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철의 배구 인생
“한국에서 태어나 배구 한 건 행운”“버럭 아닌 평범한 감독으로 기억되길”
배구인들의 배구 인생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이정원의 발리볼 데이트’ 두 번째 주인공은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이다. 175cm 배구선수로서 단신임에도 한국과 이탈리아를 호령했던 김호철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김호철 감독은 IBK기업은행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준비를 마쳤다. 여러 논란 속에 힘겨운 한 시즌을 보냈던 IBK기업은행은 김호철 감독 부임 후 조금씩 안정화를 찾아가고 있다. IBK기업은행에서 마지막 힘을 쏟아부을 남자, 김호철 감독과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작은 키 보완하기 위해
“매일 줄넘기 1000개·패스 3000개·
복근 운동 300개”
Q. 배구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요.
처음에는 육상을 먼저 했어요. 학교(밀주초)에 배구팀이 있어 한 번 보는데, 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또 어릴 때 운동 신경이 좋았어요(웃음). 금방 적응했죠. 배구가 재밌었고 그러다가 대신중·고에서 배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배웠어요.
Q. 지금도 그렇지만 신장이 작은 선수가 배구라는 종목에서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은데요.
지금 신장이 중학교 때 신장이에요. 키가 작다 보니 점프력을 키우려고 노력했죠. 점프력을 키우기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 매일 저녁에 줄넘기 1000개, 패스 훈련 3000개, 복근 운동 300개를 매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몸도 빨라지고 배구를 조금 더 알게 됐어요. 운도 좋았어요. 대학교 가자마자 바로 국가대표에 뽑혔는데 들어가서 팀을 운영하는 법을 배웠고, 중·고교 때는 테크닉을 배웠고요.
Q. 현역 시절 별명은 컴퓨터 세터였습니다. V-리그 내 감독님과 비슷한 유형의 세터가 있다면요.
우리카드 하승우 선수와 비슷할 거예요. 하승우 선수 역시 키가 그렇게 크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점프력이 좋고요. 경기 운영하는 법도 알고요.
Q. 감독님 하면 이탈리아를 호령했던 옛 시절이 떠오릅니다. 어땠나요.
배구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시절이었어요. 이탈리아에서 선수, 지도자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어떻게 훈련하고, 어떻게 선수들 관리를 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Q. 이탈리아에서 뛰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면요.
그때 당시만 해도 우리는 감독이 하는 이야기를 무조건 받아 시키는 대로 해야 했어요. 몸을 풀 때도 다 똑같은 동작에 똑같은 시간에 풀고요. 그런데 유럽은 아니에요. 각자 풀어요. 목표를 주면 스스로 한다는 거죠. 특이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한꺼번에 하나에 어떻게든 끼워 맞추는데, 거기는 각자의 장점을 하나로 만들었어요. 또 유럽은 1970~80년대부터 데이터로 얘기했어요. 그때부터 전력분석관, 체력담당이 있었어요. 한국은 그런 시스템이 아예 없었고요. 그러다 2003년에 현대자동차 올 때 전력분석관과 체력담당 트레이너를 제가 데리고 왔죠.
Q. 이탈리아 외 다른 나라 러브콜도 오지 않았었나요.
독일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저는 이탈리아가 좋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당시에도 이탈리아 가는 게 로망이었을 거예요. 저 역시 이탈리아가 좋았어요. 전반적인 기술이나 테크닉은 우리가 더 괜찮았어요. 그런데 클럽 활성화가 되어 있고, 돈도 많이 줬고 그리고 유럽 배구가 어떤지 구경을 하고 싶어 갔던 거 같네요.
Q. 가수 양희은 씨도 감독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나는 작은 새’ 조혜정씨가 저보다 먼저 이탈리아에 진출했어요. 조혜정 씨하고 양희은 씨하고는 친한 언니, 동생 사이에요. 양희은 씨가 조혜정 씨에게 ‘김호철 선수를 이탈리아 리그 쪽에 이야기할 수 있냐’라고 했죠. 또 양희은 씨가 영어를 잘해요(웃음). 제 이탈리아 진출에 중간다리 역할을 했죠. 지금도 양희은 씨랑 연락을 합니다. 양희은 씨 남편분과 저는 형·아우하며 지내고요.
Q. 감독님의 선수 시절을 평가해 본다면요.
타고난 것도 있었겠지만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노력한 만큼의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국가대표도 했기에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행운입니다. 한국에서 배구를 안 했더라면 유럽에도 나가지 못했을 겁니다.
“세터는 머리를 써야 한다”
Q. 은퇴 후 바로 유럽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선수는 자기 관리만 하면 되는데, 감독은 한 팀의 모든 선수를 이끌어야 하는 수장이잖아요.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해야 하죠. 처음 시작할 때 유럽 선수들에게 ‘나 지도자 생활 처음이다. 많이 도와주라’라고 말했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줬죠.
Q. 2003년에 현대자동차(現 현대캐피탈)에서 새로운 지도자 인생을 출발하게 됩니다. 그때 당시 친정으로 구하러 온 구원투수 역할이었죠.
제가 선수 때 뛰던 현대자동차는 선수층도 좋았고, 우승도 거의 맨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세월이 흘러 2003년에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옛날하고 다르더라고요. 실망을 많이 했죠. 아는 선수도 거의 없었어요. 후인정, 이호, 방신봉 정도였어요. 운동을 시키면서 보는데 ‘내가 왜 왔지. 유럽에서 잘하고 있었는데. 현대자동차에서는 나를 믿고 불렀는데 그만하고 가버릴까’라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그래도 칼을 뺐으니 시작을 하게 됐죠. 다행히 제가 부임했을 시기에 좋은 선수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이선규, 윤봉우, 박철우 등이 들어왔죠. 그때 현대가 오랫동안 삼성 배구에 눌려 기를 못 피던 시절이잖아요. 옛 명성을 되찾고 싶었고, 선수들도 그것을 간절하게 원했을 겁니다. 그리고 제 자존심이 있잖아요. 13~14명 선수들 모두에게 균등하게 훈련량을 주면서 기량을 키우려고 했죠.
Q. 2005-2006시즌에 삼성화재를 제치고 우승했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처음 왔을 때 선수들 모두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어요. ‘삼성? 해봤자 안돼’라는 마인드였어요.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 준우승만 하면 잘 했다’라고 생각했어요. 삼성화재 빼고는 아마 모든 팀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 선수들하고 3년 약속을 했어요. ‘첫 시즌은 팀을 재정비하고 만드는 데 시간을 쏟겠다. 그리고 첫해에 삼성을 무조건 한 번은 잡겠다. 두 번째 시즌에는 삼성화재와 대등하게 싸울 능력을 만들겠다. 세 번째 시즌에는 삼성화재를 꺾고 우리가 우승을 한다’라고 말했어요. 선수들에게 목표의식을 줘야 했어요. 선수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죠. 진짜로 첫 시즌에 삼성화재를 이겼고, 두 번째에는 대등하게 했고, 세 번째는 우승했잖아요. 감독인 나와 같이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줬고, 선수들은 해낸 거죠. 또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려고 모두가 노력 많이 했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창의적으로 배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시키는 대로, 어쩔 수 없는 지시에 따라 배구를 많이 하던 시기였거든요. 그런 걸 깨고 싶었어요.
Q. 감독님에게 가장 많이 혼났던 선수는 누구였나요.
(권)영민이가 많이 혼났죠. 최근에 한 번 문자가 왔어요. ‘감독님, 여자부 첫 승 축하드립니다’라고 해서 제가 ‘야, 한국전력은 요즘 왜 이리 들쑥날쑥하냐’라고 했어요. 영민이가 ‘감독님 죽겠습니다. 세터들 가르치기가 쉬운 게 아니네요’라고 하더라고요. ‘이제 내 마음 알겠지?’라고 했죠(웃음).
Q. 감독님만의 세터 조련법이 있다면요.
제가 세터 출신이다 보니 세터 훈련법에 대해서는 고집이 많았어요. 다른 부분은 괜찮은데, ‘세터는 이렇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저만의 고집이 있었죠. 지금은 많이 바꾸려고 해요. 선수의 모든 것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선수에게 필요한 것만 원포인트로 알려주려고 합니다. 세터는 머리를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머리를 써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아쉬운 게 ‘세터 놀음’ 배구가 아니라 공격수 위주의 배구로 가는 거 같아 안타까워요. 세터 머리에서 나오는 배구를 해야 되는데, 사인을 공격수가 내더라고요. 코트 위에서는 세터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책임을 져야 해요. 세터는 코트 위 감독이에요. 그런데 그냥 공격수들이 올려달라는 대로 올리는 세터면 ‘그냥 공을 올리는 사람’인 거죠. 그런 부분이 많이 아쉬워요. 나중에 감독 생활이 끝나면 세터 교실을 열어 전문적이고 제대로 된 세터를 키워보려 합니다.
Q. 감독님 하면 권영민 코치뿐만 아니라 최태웅 감독도 떠오릅니다.
태웅이는 박철우 FA 보상 선수로 삼성화재에서 현대캐피탈에 왔잖아요.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 팀에 안 오려고 은퇴 생각을 했다 하더라고요. 현대와 삼성 라이벌 관계가 있잖아요. 많이 흔들렸나 봅니다. 너무 많은 고민, 고생을 해서 그런지 피부암에 걸렸잖아요. 내가 너무 많은 부담을 줬나 하는 자책감도 들었고, 태웅이의 고생을 옆에서 보는데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도 현대캐피탈에서 자기 역할 잘 했고,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현대캐피탈 감독 잘 하고 있잖아요. 전화 통화도 자주 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최근에는 못 모이지만 일 년에 한 번씩 현대캐피탈에서 함께 했던 제자들과 만나 모임을 갖곤 합니다. 이제는 태웅이가 리더가 돼 모임 자리를 주선하는데 옛날이야기 하면 정말 재밌습니다.
Q. 감독님이 본 최고의 노력파는 누구였나요.
최고의 노력파는 문성민입니다. 정말 말없이 묵직하고, 시킨 것은 어떻게 해서든 다 해내려고 합니다. 정말 프로 선수입니다. 이선규, 윤봉우도 정말 많은 노력을 했고요. 인정이는 노력파라기보다는 재능파인 것 같아요. 배구 선수로서 타고난 몸을 가졌어요.
“IBK기업은행은 나와 잘 맞는 팀”
Q. IBK기업은행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게 됐습니다.
IBK기업은행은 저와 잘 맞는 팀인 것 같습니다. 조금씩 제 성격이 나오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웃음), 재밌습니다. 여자와 남자, 이렇게 나눠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요. 배구는 다 똑같잖아요. ‘여자 배구선수’가 아닌 ‘그냥 배구선수’로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생각하는 배구’를 하도록 힘을 주고 싶어요.
Q. 올 시즌에는 성적보다는 팀 정상화에 주력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 사건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감당하기 힘든 데까지 온 팀이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카리스마 있고 강성한 감독이 와야 팀의 분위기를 잡을 수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저를 선임했다고 봅니다. 만약 그런 내홍이 없었다면 저를 안 불렀겠죠.
자가격리 끝나고 선수들과 첫 만남에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내가 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기에 난 모른다. 한국에 와 열흘 동안 자가 격리하면서 정말 수많은 전화가 나에게 왔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다 새겨 듣지 않을 거다. 난 지금 너희 첫인상만 기억하겠다. 내가 본 걸로만 너희를 평가하겠다’라고 했어요. 이후에도 이전 일련의 사태에 묻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으려고 했어요. 지금부터라도 서로를 믿고, 열정적으로 하려고 했죠. 조금씩 분위기는 회복되고 있는 거 같아요. 수습하는 데 몇 개월은 걸릴 거라 봤는데, 생각보다 빨리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5, 6라운드에는 조금 기대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 분위기가 밝아졌고 선수들이 무엇이든 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희망을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Q. 감독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선수죠. 김하경은 어떤 선수인가요.
감독으로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전 욕심이 많습니다. 칭찬을 잘 안 해요. 열심히 하는 선수가 있고, 잘 하는 선수가 있잖아요. 저는 잘 하는 선수보다 열심히 하는 선수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 선수가 하경입니다. 하경이도 영민이처럼 지금까지는 누군가가 시키는 것만 할 줄 아는 세터였죠. 그런데 새로운 감독이 와서 생각하고 배구하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죠. 그래서 해법을 가르쳐 주고 있어요. 제가 ‘일단 지금은 그냥 한 번 해보고 올 시즌 끝나면 비시즌에 나랑 제대로 한 번 해보자. 그러면 조금은 네가 이해를 할 수 있을 거라 본다’라고 했어요. 그것을 이겨내고 깨우쳐야 김하경이라는 세터가 나옵니다. 세터는 공부해야 되는 포지션이고, 연구해야 되는 자리입니다. 단 몇 초 만에 빠르게 판단을 해야 해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배구를 접어야죠.
Q. IBK기업은행에서 그리고 있는 그림이 있다면요.
감독이라면 선수를 키워야죠. 하경이는 하경이대로, (최)정민이는 정민이대로 키워야 하고요. 희진이는 잘 하는 선수이니, 더 잘 하게 만들어줘야죠. 선수들이 배구를 더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제 일이 아닐까요. 또 명랑하고, 명쾌하고, 매끈한 배구를 선수들에게 가르치고 싶어요. 전 화려한 배구를 좋아하지 않아요. 남들이 봤을 때 ‘이야, 배구 진짜 잘 하네. 알고 하네’ 이런 팀을 만들고 싶어요. 우승? 별로 관심 없어요. 그리고 우승은 감독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요. 아무리 훌륭한 선수를 갔다 놔도 재능 없는 감독이면 못해요. 여기에 프런트의 지원이 없으면 또 안 되고요. 훌륭한 감독이 와도 선수가 뭉쳐지지 않으면 또 못 하고요. 선수, 감독, 프런트까지. 삼위일체가 돼야 해요.
Q. 지도자로서 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합니다.
‘버럭 이미지’를 지우고 싶어요. 처음에는 참 좋았는데 그래서 늘 언론의 중심에 있는 것 같아요. 스타 감독은 팬도 많지만 적도 많다는 걸 매일 느낍니다(웃음). 감독은 너무 많이 튀면 안 되죠. 선수들이 더 많이 눈에 띄어야죠. 감독이 잘 한다고 이기는 거 아니잖아요. 선수가 잘해야 이기죠. 그냥 평범하고 아버지 같은, 할아버지 같은 감독으로 남고 싶어요.
글. 이정원 기자
사진. 홍기웅 기자, KOVO