 삼합에 빠질 수 없는 소주다. 이로써 사합이 된다. 원래 천연 조미료인 셋, 아니 넷이 육즙을 일제히 터뜨리며 외친다.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All for one, One for all)!”
모름지기 중간중간 차도 마셔야 소화가 된다. 전통차라면 청태전차를 마시고, 커피와 디저트라면 곳곳에 근사한 카페가 있다. 보림사 뒷산에도 야생차가 날 정도로 장흥의 차 역사는 오래됐다. 1,200여 년 전 삼국시대부터 남해안을 중심으로 발달한 차 문화, ‘청태전(靑苔錢)’은 ‘푸른 이끼가 낀 동전 모양 차’다. 야생 찻잎을 따서 가마솥에 덖고 절구에 빻은 다음 엽전 모양으로 빚어 발효시킨다. 맛이 순하고 향이 좋다. 안양면 수문 해변 가는 길에는 ‘카페 팡야’가 있다. 바다를 조망하는 2층 건물에서 단호박 식빵, 브라우니 등 달달한 빵과 케이크, 쿠키 등을 커피와 함께 판다. 아무래도 전망이 좋으니 2층이 호젓하고 아늑하다. 읍내에서 우드랜드 가는 길에 있는 카페, ‘팜파스’는 전원적인 분위기 속 맑은 공기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쉬어가기에 좋은 곳이다. 읍내에는 카페 ‘원앤식스’가 있다. 탐진강을 바라보며 갓 내린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문을 열면 벌써 향긋한 커피 향이 코를 찌른다.
곧 날이 추워지고 바다가 식으면 굴이 난다. 덩달아 식욕도 난다. 그땐 용산면 남포마을, 관산면 고마리를 가야 한다. 겨울에 또 간다고 누가 뭐라나. 안 가면 자기 손해지.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