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진 대표팀 제외 미스터리, 숨겨진 속사정은
[스토리 발리볼]
세자르 감독의 뚝심 있는 판단 혹은 사적인 감정? 확인된 4명의 대체 선수는.
대한배구협회(KVA)의 여자 대표팀 대체 선수 명단이 8일 밝혀졌다.
오는 9월 23일~10월 15일 네덜란드와 폴란드에서 열리는 2022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추가 국가대표 선수 4명은 하혜진(페퍼저축은행), 박혜민(KGC인삼공사), 유서연(GS칼텍스), 황민경(현대건설)이다. 이들은 지난 1일 소집된 16명의 후보 엔트리 가운데 부상 등으로 중도 하차한 4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추가로 선발됐다.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하차한 선수는 윙공격수 강소휘와 이소영 정지윤, 미들블로커 정호영이다. 강소휘는 몸에 이상이 생겨서 수술을 받았다. 여기에 이한비마저 수비 훈련 도중 손목을 다쳤다. 이 부분에 부상 이력이 있어 계속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 이소영은 어깨 이상, 정지윤은 피로 골절, 정호영은 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 때의 발목 부상으로 정상적인 훈련이 어렵다.
국제배구연맹 (FIVB) 이 정한 세계선수권대회 예비 엔트리 마감은 10 일이다 . 이들 가운데 14 명의 최종 출전 선수 명단을 나중에 확정하면 된다 . 이 작업을 앞두고 최근 여자 국가대표 경기력 향상위원회 ( 이하 경향위 ) 박기주 이사는 V 리그 감독들과 계속 연락했다 . 추가 대표 선수 차출을 놓고 많은 정지 작업이 필요한 까닭이었다 .
이 가운데 황민경은 8일 가장 먼저 선수단에 합류했다. VNL에서 복근을 다쳤던 그는 소속 팀에 복귀한 뒤 재활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다행히 지난 5일 GS칼텍스와의 연습 경기에도 출전하는 등 정상에 접근했음을 알렸다. 대표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은 "황민경이 필요하다"고 하자 군말 없이 차출을 허락했다. 덕분에 8일 다른 선수보다 먼저 대표팀에 합류했다. 다른 선수들도 곧 합류할 예정이다.
박혜민은 이미 VNL에서 세자르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리시브와 수비 보강에 꼭 필요한 역할이다. 하혜진은 미들블로커와 아포짓으로 겸용이 가능한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제 대회에서 꼭 필요한 높이의 장점도 있고 경험도 풍부하다. 윙공격수의 절대 숫자 모자란 가운데 세자르 호의 마지막 추가 선택은 유서연이었다. 단신이지만 높은 블로킹을 상대로 다양한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 발탁의 이유로 보인다.
8일 대체 선수 명단 확정으로 한숨을 돌린 가운데 앞으로 대표팀 운영에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그동안 국가대표팀과 V리그 감독들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해왔던 박기주 이사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선수를 결정하고 협회를 통해 통보하라”면서 대표팀 선발 조정 업무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이런 결정이 나온 배경이 있다 . 박기주 이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수를 뽑아가려는 곳과 보내줘야 하는 쪽의 생각 차이가 너무 컸다 . 중간에 낀 그는 고심 끝에 ‘ 이해 당사자끼리 직접 해결하라 ’ 며 뒤로 빠지기로 한 것이다 . 지난 7 월 6 일 간담회에서 세자르 국가대표 감독이 V 리그 감독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 이후 원활한 소통은 꿈도 꾸지 못했다 .
현재 세자르 감독은 주변의 어떤 조언도 거부한다. 좋게 표현하자면 줏대가 있는 것이지만 나쁘게 표현하자면 고집이 너무 세다. 이런 외국인 감독을 바라보는 V리그 사령탑의 시선은 좋지 못하다. V리그를 존중하지 않고 선수의 기량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한다. 최근 대체 선수 선발 때 특정 선수의 이름이 나오자 “그 선수가 뛰는 것을 제대로 보기나 했냐” “감독이 정말로 그 선수를 원하느냐”고 확인할 정도였다. 대표팀 감독과 V리그 감독들 사이의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V 리그는 현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정도의 기량을 갖춘 선수가 30 명도 채 되지 않는다 .
억지로 16명의 명단을 추렸지만, 부상 선수가 연달아 나오면서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됐다. 지금은 누가 와도 해결할 방법은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여자 배구의 암담한 현실에서 각자의 처지는 이해되지만, 그럴수록 V리그 감독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세자르 감독의 미숙한 대응과 외국인 감독을 품어주지 못하는 V리그의 포옹력 부족도 아쉽다.
또 다른 변수만 없다면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선수는 이들 16명 가운데 확정되겠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다. 바로 김희진의 대표 선수 제외다. 그는 현재 V리그 최고 인기 스타다. 팀에는 꼭 필요한 큰 공격을 책임져줄 대포다. 2012런던, 2016리우, 2020도쿄 등 3번의 올림픽 참가를 포함해 V리그가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가며 육성한 선수인데 하필 대표팀의 성적이 가장 중요한 세계선수권대회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는 VNL 에서 무릎 부상을 안고도 3 주차 경기까지 완주했다 . 성적은 기대치 이하였다 . 공격 전담이면서 고작 54 득점에 그쳤다 . 세트 평균 4 득점에 공격효율은 29% 였다 . 경쟁 팀의 아포짓과 비교하면 분명 아쉽지만 그만한 선수조차 쉽게 찾을 수 없는 V 리그다 . 세자르 감독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이 역할을 정지윤이나 VNL 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이선우에게 맡길 구상을 했지만 , 정지윤이 피로 골절로 빠지면서 일이 틀어져 버렸다 .
VNL 때 김희진은 한 경기를 풀로 뛰고 나면 무릎에 물이 차는 증상으로 관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 세계선수권대회 대표 선수 명단에 빠졌을 때는 누구나 인정했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그럴 수 있다고 봤지만, 김희진은 최근 IBK기업은행의 연습 경기에 자주 출전하고 있다. 그의 플레이를 지켜본 어느 방송사 해설위원은 “순천 KOVO컵 MVP후보”라고 할 정도로 정상적인 공격을 하고 있다. 이런 김희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김호철 감독은 박기주 이사에게 “대표팀에 데려가라”고 추천했다.
다른 감독들도 “ 김희진은 대한민국 여자 배구를 상징하는 선수로서 역할이 있다 . 꼭 코트에서가 아니라도 후배들을 이끄는 존재로서 꼭 필요한 선수 ” 라고 입을 모았지만 , 세자르 감독은 발탁을 거부했다 .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한 최초의 대표 선수 명단에도 빠졌고 이번에 추가 선수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 연습 경기 출장 소식과 몸 상태도 주위를 통해 들었겠지만 , 그는 김희진을 원하지 않는 눈치다 .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선수 자신이다. 소속 팀으로 돌아온 뒤 김희진은 “세자르 감독 체제의 대표팀에서 내 역할은 없는 것 같다. 이제 대표 선수로 나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발언에서 유추하자면 VNL 도중 두 사람의 신뢰 관계가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