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 예산시장의 맛
새롭게 태어난 예산시장을 탐험했다.
버스 승강장을 컨셉으로 꾸며진 길안내판.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뉴트로 예산시장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 ‘뉴트로’는 요즘 핫한 예산시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장소, 예산시장으로 향했다. 사실 예산시장은 꽤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공식 시장 인가는 1926년에 받았지만, 조선 후기부터 시장이 형성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1980년대에는 지역 주민과 상인으로 붐볐지만, 1990년 이후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출되며 시장의 규모는 점차 축소됐다.
그러던 2018년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가 예산군과 상호 협약을 체결하여 예산시장 일대에 ‘예산형 구도심 지역상생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시장의 낙후된 시설을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정비했고 상인들에게 ‘더본코리아’에서 개발한 레시피를 제공했다.
평일에 가면 비교적 한산하게 시장을 구경할 수 있다 |
2023년 1월, 새롭게 리뉴얼한 예산시장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현재는 주말이나 예산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전국적으로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고 있다. 뉴트로 예산시장은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다. 예산시장은 게이트가 총 8곳이다. 1번 게이트에 들어서면 거대한 광장에 많은 점포가 눈에 들어온다. 한적한 평일에는 바로 광장 자리를 맡을 수 있지만, 주말엔 대기번호 접수가 필수다.
메뉴 주문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대기번호를 접수하고 카톡으로 자리를 안내받은 뒤 매장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된다. 음식은 각각의 매장에서 먹어도 되고 광장으로 갖고 나와서 먹어도 된다. 핸드폰 QR코드로 매장 안내를 간편하게 받아 볼 수도 있다. 처음 온 관광객을 배려한 느낌이 많이 든다. 차량 주차는 1번 게이트 앞 A 주차장을 이용하거나 그 옆 B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괜히 정감가는 시장 풍경들 |
예산시장 지도를 살펴보면 총 67개 점포 중 32개 매장이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백종원 대표의 솔루션을 받아 한층 더 맛있어진 점포들이다. 지도를 보며 먹고 싶은 음식점을 찾아가 보자. 은은한 불빛, 오래된 간판, 벽에 붙은 포스터, 어디선가 풍겨 오는 맛있는 냄새. 시장 안 골목길은 60년대를 추억하기에 딱 좋다. 어떤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마침 배꼽시계도 요란하게 울린다.
●예산 8味, 선봉국수
예산시장에서 가장 먼저 찾은 집은 선봉국수다. 메인 광장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다. 오픈형 주방에는 큰 육수통 3개에서 멸치 육수가 우려지고 있다. 대기 줄이 긴 편이지만 금방 후루룩 먹는 국수의 특성상 회전율이 빠르다.
메뉴는 멸치국수와 파기름비빔국수다. 각각 4,000원, 3,500원. 국수에 사용된 쪽파, 양파, 대파, 마늘, 멸치, 무 등은 당당하게 국내산이다. 멸치국수는 풍미를 높이기 위해 장시간 우려낸 멸치기름이 들어간다. 파기름비빔국수 역시 예산 특산품인 쪽파로 기름을 우려내어 그 맛과 향이 진하다.
주문을 하면 레트로 느낌이 나는 초록색 중국집 그릇에 파기름비빔국수가 고봉밥처럼 나온다. 면에는 고소한 기름향과 짭조름한 간장향이 진하게 스며 있다. 국수만 먹어도 좋고 고명으로 나온 쪽파를 국수에 싸서 먹어도 좋다.
●석쇠에 구운 고추장 불고기, 고덕불고기
고덕불고기는 국내산 돼지 뒷다리살로 고추장 불고기를 지글지글 구워 낸다. 7월에 오픈한 이후로 손님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가게다.
주력 메뉴는 고추장 불고기와 계란찜. 진한 불맛이 특징인 고추장 불고기는 비장탄과 조개탄에서 시작된다. 비장탄은 고기에 온전히 열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고 조개탄은 불향을 곁들이는 데 탁월하다. 두 가지 숯이 불고기 밑에서 화끈하게 타오르며 고기의 맛을 좌우한다.
맛은 기대했던 대로 불맛이 가득하다. 고기를 씹을 때 고추장 양념이 입 안에 가득 퍼진다. 얇게 채 썬 대파를 불고기에 올려 먹어도 좋다. 계란찜은 푸딩처럼 부드럽고 고소하다. 단품으로 고추장 불고기는 8,000원, 계란찜은 3,000원이지만 세트로 주문하면 9,900원이다. 밥이 필요하다면 근처 진영상회에서 공깃밥과 음료를 별도로 구입할 수 있다.
●성실함으로 빚어낸 떡, 고려떡집
시장 광장을 지나 6번 게이트를 나오면 오른쪽에 고려떡집이 있다. 올해로 21년째 영업 중이다. 꿀떡, 바람떡, 인절미, 시루떡 모두 맛있지만 고기를 품은 백설기, 고기떡은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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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떡은 잘게 다진 돼지 앞다리살을 야채와 함께 양념을 한 뒤 예산 쌀로 쪄서 만든 떡이다. 한 입 베어 물면 백설기의 단맛과 고기의 육향이 입 안에서 어우러진다. 꼭 고기가 들어간 찐빵을 먹는 느낌이다. 한 개에 180g 정도로 양도 푸짐하다. 매일 새벽 떡을 만드는 사장님의 오랜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떡에 있는 하트 모양은 찾아 주는 손님을 향한 감사한 마음을 담고 있다.
●마라칼국수의 탄생, 예터 칼국수
‘친절과 청결’을 가게 운영의 핵심으로 여기는 예터칼국수는 시장 광장에 있다. 오로지 칼국수만을 고집해 온 집이다. 예전에는 닭칼국수가 메인이었지만 지금은 마라칼국수가 그 명맥을 이어받았다.
돼지고기, 양파, 대파, 청양고추, 마라소스 등을 식용유에서 지글지글 볶다가 가게 특제 육수와 마라소스, 생면을 넣고 끓이면 마라칼국수가 완성된다. 면 위에 넉넉히 올라간 돼지고기와 마라소스를 적절히 비비면 매콤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칼국수에 스며든 마라 특유의 얼얼함이 인상적이다. 날이 더운 여름엔 냉칼국수, 비빔칼국수를 찾는 손님이 많지만 요즘같이 쌀쌀한 날엔 마라칼국수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좋다. 가격 또한 6,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꽈리고추를 품은 수제 어묵, 대술어묵
대술어묵의 메뉴는 꽈리고추 어묵, 슬라이스 햄 어묵, 게맛살 어묵 등 다양하다. 특히 꽈리고추 어묵은 예산의 특산품인 꽈리고추가 듬뿍 들어가 상당히 매콤하다.
130도 기름에 7분 정도 튀겨서 어묵 속이 촉촉하다. 취향에 맞게 케첩과 머스터드를 어묵에 뿌려 먹으면 된다. 짭짭한 게맛살 어묵에 케첩을 발라 먹는 게 무난하다. 가격은 2,000원. 혹시라도 매콤한 꽈리고추 어묵을 한 단계 더 화끈하게 즐기고 싶다면 가게에 구비된 불닭소스를 곁들여 먹을 것을 추천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밥거리
예산시장 근처 도보 5분 거리에는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 낸 국밥가게가 즐비하다. 오늘날 국밥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가게 간판에는 원조라고 쓰여 있거나, 6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한다. 사장님의 증명사진이 걸린 가게도 있다. 국밥에 대한 자긍심이 물씬 느껴진다. “난 여기 가게들 국밥 다 먹어 봤어!” 한 어르신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국밥거리 국밥 맛을 장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예산 국밥은 다른 지역 시장과 차별화된 맛으로 유명하다. 평야와 들판, 낮은 구릉이 많은 지리적 특성이 농사와 축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활발한 수운 교류는 예산 지역의 활발한 오일장 문화를 형성했다. 오가는 보부상들은 빠르게 먹을 식사를 찾았고 그 결과 자연스레 국밥 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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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밥거리는 ‘예산1호 국밥집’부터 일렬로 국밥가게가 늘어선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가게 지붕은 볏짚으로 덮여 있고 표주박을 걸어 놓아 조선시대 주막을 연상케 한다. 새벽부터 진하게 우려낸 육수 냄새도 거리에 간간이 풍긴다. 국밥가게 앞에는 화단과 쉼터 벤치가 조성되어 있어서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어 가기 좋다.
국밥거리의 모습. 화단과 쉼터 벤치가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
글·사진 김민형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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