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흐르는 도시, 안동을 즐기는 4가지 방법
가을, 하회마을에서 머물렀다.
물안개가 자욱한 만송정 솔숲을 느릿느릿 거닐며 향긋한 국화차를 음미했다.
●걷다
감탄과 걱정이 공존했던 선비순례길
선비의 도시, 안동엔 ‘선비순례길’이라고 불리는 산책길이 있다. 총 길이는 무려 91km에 이르지만, 9개 코스로 나뉘어져 있어서 원하는 코스만 선택해 걸어볼 수 있다. 선비순례길 1코스인 선성현길을 걸었다. 이 길을 유명하게 만든 건 안동호 위에 곡선으로 설치된 나무 데크길 덕분이다. 1.1km나 이어지는 데크길은 수면에 거의 맞닿을 정도로 설치돼 있어 물 위를 걷는 듯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선성현길이 있는 자리는 사실 안동댐이 조성되면서 예안마을이 수몰된 지역이다. 예안국민학교 시절 추억의 사진과 풍금 그리고 나무 책걸상이 산책로 한가운데 남아 수몰민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준다.
선성수상길 |
감탄이 연달아 나올 만큼 아름다운 길이지만 호수를 가득 메운 녹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짙은 녹조는 새파란 하늘, 새하얀 구름과 대비를 이루어 강렬한 색감의 유화 같았다. 녹조 아래 물 속 생물들은 잘 살아가고 있을까, 걱정과 감탄이 공존하던 길 위에서 모든 게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예안국민학교 수몰지역 |
사랑의 월영교
월영교(月映橋)처럼 절절한 러브스토리가 새겨진 곳이 있을까? 1998년 안동 정상동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미라의 형태로 발견됐다. 시신의 머리맡에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 한 켤레가 온전한 모습으로 놓여있었고 가슴을 덮은 한지엔 긴 편지가 놓여있었다.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편지엔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절절한 심경이 담겨있었다.
월영교 |
월영교는 원이 엄마의 사랑을 이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다리로 길이 387m의 목책 인도교다. 월영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원이엄마 테마길과 호반 나들이 길이 조성돼 있다.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는 여행자들의 마음은 철망에 주렁주렁 걸린 자물쇠로 남았다. 어딜 가나 사랑뿐인 길. 그러니 커플이라면 월영교를 꼭 걸어보자. 밤엔 초승달 모양의 나룻배인 문보트를 타면 환상적인 풍광의 주인공이 된다.
도산서원 |
●느끼다
퇴계의 향기, 도산서원
안동을 여행하다 보면 퇴계 이황 선생과 관련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유산을 잘 보존한 덕에 정신문화의 수도로 자리잡은 안동. 서원은 우리나라에 600개 넘게 있지만, 도산서원(陶山書院)이 대표 서원에 꼽히는 데는 성리학의 근간을 세운 퇴계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산서원 앞엔 작은 섬과 같은 모습을 한 시사단(試士壇)이 눈에 띈다. 정조가 평소 존경하던 퇴계 선생의 학적을 기리면서 지방 선비들이 지방에서 과거 시험을 치르도록 특별히 마련한 곳이다. 한양까지 올라가지 않고 안동에서 시험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도산서원 역락서재, 소풍 온 아이들 |
도산서원 진도문 |
사실 지금의 경관은 옛 모습은 아니다. 1976년 안동댐 준공으로 인해 수위가 높아지자 10m 높이의 축대를 쌓고 시사단의 위치도 높였다. 팔각지붕의 비각을 둘러쌌던 아름다운 송림은 물 속으로 모두 사라졌지만, 퇴계의 정신은 홀로 서있는 시사단처럼 고고하게 남아있다.
병산서원 |
건축의 백미, 병산서원
병산서원(屛山書院)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중 건축의 백미로 꼽혀 건축학도들이 많이 찾는다. 향교가 오늘날 공립학교라면 서원은 사립학교와 비슷하다. 퇴계의 제자이기도 했던 서애 류성룡이 후학 양성을 위해 풍악서당을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 만대루와 통나무 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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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의 건축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만대루(晩對樓)다.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된 큰 누각으로, 여기서 칸은 각 기둥 사이의 열린 공간을 말한다. 통나무를 그대로 깎아 만든 계단을 오르면 병풍같이 두른 병산이 하늘 아래 펼쳐지고 그 밑으론 낙동강이 흘러간다. 강가 모래는 어찌나 희고 고운 지 눈이 부셨다. 병산서원 만대루의 백미는 바로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다. 위치에서 따라 조금씩 달리 보이는 풍경화는 갈라지고 비틀어진 나무 기둥 사이에서 살아있는 작품이 되었다.
하회마을 |
하회마을 |
●머물다
밥짓는 냄새에 취해
새벽에 일어나 물안개가 자욱한 만송정 솔숲을 걸었다. 하회마을을 감아 도는 부드러운 강물처럼 시간도 더디게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북촌에 자리한 빈연정사에서 국화차 다도 체험을 했다. 선비를 닮은 사군자 중 가을에 해당하는 국화는 하회마을에서 썩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에서 국화차를 처음 선보인 지역이 바로 안동이다. 봉정사 돈수 스님이 국화차를 처음 만들었고, 서후면에 국화차 재배 농가가 늘어나면서 상품화 되기 시작했다. 대청마루에 옹기종기 앉아 노랗게 물이 오른 국화차를 마셨다. 세가지 색깔로 물이 든 다식이 함께 나왔다. 안동지역에서 생산한 쌀과 꿀로만 만든 투박한 다식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맛이 매력적이었다.
일각문 너머로 만송정 솔숲이 보이고 상쾌한 바람이 들어오니 대청마루 바닥에 벌렁 드러눕고 싶었다. 하지만 여긴 선비의 마을이 아닌가, 무너져 내린 허리를 곧게 세우고 두 손으로 찻잔을 가지런히 들었다. 천천히 그리고 바르게. 다도가 알려준 삶의 태도였다.
하회마을의 저녁. 나무 때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밥 짓는 냄새가 났다. 하회마을에 있는 전통 가옥의 다수는 현대식 부엌을 갖추고 있지만 몇 집은 아직도 조선시대 스타일을 고수한다. 추억이 피어 오르는, 그 냄새를 영원히 잃지 않길 바랬다.
선유줄불놀이 |
선유줄불놀이 |
불꽃이 비처럼 내리던 하회마을
수많은 양반 가문들이 머물며 지켜온 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2021 세계유산축전 안동’은 세계유산의 가치와 품격을 알리기 위한 지역 행사로, 하회 선유줄불놀이가 단연 하이라이트였다. 안동엔 대표적인 놀이가 두 가지 있다. 하회 별신굿탈놀이가 서민들의 놀이라면 선유줄불놀이는 양반들이 즐긴 풍류였다.
해가 저물자 하회마을 부용대 앞 백사장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부용대에서 낙동강을 가로질러 하회마을까지 이어진 줄에 서서히 불이 붙었다. 작은 불꽃들이 은은하게 터지다가 순간 불꽃이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옛날 불꽃비 앞에서 양반들의 술잔은 자꾸 기울어지고 시와 노랫가락이 밤새 울려 퍼졌으리라. 어둠이 더욱 짙어 지니 ‘달걀불’이라 불리는 등불들이 상류에서부터 유유히 떠내려왔다. 불꽃의 향연은 끝이 아니라는 듯 부용대 정상에서 불을 붙인 솔가지 묶음이 절벽 아래로 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엔 별빛, 강 위엔 불꽃. 취한 듯 했다.
안동 헛제삿밥 |
●맛보다
진정한 안동의 맛, 헛제삿밥
안동의 전통적인 양반가에서는 4대 봉사와 시제까지 한 해에 최소 열두 번의 제사를 지내게 된다. 안동 헛제삿밥은 제사 문화를 확실히 반영한 식문화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밤늦도록 공부를 하다가 허기를 느낀 유생들은 하인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처럼 상을 차려오게 했다. 이런 설을 품고 있는 헛제삿밥엔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이 그대로 나온다. 단, 조금 더 간소하게. 탕국, 나물밥, 배추전, 두부전, 다시마전 등이 제기에 담겨 나온다. 미니 제사상이나 다름없다. 다 먹고 나서는 고춧가루 물이 붉게 밴 매콤달콤한 안동식혜로 입가심을 해야 진짜 안동의 맛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안동 간고등어 |
막걸리와 찰떡 궁합, 안동 간고등어
안동에서 고등어는 제사상에도 올릴 정도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식재료다. 냉동시설이 없던 옛날엔 영덕 강구항에서 잡힌 고등어가 안동까지 오는 데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고등어는 잡힌 순간부터 상하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패가 빠른 생선이다. 이동하는 동안 생선이 상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소금으로 강하게 염장 처리를 했고, 상인들은 고등어를 안동까지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었다. 소금간 덕분에 고등어 살은 더욱 쫄깃해 졌고 짭조름한 맛은 깊어졌다. 대표적인 밥도둑인 안동 간고등어는 막걸리와도 찰떡 궁합이다.
안동찜닭 |
원조의 품격, 안동찜닭
안동과 찜닭이라, 대체 어떤 인연일까? 유력한 설은 2가지다. 조선시대, 안동 도성 안쪽을 '안동네'라고 불렀단다. 특별한 날에 사람들은 닭찜을 해먹곤 했는데 이를 '안동네 찜닭'이라고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안동찜닭이 됐다는 것. 또 하나는 안동구시장 닭 골목 단골들이 간장을 넣은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으면서 지금의 안동찜닭이 태어났다는 설이다. 이런저런 설이 맛있는 안동찜닭 앞에서 무슨 소용일까. 매운 고추가 들어가 칼칼한 맛이 일품인 안동찜닭은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 먹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글ㆍ사진 김진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경상북도,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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